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우 기자 ywlee@kookje.co.kr

- 동생 죽인 살인마 쫓는 지적장애인 연기
- 나약함 대신 무서운 역할에 매력 느껴
- 계속 뛰어다니는 통에 파스 달고 살아

2년 전 영화 '은교'에서 청순한 여고생 역을 맡아 '충무로의 신데렐라'로 떠오른 김고은이 180도 변신했다. 자신의 두 번째 영화 '몬스터'에서 지적장애로 10세 정도의 지능을 지닌 복순이로 돌아왔다. 지적장애 복순이 역할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동생을 죽인 연쇄살인마와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이기 때문이다. 복순이는 돌아가신 할머니가 남겨준 시골 장터 채소 노점에서 일하다가 어느 날 연쇄살인마 태수(이민기)에게 동생이 죽자 복수의 칼을 갈게 된다.

김고은은 '겉모습이 예쁜 배우'가 아닌 '연기가 예쁜 배우'가 되길 바랐다. 그래서 택한 영화가 개성 강한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는 하드코어 스릴러 '몬스터'이다. 소포모어 징크스(2년 차 징크스)를 깨고 '배우 김고은'의 길을 착실하게 걷고 있는 그녀를 봄이 오는 길목에서 만났다.


-2012년 '은교'로 그해 신인연기상을 휩쓸며 신데렐라가 됐다. 그만큼 차기작 선택에 부담감이 많았을 것 같다.

▶그렇게 고심하진 않았다. 부담감을 갖거나 고심하면 더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했다. 재미있을 것 같은 영화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영화가 '몬스터'다. '은교'와 너무 다른 스릴러 장르라는 점에서 의외였다.

▶여러 시나리오 중 인상 깊었던 것이 '몬스터'였다. 스릴러 장르에서 여성은 나약하게 그려지는데 '몬스터'의 복순은 그렇지 않아서 좋았다. 여성도 돌아버리면 무서워진다. (웃음)

-복순 역은 쉽지 않다. 머리를 다쳐 지능은 낮지만, 연쇄살인마에게 맞설 정도로 바보는 아니다. 어느 정도의 지적장애를 지녔는지, 그 경계를 잡는 일이 어려웠겠다.

▶초반에 지적장애아로 설정하니 캐릭터가 너무 제한되고 다른 영화나 드라마의 캐릭터를 모방할 수 있겠더라. 그래서 지적장애아가 아닌 어린아이라는 설정을 했다. 교육을 받지 못하고 시골에서만 자란 순수한 아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했다.

-시골 장터에서 채소 노점을 하는 장면이 아주 그럴듯했다. 게다가 욕을 차지게 잘하더라.

▶작은 시골 장터나 시장에 가서 노점상의 모습을 관찰했다. 욕하는 데 부끄러움이 많아서 처음이 어려웠으나 나중에는 재미있게 찍었다.

-'몬스터'는 산, 들, 시골 장터, 서울 시내 한복판 등 다양한 곳에서 촬영했다. 특히 한여름에 계속해서 뛰어다녀 더욱 힘들었겠다.

▶학생 때 달리기 선수를 했고, 운동신경이 좋아 걱정을 안 했다. 그런데 전력 질주하니까 다리가 정말 아팠다. 나뿐 아니라 이민기 오빠와 나리 역의 아역 안서현도 함께 뛰었는데, '컷' 소리가 날 때마다 스프레이 파스를 뿌리곤 했다. 파스 뿌린 곳이 처음에는 따갑다가 나중에는 감각이 안 느껴질 정도였다.

-전체 사건의 발단이 되는 안서현 양과 끝까지 함께 다닌다. 열 살인 아역 배우와 함께 스릴러 영화를 촬영하는 일이 쉽지 않았겠다.

▶서현이는 영화 '하녀'에서 딸로 나왔고, 여러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해 어떤 면에서는 영화 현장에 관해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또 내가 서현이보다 어리다고 생각하고 연기해서 실제로 어리광을 부리기도 했다. 얼마 전에 시사회에서 만났을 때 "언니 밥은 먹었어, 물 마셔 언니"하고 의젓하게 날 챙겨줬다.

-다음 영화는 이병헌 전도연과 함께하는 '협녀: 칼의 기억'이다. 지난달 촬영을 마쳤는데, 두 배우와 함께 연기한 소감은.

▶'협녀'는 액션장면이 많아 거의 모든 촬영에서 와이어를 탔다. 또 액션만큼 감정도 짙게 밴 영화라 두 선배님과 감정 교류하는 장면이 너무 황홀했다.


# 강렬한 '몬스터' 엔딩 장면

- 3박4일간 온통 피범벅돼 촬영…주제 극명하게 드러내

영화 '몬스터'에선 엔딩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다. 피도 눈물도 없는 살인마 태수(이민기)와 동생의 복수를 하고자 겁 없이 달려드는 복순이(김고은)의 마지막 결투 장면은 너무도 강렬하다. 영화 내내 감정을 보이지 않던 태수가 분노를 표출하는 유일한 장면이며, 복순의 처절함이 극에 치닫기 때문이다. 특히 족발 액션(돼지의 다리뼈가 무기가 된다)은 소름이 돋게 한다.

두 사람이 맞붙는 장소는 태수 어머니가 운영하는 식당으로, 복순이가 이곳에 도착했을 땐 이미 많은 사람이 끔찍하게 살해당한 후다. 식당 안은 피가 흥건하고, 비에 흠뻑 젖은 채로 식당에 들어선 복순이는 태수와 사활을 건 싸움을 시작한다. 복순의 얼굴과 몸은 피로 물든다.

이 장면은 지난해 여름 3박4일간 촬영했다. 김고은은 "피가 마치 물 같았다. 피가 몸에서 솟아야 하고, 입에 피를 머금기도 해서 가짜 피를 많이 먹었다. 게다가 비를 맞고 온 상태라 여름 촬영임에도 오한이 와서 저체온증에 시달렸다"며 촬영 당시를 회상했다. 이민기 또한 "3박4일 동안 피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피범벅 된 바닥이 너무 미끄러워 신발에 사포를 붙이는 등 촬영하는 동안 다들 고생했다"고 거들었다.

황인호 감독은 '몬스터'를 '나약한 여성과 가장 강력한 남성의 대결'이라고 했는데, 엔딩 장면은 감독이 표현하고자 했던 주제를 가장 극명하게 표현했다. 그만큼 인상적이고,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하지만 너무 끔찍해 다시 떠올리기가 꺼려지는 것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