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짓고 농사일과 가사를 책임지는 피그미족 여성들.

- 열대밀림서 사냥과 채집으로 자급자족
- 20여 명씩 무리지어 나무집 짓고 살아

- 카메룬 200여 부족 중 20곳만 부족장 남아
- 권위 아직도 막강… 지방행사서 맹위 떨쳐
- 옛 부족왕 생활 엿볼 수 있는 박물관 볼만

카메룬 남서쪽의 항구 도시, 크리비는 기미만 해상교통의 요지이며 유명한 휴양지다. 이 해안을 따라 연결된 열대우림 속에는 피그미족 마을이 있다. 피그미 마을로 찾아가기 위해서는 배를 타고 강을 두 시간 정도 올라가야 한다. 5월부터 9월까지는 우기인지라 밤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새벽에도 그칠 줄 모른다.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데 타고 갈 배는 모터가 딸린 배는 없으며 오로지 원주민이 노를 저어 가는 조그만 카누뿐이다. 새벽을 깨우며 내리는 비를 맞고 강을 거슬러 오르다 보면 마치 시간이 정지된 듯하다. 비를 피해 움츠러든 야생원숭이와 새소리도 들리지 않고, 강가로는 발 디딜 틈 없이 우거진 수풀들과 다양한 색깔을 뽐내는 맹그로브 나무들. 강 위에 쓰러진 나무는 그 자체로 그림을 만들고 물 위 나뭇가지에는 거미줄이 솜사탕처럼 엉켜 있다.

■강을 거슬러 가 만난 피그미 족

동이 터오자 새벽 비를 맞고 어젯밤 쳐놓은 투망을 확인하려고 조그만 조각배를 타고 나온 어부들이 보인다. 이들이 잡는 어종은 민물새우. 1472년 포르투갈의 항해자 페르난도 포가 해안의 강어귀에 도착했을 때, 강에서 서식하는 많은 새우(포르투갈어로 Camares)를 보고 카마롱이스 강이라고 부른 것이 카메룬이라는 이름으로 되었을 만큼 이곳에는 많은 새우가 서식하고 있다. 대나무 통발에 작은 고기를 미끼로 넣어 강가 바위틈 새에 던져놓았다가 새벽에 통발에 갇힌 새우들을 걷으러 오는 것이다. 통발 하나에 두세 마리씩 잡아 총 30~40마리를 잡으면 우리 돈으로 하루 1000원 정도의 수입을 올릴 수 있다고 한다.

피그미족은 키가 아주 작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적으로 성인의 키가 150㎝ 미만이다. 주로 중앙아프리카의 열대 우림지역에서 살고 있으며 서부 아프리카 토고에도 일부 자리 잡고 있다. 카메룬의 피그미 족은 크리비 해안에서도 두 시간 이상이나 떨어진 열대 우림에서 흩어져 살고 있다. 현시대에 문명을 받지 않고 사는 원시 부족이 얼마나 있으랴만 아직도 피그미 족은 세상과 단절되어 자급자족하며 살고 있다.

피그미 족은 성격이 상냥하고 평화로운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흑인보다 피부가 하얀 편인 데다 체구까지 작아 밀림에서 몸을 잘 숨기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피그미 족은 작은 몸집 탓에 크고 힘이 센 부족에게 쫓겨 다니면서 밀림 깊숙이 숨어 들어가 사냥과 채집으로 살아왔다. 너무 이른 시간부터 이방인이 찾아와서인지 듣던 것과는 다르게 우리를 맞는 피그미 여성은 상당히 거칠고 투박하다. 말이 통하지 않아 의미는 알 수 없지만 땔감 나무를 집어 던지고 소리를 지른다.

■현대 문명과 전통 방식 사이서 갈등

	피그미족 나무집에서 전통북을 치며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는 필자의 모습.

이곳까지 안내해 준 원주민 말이 이들도 이젠 숲 속의 원시부족이 아닌 관광상품이 되어 사진을 찍어 주고 돈을 받는 장사꾼이 되어 버린 상태라는 것. 자신의 생활모습을 이방인에게 공개하지만, 그만큼의 대가를 바라게 된 것이다. 가지고 있던 부채와 수건, 잼을 선물로 주자 여태껏 성질을 내던 여인이 금세 친절해졌다. 직접 집 안과 장작을 패는 시범을 보이며 사진을 찍는 것도 쉽게 포즈를 취해 준다.

피그미족은 20~30명 정도로 무리를 지어 산다. 이들의 생활 터전인 나지막한 나무집은 나무로 대를 세우고, 잎과 나무껍질을 이용하여 지붕을 덮는다. 나무와 풀만으로 만들어도 이 작은 집에는 비가 새지 않는다. 재미있는 것은 집을 만드는 사람이 모두 여자라는 것. 아이를 등에 업거나 젖을 먹이면서 직접 집을 짓는다. 남자들은 사냥을 담당하고 여성들이 채집과 수확, 그 외 가사를 담당하는 것이다. 마을에서 만난 이곳의 추장은 젊었을 때 사자를 12마리나 잡았다며 자기 키만 한 창을 들고 무용담을 들려준다. 안내원이 가져간 술 담배 설탕 소금을 촌장에게 주자 촌장은 반색하며 가족들을 집결시켰다. 북소리와 함께 온 가족 친인척이 모여 노래하고 춤도 춘다. 함께 북을 치고 춤을 추며 같이 놀다가, 손으로 새소리를 내니까 피그미족도 따라 해보면서 웃는다.

카메룬 정부의 동화 정책에 따라 원시생활의 모습은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이들은 밀림 속에서 자기들만의 방식에 따라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현대 문명과 관광 산업에 희생되는 피그미 문화를 보면서 한편으로는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카메룬에는 200여 개의 부족이 있지만 아직 부족장이 남아 있는 곳은 20여 개뿐이다. 카메룬이 백인의 침략을 받기 전까진 부족장이 왕과 같은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현재는 카메룬이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행정 관료들이 있긴 하지만 아직도 부족장의 권한은 대단하다. 지역에서 행사나 사업을 진행하려면 관공서에서 우선 그 지역 일대의 부족장의 허가를 받아야만 가능하다.

이러한 부족장의 권위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이 부족의 왕이 살았던 왕궁이다. 카메룬 서부 지역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바밀레케족의 발생지로 알려진 반준 왕궁은 그 옛날 왕족의 권위와 자부심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반준 왕궁을 알리는 커다란 아치 모양의 입구를 들어서면 마치 중세의 성을 연상케 한다. 넓은 대지에 좌우로 예전 족장의 아내와 아이들이 거주하였던 전통 가옥의 형태가 그대로 유지되어 있고 그 너머로 지금의 왕이 살고 있는 현대식 건물이 눈에 띈다.

■카메룬 서부의 중심 반준 왕궁

	부족장 권위를 확인할 수 있는 반준 왕궁의 박물관.

왕궁의 중앙에는 옛 왕족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박물관과 범죄자를 판결했던 재판소, 주술사들이 거주했던 숙소, 큰 행사를 열었던 집회장 등 대부분의 건물이 부족의 특성을 고스란히 담아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풀고 이은 지붕, 흙과 대나무로 반죽해서 삼중으로 만든 벽 등이 신기하다. 가장 감탄을 자아내는 것은 나무로 높게 새워진 기둥마다 새겨진 조각들이다. 일일이 손으로 깎아 만들었을 그 조각들은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듯 생동감 넘치고 타 부족과는 다른 남다른 자부심이 하나하나 새겨져 있는 듯하다.

박물관 내부에는 부족 왕의 가계도와 왕의 초상화, 왕이 사용하였던 유물들뿐만 아니라 반준 부족민의 생활상을 그대로 알 수 있도록 보존이 되어 있다. 예전과 같이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진 않지만 왕의 권위는 아직도 대단해서 부족 왕이 마을을 방문하면 하루 전부터 북을 울리며 노래를 부르고, 여성들은 음식을 준비하면서 마을 전체가 축제 준비로 분주해진다. 가장 좋은 옷을 찾아 입고 한 해 동안 수확한 땅콩을 왕에게 바치고 왕을 위한 춤을 추는 등 짧은 방문 시간 임에도 불구하고 헌신을 다 한다. 정작 왕이 주는 것은 짧은 덕담 한마디뿐인데도 말이다. 오지여행가

※이 지면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