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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부산의 요리사들 <15> 엘올리브 김정희 파티쉐

'사랑할 수 밖에 없는' 디저트와 끝없는 사랑에 빠지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4-02-27 19:02:01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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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토박이, 프랑스서 요리에 매료
- 화려함과 달콤함 넘어서는 디저트
- 국적·재료 한계없는 상상력 강점
- 스토리 담아내는 능력도 탁월

일본영화 '양과자점 코안도르'의 한 장면. 프랑스 대사관의 연말 만찬을 위해 도쿄의 유명 요리사들이 초대됐다. 분주한 주방의 모습과는 달리 한편에서 물끄러미 이를 지켜보기만 하는 이들이 있다. 여자 주인공이 긴장된다고 말을 하자 남자 주인공은 이렇게 답한다. "저들은 전부 바람잡이에 불과해. 마지막에 손님을 웃게 하는 건 우리들이야".

그들의 직업은 파티쉐다. 파티쉐, 파티셰, 파티시에 등이 혼용되고 있다. 국립국어원에서조차 외래어 표기법이 아직 심의되지 않았을 정도로 낯선 직업이다. 파티쉐의 역할은 서양식 코스요리에서 마지막에 나오는 디저트를 담당한다. 디저트는 화려하고 달콤하다. 인간의 식욕이란 좀처럼 만족이란 걸 모른다. 그 욕망을 통제하자면 더 강한 욕망으로 대체하는 수밖에 없다. 결국 디저트는 대장정의 끝이자 코스의 만족도를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마지막에 손님을 웃게 하는 것은 우리들'이라는 자신감은 그래서 절묘하다.

어느덧 부산을 대표하는 레스토랑으로 자리매김한 수영구 망미동의 엘올리브는 건축가인 동명대 이승헌 교수가 쓴 '공간에 반하다'에 소개될 정도로 빼어난 건축물이다. 공간 못지않게 음식과 운영 또한 세계적인 수준이다. 계절에 한 번 혹은 그보다 빨리 바뀌는 엘올리브의 메뉴는 언제나 기대를 갖게 하고, 항상 기대 이상의 결과를 보여준다. 공간과 음식의 조화, 더 이상 무얼 바라겠느냐만은 엘올리브가 나를 진정으로 매혹시킨 것은 디저트였다. 엘올리브의 디저트는 내게 웃음뿐 아니라 흥분과 행복을 만끽하게 했다.

엘올리브의 김정희(40) 파티쉐는 여러모로 내 예상을 빗나간 프로필을 갖고 있었다. 분명히 서울 출신일 것이라는 선입견과는 달리 레스토랑이 있는 망미동 토박이였다. 대학에서 관광경영학을 전공한 그녀는 불어불문학을 전공한 동생의 권유로 무작정(!) 프랑스 유학을 단행했다. 어학연수 과정을 마치고 현지 요리학교에 입학했다. 요리에 대한 전문적인 경험이 전무했던 그녀는 이 과정에서 요리와 식재료를 대하는 프랑스인들의 태도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이는 삶을 대하는 태도까지 변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파티쉐로 진로를 결정한 김정희는 세계 최고의 요리학교인 프랑스의 르꼬르동블루 제과과정을 수료하고 파리의 유명 레스토랑에서 실습과정을 거쳤다.

보통 이 정도 경력이면 외국이나 서울의 유명 레스토랑에서 경력을 쌓기 마련인데 김정희는 곧장 고향인 부산으로 돌아왔다. 2003년 이후 줄곧 부산에서 활동했으며 엘올리브의 오픈 때부터 지금까지 5년 동안 파티쉐로 근무하고 있다.

이 기간을 그녀는 창작의 과정이자 파티쉐로서 완성되어가는 과정이라 했다. 지난 5년간 그녀가 만든 디저트는 얼추 50가지가 넘는다. 시즌마다 바뀌는 코스에 맞춘 디저트는 물론이고 각종 이벤트나 특별 만찬에서 선보이는 디저트까지 전부 그녀의 몫이다. 엘올리브의 여느 음식이 그렇듯 디저트 역시 전체 구성원의 혹독한 평가를 거친 다음 손님에게 제공된다.

김정희의 디저트는 단지 화려함과 달콤함에 그치지 않는다. 우선은 식재료에 한계가 없다. 국적도 가리지 않는다. 그녀의 아이디어와 손끝에서는 한국의 전통적인 식재료조차 서양식 디저트로 재창조된다. 식재료가 소재라면 그 속에 스토리를 담아내는 능력 또한 탁월하다. 그녀에게 디저트를 담는 접시는 캔버스이기도 하거니와 원고지이기도 하다. 그래서 김정희의 디저트는 서정적이면서 서사적이다.

그녀에게 디저트가 대체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랑할 수밖에 없는 대상"이라 했다. 그 말을 하는 김정희의 표정과 눈빛은 정말로 사랑에 빠진 여인의 그것을 연상시켰다.

나는 그녀가 만든 디저트를 사랑한다. 음식 너머에는 항상 사람이 있다. 좋은 음식을 만나면 그 음식을 만든 사람이 궁금하고, 음식에서 느낀 감정이 사람에게까지 전이되기 마련이다. 디저트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대상'이라 말하는 김정희의 표정은 나를 실망시켰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하니 그녀나 나나 결국엔 같은 대상을 사랑하고 있는 셈이었다. 그러니 디저트에 대한 그녀의 애정이 깊어질수록 나의 감정 또한 깊어질 수밖에 없다. 하여, 김정희 디저트는 여전히 사랑스럽다.

박상현 맛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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