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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요리사들 <17> 롯데호텔 일식당 모모야마 정지용 요리사

손님의 기분 헤아리는 정성으로 쥐는 '좋은 스시'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4-03-27 18:47:38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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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시는 밥을 맛있게 먹기 위한 음식
- 맛의 8할은 제대로 지어진 밥이 결정
- 팽팽하면서 부드럽고 찰기있는 밥
- 씹을 수록 생선까지 돋보이게 해
- 대학 졸업후 日 현장서 실력 갈고 닦아
- 단골들의 감사인사가 가장 행복해

한때 부산 롯데호텔의 모모야마는 일식 요리사의 사관학교 같은 곳이었다. 다양한 종류의 일본 요리를 다루고 규모도 크다 보니 자연스럽게 많은 요리사가 몰렸고, 또한 배출됐다. 지금은 이곳 출신 요리사들이 부산은 물론 전국에 걸쳐 활약 중이다.

한동안 잠잠한가 싶더니 최근 들어 미식가들 사이에서 모모야마를 칭찬하는 소리가 부쩍 자주 들렸다. 소문의 진원지를 더듬어 보니 이유는 스시. 모모야마에서 스시 파트를 맡고 있는 올해 38세의 젊은 요리사 정지용의 솜씨가 그렇게 뛰어나다는 것이다. 대체 어느 정도이기에 그런가 싶어 한달음에 달려갔다.

'그 나이에 스시를 쥐어봐야 얼마나 쥐었을 것이며, 솜씨가 뛰어나봐야 얼마나 뛰어날까?'라는 선입견은 단 한 점의 스시로 충분했고, 이어지는 스시는 취재라는 목적을 망각할 정도로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스시는 여러 개의 단편영화로 구성된 일종의 옴니버스영화와 비슷하다. 계절과 생선의 특징에 따라 적재적소에 배치해야 좋은 스토리가 만들어진다. 그만큼 요리사의 연출력이 중요하다. 하지만 진정한 완성도는 각각의 스시 한 점에서 비롯된다. 스시 한 점은 단편영화에 비유할 수 있다. 구성이 아무리 좋은 옴니버스영화라 할지라도 단편영화 자체의 완성도가 떨어지면 좋은 영화로 평가받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럼 과연 어떤 것이 좋은 스시일까? 이에 대한 답을 알기 위해서는 스시의 본질을 헤아릴 필요가 있다. 스시는 밥을 맛있게 먹기 위해 고안된 음식이다. 따라서 맛의 8할은 밥맛에서 결정된다. 아무리 값비싼 생선을 쓰고, 숙성 타이밍을 잘 잡아도 밥맛이 흐트러지면 결코 좋은 스시가 될 수 없다.

정지용의 밥은 팽팽하지만 신경질적이지 않다. 씹으면 싸락눈이 녹듯 바스러지면서 부드러움과 찰기가 느껴진다. 짠맛·단맛·신맛이 하모니를 이루며 쌀밥 본연의 기분 좋은 단맛을 견인한다. 그 느낌과 맛에 매혹되면 꼭꼭 오래오래 씹을 수밖에 없고 이런 밥은 어떤 생선이든 돋보이게 하는 매력이 있다. 이렇듯 반듯한 밥을 짓는 젊은 요리사를 만나니 그 이력이 궁금하다.

정지용은 신흥 명문인 해운대고등학교 출신임에도 성적이 신통찮았다. 딱히 다른 꿈이 있거나 사고를 치고 다녔던 것도 아니고 그저 공부가 싫더란다. 고3이 된 그에게 부모님은 요리를 권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시큰둥했는데 덜컥 한식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덕분에 학창시절 처음으로 부모님과 학교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그 칭찬에 동기가 부여된 정지용은 졸업과 동시에 호텔 레스토랑에 취업했다. 이후 대학 조리과를 졸업하고, 한식·양식·중식·일식 조리사 자격증을 모두 따냈다. 그리고는 본격적으로 일식을 배우고 싶어 히라가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무작정 일본 유학을 선택했다. 그럼에도 도쿄 조리사전문학교를 수료한 정지용은 졸업작품전에서 학교장상을 수상할 정도로 발군의 실력을 보였다. 단 한 번의 칭찬이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셈이다.

도쿄의 특급호텔 일식당에 취직한 정지용은 스시를 본격적으로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엄격한 도제시스템인 일본의 주방에서는 배움의 기회도 충분한 연습 재료도 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흰 수건이 시꺼멓게 될 때까지 감각을 익혔고, 손님이 먹다 남은 음식에서 생선만 골라내 랩으로 감싸 생선 올리는 연습을 반복했다. 이처럼 그는 기회를 쫓기보다 자신에게 다가올 기회를 준비하며 뚜벅뚜벅 요리사의 길을 걸어왔다.

'당신 음식의 경쟁력이 뭐냐'는 질문에 "손님의 기분을 헤아리는 정성과 미소"라는 다소 심심한 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정답이다. 스시는 손으로 쥐어 마음을 전하는 음식이다. 밥과 생선의 온도 차이는 사람의 온도가 메워준다. 정지용은 그 차이를 이어주는 기술과 심성을 두루 갖추고 있으며 예리한 고객들은 이를 안다. 그래서 그의 단골들은 식사를 끝내고 일어설 때 항상 먼저 인사를 건넨다. 그는 요리사로서 그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한다.

   
정지용은 롯데호텔 43층에서 근무한다. 스시를 쥐는 그의 뒤로는 부산항을 비롯해 부산의 원도심이 한 눈에 펼쳐진다. 그 모습은 마치 부산이라는 든든한 배경을 가진 요리사처럼 느껴진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어쩌면 정지용의 손끝에서 가장 부산다운 스시가 만들어질 수 있겠다는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박상현 맛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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