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봉은 천연자원이 풍부하고 외국자본의 투자가 활발해 아프리카에서 경제수준이 높은 나라다. 필자와 함께 활짝 웃고 있는 가봉의 어린이들.

- 아프리카 중 우리나라와 최초로 수교
- 42년 통치 봉고 대통령 이름 따 승합차 명명
- 슈바이처 박물관, 유품·진료실 생생히 보존

- 포르투갈 노예무역시장·프랑스 식민지 거쳐
- 1960년 독립한 아프리카 경제대국
- 부족 간 내전 겪지 않아 안정된 국가운영

리브르빌 공항을 빠져나오는 길은 여느 서부 아프리카의 국가와는 달리 아주 깨끗하다. 도로에서 바라보이는 조각품들과 건물 모양은 예술적인 디자인이 가미되어 원시 아프리카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도로변에 길게 늘어서 있는 택시와 버스가 혼합된 승합차는 질서 정연하게 한 줄로 늘어서 있고 경적 소리도 울리지 않아 번잡함도 보이지 않는다. 17일(방문 당시였던 지난해 8월)이 되면 프랑스로부터 독립한지 53주년 되는 날을 기념하기 위해 다이아몬드, 호박, 꽃 모양의 조명이 형형색색 길을 밝히고 있다.

■노예무역시장 상처…1960년 프랑스서 독립

가봉은 이 지역에 도착한 포르투갈의 항해가가 강 하구의 모습이 후드 달린 외투와 비슷하다고 해서 가방(Gabao)이라는 이름을 붙인 데서 유래되었다. 1472년 처음 포르투갈인이 도착한 이후 서구열강의 노예무역시장으로, 그리고 20세기에는 프랑스의 식민지로 전락하였다가 1960년 8월 17일 독립하였다. 독립 당시 인구 3만1000명의 작은 행정 도시였던 수도 리브르빌은 내륙지방에 이르는 교통의 기점이 되어 현재는 국가 인구의 절반이 거주한다. 리브르빌은 명칭 그대로 영국이 세운 시에라리온의 프리타운처럼 자유의 도시로 프랑스에 의해 건설되었다.

가봉은 아프리카에서 소득 수준과 경제성장률이 가장 높은 국가 중의 하나다. 면적은 남한의 2.5배에 인구는 160만 명에 불과한 데다 천연자원이 풍부하고 외국자본의 투자가 활발해 다른 아프리카 국가에 비해 윤택한 생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40여 개 부족 간의 내전을 겪지 않은 것도 또 다른 이유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경제력이 바탕이 되어서인지 사람들도 온순하고 외국인을 대하는 태도가 세련되고 배려가 돋보인다.

■봉고차 이름의 비밀은

	가봉을 42년간 지배한 오마르 봉고 전 대통령의 흉상.

가봉은 한국과의 관계도 특별하다. 1967년 대통령으로 취임한 오마르 봉고 전 대통령은 2009년 사망할 때까지 42년간 대통령직을 유지했다. 봉고 대통령은 우리나라에 네 번씩이나 방문했고 박정희 전두환 김영삼 노무현 대통령을 만났다. 최초 방문을 했던 1975년 당시는 치열한 냉전 대결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아프리카 외교 교두보를 삼기 위해 가봉에 대한 치열한 외교전을 펼쳤다. 지금이야 남북한의 경제력과 외교력의 차이가 엄청나지만 70년대의 북한은 오히려 한국과 비슷한 수준의 라이벌 관계였다. 당시 남북한 양쪽 다 유엔의 정식 회원국이 아닌 데다가 하나의 동맹국이 아쉬운 상황에 서로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특히나 1962년 아프리카 국가 중 한국과 최초로 수교한 가봉이 1974년 북한과의 외교관계를 시작하니 한국 정부는 비상이 걸렸다. 그 와중에 아프리카 가봉의 봉고 대통령이 한국 편을 드니 한국으로서는 가봉이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봉고 대통령이 방한할 때 대대적인 환영행사가 있었다. 수많은 정관계 인사들이 김포공항에 나와 영접했고, 수십만 명의 시민들이 거리에 동원되어 가봉국기와 태극기를 흔들었다. 당시 경복궁에서 환영리셉션을 열고, 경희의료원을 시찰할 때 침술 치료와 보약도 처방해 주는 등 극진하게 대접했다. 당시 기아자동차는 신형 승합차를 출시하면서 '봉고'라는 이름을 붙여 봉고 대통령의 존재를 전 국민에게 인식시켰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 초청으로 네 번째 방문했을 당시 봉고 대통령이 직접 승합차의 이름이 자신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설명하기도 하였다. 한국의 극진한 환대에 감동한 봉고 대통령은 3박4일의 순방일정을 마치고 일본으로 떠났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몇 시간을 머물다 돌아갔다.

한국과의 수많은 에피소드를 남긴 봉고 대통령은 사망 시까지 42년간의 독재통치를 이어왔고 지금은 아들인 알리 봉고가 대를 이어받아 대통령을 하고 있다. 아프리카 내에서 경제적인 발전을 이어왔지만 도로망 등 기간산업이나 국립박물관 같은 관광자원에 대한 투자에는 매우 소극적이며, 독립기념일 행사나 곳곳에 보이는 대통령의 사진 등 정체성 확립에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을 보면 강력한 국가 통치 시스템이 적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슈바이처 박사 영혼 바친 곳…소박한 무덤

	슈바이처 박사의 유물.

아프리카 밀림의 성자로 불렸던 슈바이처 박사가 평생 의료봉사 활동을 했던 곳이 가봉의 랑바레네라는 곳이다. 수도 리브르빌에서 270㎞ 떨어진 람바르네는 기니 만으로 흘러드는 오고에 강가에 자리하고 있다. 1913년 슈바이처 박사가 처음 이곳 랑바레네에 도착했을 때 백인 의사가 왔다는 소문이 퍼지자마자 멀리서부터 하루에 수십 명씩 찾아왔는데, 병원 건물이 미완성 상태라서 사택 옆의 닭장을 임시 진료실로 사용했다고 한다. 진료실로 사용했던 건물과 사택 건물은 지금은 박물관으로 운영된다.

박물관으로 들어서자 늙은 펠리컨 한 마리가 정원을 거닐고 있다. 박물관 내부에 슈바이처와 함께 산책하는 펠리컨 사진이 전시되어 있는데, 사진 속의 펠리컨은 낮에는 강이나 늪지대로 날아갔다가 밤에는 꼭 슈바이처에게 돌아왔다고 한다. 슈바이처와 함께 산책했던 펠리컨이 아직 살아 있지는 않을 터이고, 박물관에서 전시를 위해 키우는 것인지 우연히 펠리컨이 박물관을 찾은 것인지 문득 의문이 들었다.

	슈바이처 박사가 의료봉사를 했던 당시의 진료실.

박물관 내부는 당시 슈바이처 박사가 쓰던 의료기와 신발, 안경 등의 유품 그리고 침실과 서재 등이 고스란히 보관되어 있다. 박사의 손길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책장에 꽂힌 낡은 책들과 입었던 옷 등이 활동할 당시의 사진들과 겹쳐 그가 밀림 랑바레네에서 보냈던 시간 속으로 안내하는 듯하였다. 슈바이처 박사의 재능은 정말 대단했다고 한다. 대학에서는 신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목사로 대학교수로 활동하기도 했다. 음악에도 천부적 재능을 가지고 있어 연주회를 열고, 직접 음반을 녹음한 수준급 연주가이기도 하였다. 아프리카의 흑인들이 의사가 없어 고통을 당한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6년의 시간 동안 의술을 공부하여 의사자격을 얻은 후 자신의 삶을 버리고 아프리카 흑인을 위해 살았다. 팔방미인에 천재에다 봉사와 희생까지 겸비한 인물인 셈이다.

박물관 뒤편의 조그만 묘지에는 슈바이처 박사 부부와 함께 의료 활동을 하였던 동료들의 무덤이 만들어져 있다. 시멘트로 만들어진 십자가에 투박한 글씨로 이름과 생존 연대만 기록되어 있어 성인이라 불렸던 이의 명성과 대비된 초라한 모습이다. 하긴 화려한 치장보다 그 이름이 새겨진 것만으로도 최고의 가치를 지니고 있지 않겠는가. 오지여행가

※이 지면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