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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부산의 요리사들 <10> 프리랜서 이수헌 요리사

그날의 재료가 메뉴로 탄생… 계절감·생명력 넘치는 그의 요리가 그립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3-11-21 18:56:11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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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벌 대신 실력으로 인정받아
- 일에만 매진하다 건강잃고 투병
- 자신이 만든 음식으로 자가치유
- 다른이에게 요리 가르치는 새 인생

그는 한때 '스타'였다. 그가 운영하던 부산 해운대구 좌동 '화수목'은 부산의 주당들 사이에서는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한 주점이었다. 그의 요리를 안주 삼아 술을 마시기 위해 부산은 물론이고 전국 각지에서 손님이 몰려들었다. 오로지 그 한 가지 목적 때문에 서울서 부산행 KTX에 몸을 싣는 열혈 팬도 적지 않았다. 이는 그가 장르를 불문하고 요리 하나만 생각하는 요리사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수헌(42)은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고교 1학년이던 17살 때부터 언양의 불고깃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숯불 피우는 일로 시작해 단지 급여가 많다는 이유로 주방 보조가 되었다. 온종일 파만 몇 단씩 썰어야 하는 단순노동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놀음 빚에 시달리던 주방장이 야반도주했다. 식당으로서는 여간 난처한 상황이 아닌데 이수헌에게는 오히려 기회였다. 어깨너머로 배운 불고기 양념 솜씨를 선보이니 다들 놀라더란다. 열일곱의 나이에 어엿한 주방 스태프가 되었고, 매일 밤 정형 기술자들이 남겨 준 자투리로 고기 다루는 연습을 했다. 그때부터 무작정 요리가 좋았다. 덕분에 고교를 졸업할 즈음에는 부주방장까지 올랐다.

군 제대 후에는 호텔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양식 조리사 자격증을 땄다. 호텔 양식당에서 몇 년 일하다 보니 살아있는 식재료를 다루고 싶다는 욕심에 일식 조리사 자격증도 땄다. 일식집을 거쳐 경주 조선호텔에 입사한 이수헌은 최연소 주임이 되었다. 하지만 갈증이 났다. 정통 일식을 배우기는커녕 명색이 일식 요리사면서 일본 한 번 가보지 못한 처지가 한심했다. 퇴근 후에는 일본어학원을 다니고 틈만 나면 일본을 다니며 본고장의 요리를 살폈다.

얼마 후 부산의 한 특급호텔 일식당에 특채로 입사했지만,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두터운 학벌주의의 벽을 실감했다. 대학에서 조리과를 졸업하고 외국 유학까지 다녀온 동료들의 눈에 그는 그저 근본도 없는 요리사에 지나지 않았다. 한계에 부딪힌 이수헌은 1년이 못 돼 호텔을 나왔고, 2004년 '화수목'을 열었다.

이수헌은 자신의 한계를 오히려 장점으로 승화시켰다. 영업시간 외에는 어시장과 농산물시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식재료의 특성을 스스로 터득하고, 어려서부터 몸으로 익힌 기술을 장르의 구분 없이 접목했다. 메뉴에 맞춰 재료를 선택하지 않고, 그날의 재료가 곧 메뉴로 탄생했다. 계절감이 살아있는 그의 요리는 시장 바닥처럼 생명력이 넘쳤다.

한국인의 술상에는 곰삭은 맛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발효와 숙성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시장에만 머물지 않고 산과 바다를 직접 찾아다녔다. 그에 눈에는 온통 식재료만 보이니 세상이 식재료의 창고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구한 재료로 김치를 담고, 장아찌를 담고, 젓갈을 담고, 술을 담았다. 이러니 그가 차려내는 술상은 싫증이 날 겨를이 없었다. 그 진가를 알아주는 이가 하나둘 생겨났고, 단골들은 언제나 호기심과 기대로 그의 음식을 기다렸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그렇게 잘나가던 '화수목'을 돌연 다른 이에게 넘기고 어느 날 홀연히 사라졌다. 6년 동안 미친 듯 일만 하다 보니 몸도 마음도 피폐해졌다. 오래전부터 공황장애를 앓고 있었음에도 짐작도 못 한 채 병만 키우며 살았다.

그리고 4년이 흘렀다. 떠날 때와 비교해 그는 놀라울 정도로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부산 근교 한적한 시골에 황토집을 짓고 텃밭을 키우며 자신이 만든 음식으로 자신을 스스로 치유했다. 건강을 회복한 후 요리학원에 특강을 나가고 외식업을 시작하려는 이들의 창업 컨설팅을 하고 있다. 그의 도움으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이들이 벌써 여럿이다.

이수헌은 지금의 삶이 만족스럽고 행복하다고 한다. 학벌주의의 벽에 부딪혀 좌절했던 그가 지금은 오히려 요리사를 키우고 그들의 희망이 되고 있다. 하지만 못내 아쉽다. 계절만 바뀌면 그의 생명력 넘치고 맛깔 나는 요리가 그립다. 이는 아마도 나뿐만 아니라 그의 수많은 단골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느 늦은 봄날, 그가 썰어주던 끝물 피조개 회에 소주 한잔을 곁들이며 '봄날은 간다'를 읊조리던 그 감흥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다.

박상현·맛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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