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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요리사들 <16> 바보주막 강희철 대표

놀이판서 단련한 프로 술꾼, 주당들 마음을 사로잡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4-03-13 18:49:48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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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여가지의 안주 유기적 구성
- 신속한 조리시간도 장점 중 하나
- 계절마다 3~4가지 새 메뉴 개발
- 단골들 사랑방으로 자리매김 성공

장사가 잘 되는 술집은 단골의 비중이 높다. 기존의 단골들이 자발적으로 새 고객을 데려오면 그들 역시 머지않아 단골이 된다. 단골이 곧 고객이자 자발적인 영업사원인 셈이다. 술집 주인이라면 누구나 바라마지 않는 이러한 선순환 구조는 어떻게 가능할까?

음식점을 구성하는 요소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로 나뉜다. 하드웨어에는 입지와 공간이, 소프트웨어에는 음식과 서비스 등이 각각 해당된다.

그런데 술집에는 여기에 한 가지 요소가 더해져야 한다. 바로 사람과 사람이 부대끼면서 만들어내는 '정서'다. 이는 주인장과 단골의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데 그 실체를 규명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술꾼들은 이 모호한 분위기에 젖어들기 위해 오늘도 단골 술집의 문턱을 넘는다.

서면 바보주막의 강희철(53) 대표는 '딴따라' 출신이다. 오랜 세월 부산의 극단 자갈치와 김해문화재단 등에서 공연과 축제 기획을 담당했다. 마당극과 축제가 열리는 곳이라면 전국 방방곡곡을 쫓아다녔다.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딴따라들이 모인 놀이판에 술과 음식이 빠질 수 없는 법. 그는 현장과 실전에서 단련된 소문난 술꾼이자 미식가였다.

그런 그가 나이 쉰을 목전에 두고 느닷없이 국수집을 차렸다. 그것도 내륙도시 김해에서 해물이 듬뿍 들어간 포항의 모리국수를 파는 집이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은 것도 아니고 오로지 스스로의 경험에 의존해 그 맛을 재현했다. 신선한 재료와 자신의 감각을 철석같이 믿었건만 국수집은 2년 만에 깨끗이 망했다. 폭넓은 인간관계 덕분에 처음 얼마 동안은 손님이 제법 드나들고 언론의 주목도 적잖이 받았으나 호시절은 1년을 넘기지 못했다.

그렇다고 계약기간이 1년이나 남은 상태에서 국수집을 접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강희철은 모든 직원을 내보내고 홀로 주방에 남았다. 쉰 살의 나이에 요리 공부를 새로 시작했다. 그리고는 수시로 지인들을 불러 검증을 부탁했다. 언젠가 그의 요리노트를 슬쩍 훔쳐본 적이 있다. 그 속에는 미식가의 놀이가 아닌 중년 가장의 생존을 위한 고뇌가 기록되어 있었다. 그렇게 강희철은 음식을 '먹는 일'과 '만드는 일'의 간극을 메워 갔다.

김해의 국수집을 접기가 무섭게 2012년 이맘때 쯤 서면에 바보주막을 열었다. 국수집은 망했는데 주막은 손님으로 미어터졌다. 2년 전과 비슷한 상황이려니 했는데, 2년이 지나도록 단골은 꾸준히 늘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단골이 새로운 고객을 창출하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된 것이다.

술집을 찾은 손님들이 무슨 안주를 먹을 것인가 고민하는 데는 두 가지 경우가 있다. 딱히 먹을 만한 것이 없을 때와 너무 많을 때. 둘의 차이는 가짓수가 아닌 구성에서 비롯된다. 야구의 타순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1번부터 9번까지의 타자에게는 각자의 역할이 있다. 단타에 능한 선수는 출루 그 자체가 목적이고 장타에 능한 선수는 타점을 올리는 것이 목표다. 감독은 선수 개개인의 숨은 능력을 끌어내고 이를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역할을 한다. 야구라는 한편의 드라마는 그렇게 완성된다.

노련한 술집 주인 역시 마찬가지다. 바보주막에 있는 20여 가지 안주에는 야구의 타순처럼 제각각의 역할이 있다. 경험 많은 술꾼인 강희철은 이를 적절히 안배해 고객으로 하여금 선택의 폭을 넓혀준다. 더불어 술꾼들은 기다림을 싫어한다. 그는 이 또한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 재료 손질과 조리 준비에 아무리 많은 시간이 걸릴지언정 조리시간은 어떻게든 단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강희철은 오전 10시에 출근해 한나절을 오로지 식재료 준비에만 몰두한다.

또 술꾼들은 싫증을 빨리 낸다. 그래서 적절한 때를 맞춰 선수를 교체하고 영입해 이런 변덕을 충족시켜줌이 마땅하다. 강희철은 계절마다 3~4가지 안주를 새롭게 개발하고, 단골들의 시식과 평가를 통해 그 계절에 맞는 안주 1가지씩을 새롭게 낸다. 하루도 빠짐없이 시장을 돌며 발품을 팔고 그 속에서 끊임없이 계절의 변화를 살펴야 가능한 일이다.

아는 처지에 한잔 팔아주자며 찾았던 지인들이 2년이 다 되도록 여전히 바보주막의 문턱을 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노련한 주인장 덕분에 익숙한 얼굴들이 모이니 그 속에서 그들만의 정서가 만들어지고, 덕분에 바보주막은 지역 인사들의 사랑방 구실을 톡톡히 한다. 그 선순환 구조 덕분에 오늘도 바보주막에는 한바탕 신명나는 술판이 벌어진다. 그 신명은 오로지 술꾼들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주인장의 내공 덕분이다.

박상현 맛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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