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라리온 시내 워털루시장은 아침을 여는 사람들로 활기차다.

- 출발 2시간 전에야 비자 확정 안도
- 거친 파도 타고 보트로 시내 이동
- 아침 여는 전통시장, 사람들로 활기

- 돌담에 초가지붕 올린 원주민 마을
- 힘들게 살던 우리 옛 모습 떠올라

아프리카는 해외여행이 일상화된 지금도 가기가 쉽지 않은 곳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나 케냐 등 남부 아프리카처럼 관광 상품이 개발된 곳은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중부 아프리카나 서부 아프리카는 일반인들이 관광을 목적으로 가기에는 더욱 어렵다. 관광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아서 비자 발급이나 항공편, 숙박 등 모든 것에 제약이 많다.

■비자도 없이 무작정 비행기에

	원주민촌에서 만난 시에라리온의 아이들.

비자만 해도 그렇다. 중앙아프리카의 경우 대부분 국내에 대사관이 없어 프랑스나 중국을 통해야 하는 경우가 많고, 그나마도 제출 서류도 많고 깐깐해서 여간해서는 비자를 받는다는 보장도 없다. 이번 시에라리온의 일정도 마찬가지였다. 원래 나이지리아로 가기로 했던 일정이 현지에서 합류하기로 한 코이카의 정상훈 소장이 시에라리온으로 출장을 가면서 시에라리온으로 갑자기 변경되었다. 시에라리온 비자도 없고, 발급받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코이카 정 소장이 현지 비자 발급을 신청해 놓았다고 하지만 확정이 되지 않은 상황. 자칫 발급이 거절되면 시에라리온에 입국하지도 못하고 나이지리아에 입국할 때까지 일주일 정도를 비행장에서 체류해야 할 판이었다. 이럴 때는 느낌을 믿는 것이 최고라는, 오지를 여행하며 얻은 경험으로 무작정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보통 아프리카로 가는 항공은 남아공이나 케냐, 에티오피아를 경유하면 항공요금이 싸지만 갑자기 일정을 변경한 탓에 배나 비싸게 런던을 경유하는 항공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런던에서 대기하는 시간은 8시간. 12시간이나 걸려 런던까지 도착했지만, 아직 시에라리온의 비자가 나온 것은 확인하지 못한 상태였다. 불안한 마음으로 연락을 기다리던 중 출발 두 시간 전에야 비자가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제야 조바심으로 애태우던 마음을 떨치고 시에라리온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40년 내전 거친 다이아몬드의 땅

	공항과 시내를 연결하는 보트.

시에라리온은 풍부한 자원으로 유명한 나라이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다이아몬드. 다이아몬드와 같은 귀금속이 많으면 잘 살아야 할 것 같은데도 시에라리온은 세계 최빈국에 속한다. 1961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발생한 내전이 1999년까지 이어졌다. 정부군과 반군은 전쟁에 이기기 위해 다이아몬드를 사용하였다. 다이아몬드를 팔아 무기와 용병을 샀던 것이다. 이들은 전쟁을 위해 강제적으로 소년병까지도 끌어들였고 이때는 마약까지도 사용하였다고 한다. 마약을 얻기 위해 소년병들은 실제 병사처럼 훈련받으며 포로의 손목을 자르는 등 잔혹하게 양성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 시에라리온에 남은 것은 가난과 갈등, 공포뿐이었다. 내전이 끝난 지 십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문제는 해결이 되지 않고 혼란과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프리타운 공항에 도착. 새벽 5시 30분이다. 이곳에서 배를 타고 40분 정도 들어가야 시내로 갈 수 있다. 공항 앞에는 보트 승차장으로 이동하는 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새벽 시간이라 주변은 한적하고 어둠에 가려 주변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다. 공항을 빠져나가는 길은 공항 내부인데도 여기저기 움푹 파이고 심한 곳은 바퀴가 빠질 정도로 정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것 같다.

■가난한 나라의 분주한 새벽시장

어디를 가나 새벽을 여는 사람들이 있다. 시에라리온 공항을 빠져나가며 지나가는 차창 밖으로 보이는 시장터엔 새벽 장사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공항도 그랬지만 일반 도로 사정은 더 열악하다. 새벽이라 차량 이동이 많지 않은데도 움푹 파인 길 때문에 버스가 제 속도를 내지 못한다. 우리를 시내로 데려다 줄 보트는 20~30명 정원의 작은 배다. 유럽에서 온 듯한 백인들은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좌석에 앉았고, 우리를 포함한 현지인들은 조끼 없이 그냥 탑승하였다. 파도가 생각보다 거칠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선착장으로 배는 사람들을 토해냈다.

선착장 가까운 곳 워털루 시장에는 아침을 시작하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아프리카가 위험한 곳이라는 우려도 크지만 어느 곳이든 선량한 사람들이 많은 법. 낯선 동양인이 카메라를 들이대는 것을 꺼리는 사람이 있지만 즐기는 사람도 많다. 아프리카의 전통시장은 진창길을 벗어날 수가 없다. 10년 전, 20년 전의 모습과 변한 것이 없다. 다 쓰러져 가는 함석집 구멍가게 머리에 올려놓은 나무에 페인트로 써서 만든 간판의 이름이 '엔터프라이즈'다. 주인장의 배포에 웃음이 난다. 농산물이 도매로 거래되는 곳인 모양인지 고추와 이름 모를 채소들을 커다란 꾸러미 단위로 판매한다. 여기저기서 머리에 이고, 지게에 지고, 많으면 차 지붕에 싣고…. 왁자지껄한 장터 풍경이다.

차를 타고 가는 길에 나무를 해서 쌓아놓은 곳이 있어 물어보니 땔감으로 팔기 위해 내어놓은 것이다. 어른 허리통만 한 크기로 네 묶음에 우리 돈 450원 정도. 근처로 가보니 벽돌담에 초가지붕을 올린 원주민의 마을이 나온다. 주인인듯한 여인은 웃통을 벗고 젖가슴을 내놓은 채인데도 별 부끄러움이 빨래를 하고 있고 막내딸로 보이는 십 대 처자는 절구통에 쌀을 찧고 있다. 할머니 한 명과 아들, 세 딸, 그리고 손녀까지 작은 식구는 아닌 듯하다. 평생 동반자의 개념이 없는 곳이라 이 남자 저 남자에게서 낳은 아이들을 같이 데리고 살고 있어 깊이 있는 내용을 물어보기가 어색하다.

■추억 속 옛 시골마을 닮은 마을 풍경

마을은 옛날 시골에서 보던 모습과 똑같다. 절구를 찧는 모습도, 대장장이처럼 칼을 가는 것도 그렇다. 칼을 가는 모습이 그냥 숫돌에 가는 것이 아니라 칼날을 쇠줄로 갈고, 집안에 불을 피운 모닥불에 칼을 달궈 우그러진 부분을 망치로 두들기고, 문앞 흘러가는 빗물에 달궈진 칼을 식힌다. 규모는 비할 바가 아니나 방식은 옛날 우리 대장간과 흡사하다. 전형적인 시골 농가인 듯 줄에 매어 놓은 염소 몇 마리가 보이고 닭과 오리는 풀어놓고 키운다. 이웃집 어린 애는 카메라가 낯선 탓인지 얼굴을 마주치자 쪼르록 도망가 버린다. 아침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바닥에 돌덩이 세 개로 만들어 놓은 아궁이엔 냄비가 올려져 있다.

이곳은 바다가 가까워 어부들이 주로 사는 마을이라고 한다. 지금이 우기인지라 비가 수시로 내리기는 하지만 워낙 물이 부족한 탓에 사람들은 오히려 비가 오는 것을 즐긴다. 물이 없을 땐 며칠이나 씻지도 못하다가 비 온 김에 샤워도 하고 빨래도 한다. 동네 여인 몇이 모여 삽을 하나씩 들고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밭으로 일하러 나간다.

시에라리온과의 첫 만남은 내전도 갈등도 아닌 어릴 적 힘들게 살았던 내 모습이었다.

오지여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