브루나이 수도 반다르세리베가완의 중심지역에 있는 술탄 오마르 알리사이푸딘 모스크의 야간 전경. 반다르세리베가완은 부산시민공원 면적의 두 배 정도 되는 작은 도시다.

본 연재는 민병욱 부산대 국어교육과 교수가 2002년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홀로 배낭을 메고 가 본 해외 여행지들 가운데 그 지역의 독특한 문화를 보여준 곳들을 소개한다. 어떤 여행지이든 독특한 문화를 지니고 있지만 이번 연재에서는 우리에게 전혀 익숙하지 않는 지역문화, 익숙한 것 같지만 낯선 문화적 특성을 보여주는 여행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 저가 항공 할인에 혹해 선택한 여정
- 쿠알라룸푸르~반다르세리베가완
- 공항서 억수비·밤새우며 고생 시작
- 여행자센터에서 받은 안내책자 한 장
- 브루나이 여행의 가이드북 대신

- 술탄이 다스리는 절대왕정국가
- 엄격한 이슬람 율법 추종하는 곳
- 수도 반다르세리베가완 작은 도시
- 버스터미널서 20분이면 한바퀴 가능

- 브루나이 강변따라 박물관 가는 길
- 숲 우거져 산책로로 걸어도 훌륭
- 이슬람 왕족·서민모습 한번에 관광

행운은 어느 날 갑자기 온다고 했던가? 우리에게 다소 낯선 나라 브루나이로 가는 행운이 왔다. 회원으로 가입한 저가 항공사에서 할인행사를 한다는 메일이 날아왔다. 항공사의 할인행사이니 적어도 몇 달 후에 가는 비행기를 저가로 예약하라는 내용이겠지 싶어 그냥 지나치려고 하다가 클릭을 하는 순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브루나이 반다르세리베가완으로 가는 저렴한 티켓가격에 놀라 구입하고 말았다.

도시 중심가에서 차량에 밥과 음식 등을 잔뜩 싣고 운반하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물론 저가인 만큼 쿠알라룸푸르에 자정 무렵 도착해 다음날 아침 브루나이로 가는 고생을 설레임으로 받아들였다.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해 맛집 거리 부킷빈탕으로 가서 육골다(肉骨茶)를 먹고 외국인 배낭여행자들에게 정보도 얻을 수 있다는 설레임으로 혼자서 즐거운 상상의 세계로 들어갔다. 육골다는 돼지고기와 뼈, 한약재 등을 넣고 오랜 시간 끓여서 풍미가 아주 강한 국물요리다. 부산의 돼지국밥과 비슷하다고 할까?

이런저런 상상에 대한 기대는 쿠알라룸푸르 저가항공 터미널에서 억수비로 부셔졌고 브루나이로 가는 공항 대기실에서 또 부셔졌다.

공항에서 하룻밤을 꼬박 세우고 브루나이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브루나이 반다르세리베가완 국제공항 입국심사를 마치고 여행안내센터로 가서 값싼 게스트하우스를 묻자 그 직원은 한 곳뿐이라면서 포켓북 '간략한 브루나이 다루살렘'과 지도 '브루나이 둘러보기' 그리고 여행규칙이라는 프린트 한 장을 건네는 것으로 대답을 마쳤다. 여행자가 가장 먼저 할 일은 우선 그 책을 읽는 것이다.

반다르세리베가완 시내 버스터미널 인근 강변의 밤 풍경.

브루나이는 브루나이 다루살렘, 정확하게 말레이시아어로 표현하면 '평화가 깃드는 곳'이라는 네가라 브루나이 다루살렘이다. 술탄(이슬람 세계에서 성속의 지배자)이 다스리는 절대왕정국가이다. 현 국왕인 하사날 볼키아 술탄은 태국 푸미폰 국왕과 세계 1, 2위를 다투는 부자 군주이다. 총인구가 40만 명이 되지 않고 그 대부분이 수도 반다르세리베가완과 인근 지역에 모여 살고 있는, 국민소득이 5만 달러를 넘는 나라이다.

브루나이는 말레이시아의 사라와크 주와 사바 주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지정학적 위치로 인하여 공식어도 말레이어, 모든 사회적 문화적 관습도 말레이시아에 준하는 나라다. 그러나 이슬람 율법은 말레이시아보다 훨씬 엄격한 샤리아 형법, 태형, 손발 전단형, 투석형을 단계적으로 시행하려고 하는 곳이다. 말레이시아를 여러 차례 여행하면서 그렇게 자유스럽고 개방적인 이슬람교도들을 만난 적이 없었다. 아,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이슬람의 이미지들-테러, 살인, 야만, 징벌 등은 정치적 목적에 의해서 덧씌워진 것이었다.

말레이시아만큼 브루나이 국민들도 그렇겠지, 즐겁고 밝은 여행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타무 키앙기 마켓(수산물 재래시장)과 버스터미널 근처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였다. 그것도 브루나이에서 유일한 게스트하우스에 여장을 풀었다.

과거부터 이어져온 전통 직물짜기 모습이 브루나이 '예술과 수공예 센터'에 전시돼 있다.

숙소 찾기가 끝난 여행자들이 할 일은 여정의 이정표를 찾아서 일정을 가늠하는 것이다. 공항에서 받은 지도 '브루나이 둘러보기'에서 찾은 이정표는 게스트하우스 곁에 있는 버스터미널이었다. 이곳을 이정표로 삼아 걸어서는 수도 반다르세리베가완을, 버스를 타고서는 수도 인근 지역과 울루 템부롱 국립공원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또 그 근처에 있는 부두에서는 제트라고 표현하는 배를 타고 수상마을 깜풍 아예르와 그 지역 해안에서 번성하는 숲 맹그로브도 만끽할 수 있다.

수도 반다르세리베가완은 그 면적이 부산시민공원의 두 배쯤 되는 작은 도시다. 버스터미널을 기점으로 하여 도시 중심지역에 있는 술탄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모스크, 브루나이 역사센터, 로얄 리갈리아(왕족) 박물관, 로얄 세레모니얼 홀 등은 20분 정도에 다닐 수 있다. 아울러 그 짧은 시간 동안 브루나이의 역사까지 읽을 수 있다.

술탄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 모스크는 현 국왕이 자신의 아버지 제28대 술탄을 기념하기 위해 그 이름을 따서 만든 사원이다. 사실 브루나이에서 술탄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은 세 명이다. 1세는 19대(1762~1795년), 2세는 24대(1829~1852), 3세는 28대(1950~1967). 그 가운데 2세는 영국인 제임스 브록의 도움으로 원주민과 소수민족의 반란을 진압했으며, 3세는 영연방의 일원인 오스트레일리아의 도움으로 술탄의 자리에 앉았다. 3세의 아들인 현 국왕은 1984년 1월 1일 주권국가로 독립하면서 영연방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그 결과 브루나이는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고 모든 문서에도 말레이어와 병기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술탄의 통치를 기념하는 중심지역에서 벗어나 브루나이 강을 따라서 가는 길은 박물관으로 가는 길이라고 이름을 붙여도 좋다. 버스터미널부터 6㎞ 정도에서 브루나이 예술과 수공예 센터, 제5대 술탄 볼키아의 능묘, 제3대 술탄 샤리프 알리의 능묘, 브루나이 박물관, 말레이 테크노 박물관, 브루나이 다루살렘 해양박물관을 만나게 된다. 그 박물관으로 가는 길은 숲 속 강변 산책로라고 할 만큼 아름다운 길이다.

그 길에서 술탄이나 왕족과 관련되지 않은 곳은 예술과 수공예 센터이다. 이 센터는 전통 직물제조법을 가르치고 전통 작물 의상을 보존하기 위해 설립된 곳이다. 브루나이에서 의상과 그 문양은 지위와 학력 등 특정한 의미를 나타낸다. 금실과 은실로 장식한 소용돌이 치는 꽃문양은 28대 술탄 오마르 알리 사이푸딘의 탄생을 의미한다. 또 혼례식에서 신랑과 신부가 똑같은 색상·디자인의 의상을 입는 것은 결혼을 단지 두 사람의 결합만이 아닌 양가의 결합으로도 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 센터에서는 어부들이 고기를 잡으면서 불렀던 집단 노동요 아다이-아다이, 옛 축제공연을 할 때 추었던 전통무용 베나리, 서정가요 조제 바주 퓨티 등을 볼 수 있다.

수도 반다르세리베가완에서 이슬람 왕족과 서민들의 모습을 2시간 정도 걸으며 볼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그 행운으로 지친 몸을 쉬고 마음을 달랠 곳이 어디에 있을까? 버스터미널 인근 극장으로 가봤지만 문이 닫힌 지 오래된 것 같았다.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이라 맥주를 팔겠지 하면서 상점에 가니 맥주캔이 있어 즐거운 마음으로 사려고 하는데 진저 비어(생강 맥주), 갈릭 비어(마늘 맥주)가 아닌가? 그래 그것이라도 마시면서 내일의 즐거운 여행을 기다릴 수밖에.


# 브루나이 가는 길

- 말레이시아서 항공편 추천
- 육로, 출입국 심사 등 복잡하고 불편

위키 백과대사전에 따르면 브루나이는 인구 41만5717명, 면적 5765㎢(부산시 면적의 약 7배)의 나라다. 무엇보다 1인당 국민총생산액이 5만 달러에 이르는 세계 4위의 부국이다. 1984년 1월 1일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우리나라와 수교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브루나이가 우리에게 입소문으로나마 잠시 알려진 것은 '국왕의 세 번째 부인이 한국 사람인데, 어느 가수의 팬으로 그 가수의 뮤직비디오 촬영을 적극적으로 도왔다'는 '카더라 통신'을 탔던 지난해이다. 급기야 한국 주재 브루나이 대사관 사이버 민원실에서 현 브루나이 국왕의 왕비는 브루나이 여성 1명뿐이며 한 왕족이 오래 전에 한국인 여성과 결혼한 사실이 와전되거나 과장된 것으로 보인다는 성명까지 내게 되었다.

그 풍문이 잠시 동안 퍼졌지만, 과거에는 물론 지금까지도 일반인들에게 브루나이는 낯선 나라이다. 그 낯설음은 브루나이가 보루네오 섬에 함께 위치한 말레이시아의 주 사이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브루나이 국내 이동도 말레이시아 국경을 지나야 한다.

브루나이로 가는 육로는 말레이시아 사라왁 주 미리에서, 혹은 사바 주 코타키나발루에서 버스를 타고 가는 것이다. 이 길은 출입국 심사를 대여섯 번 받아야 하고, 다시 수도 반다르세리베가완으로 어렵게 이동해야 한다. 여행자들은 대부분 그 인접 국가인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에서 저가항공을 통해 브루나이 수도로 들어가는 편리함을 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