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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버 마르 남쪽의 화산 퇴적 지형. 사람(사진 중앙)과 비교하면 퇴적층의 두께를 가늠할 수 있다. 이진규 기자 |
태종대와 이기대, 송도반도, 금정산 등 부산의 유명 관광지들은 지질 명소란 측면에서 볼 때 다듬지 않은 보석과 같은 곳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내놓아도 될만한 높은 지질학적 가치를 지닌 곳이지만 이를 모르고 단순히 관광지로서의 경관 자원으로만 활용되는 실정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듯 부산의 대표적인 지질명소인 12개 국가지질공원 후보지들을 관리하고 부산 안팎에 잘 알리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또 시민들이 부산 명소들의 지질학적 가치를 조금이라도 알고 찾는다면 이곳의 가치가 한결 더해질 것이다.
독일은 우리보다 앞서 지질공원 개념을 도입하고 지질 명소를 휴양과 교육 장소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독일은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네트워크(Global Geopark Network, GGN)가 창립할 때부터 참여해 현재 5곳이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받았다. 이 가운데 GGN 창립 멤버로 독특하면서도 아름다운 화산지형을 보여주는 불칸아이펠 세계지질공원을 비롯해 오덴발트 세계지질공원, 하르츠 세계지질공원을 부산대 김진섭(지질환경과학과) 교수, 부경대 백인성(지구환경과학과) 교수와 함께 답사했다.
■'살아 있는' 화산 지형의 전시장
불칸아이펠 세계지질공원(Vulkaneifel Geopark)은 우리나라의 부산이나 제주처럼 특정 행정구역을 대상으로 지정된 곳은 아니다. 오히려 영남알프스처럼 여러 행정구역에 걸친 일대를 아울러 부르는 이름이다. 불칸아이펠 지오파크는 대문호 괴테의 고향인 독일 프랑크푸르트 서쪽 벨기에와 룩셈부르크 접경지역으로 다운이나 게롤스타인 시 등이 포함된 1만3000㎢의 광활한 면적에 걸쳐 있다. 크게 봐서 6개 권역으로 나뉜 불칸아이펠은 화산을 뜻하는 불칸과 산악지대를 뜻하는 아이펠이 합쳐진 이름 그대로 전형적인 화산산악 지형을 보인다.
불칸아이펠은 부산의 지질 명소들과 비교하면 아주 젊은 곳이다. 부산의 태종대나 송도반도 같은 해안 명소가 중생대 말기인 9000만 년~7000만 년 전에 형성됐고 금정산이 신생대 제3기 초기인 6000만 년 전 무렵에 형성된 것과 달리 불칸아이펠 지역은 신생대 제4기에서도 아주 가까운 시기인 1만 년 전 무렵에 형성됐다. 350여 개의 화산에서 분출한 용암이 일대를 덮으면서 화산 호수와 독특한 화산지형을 만들었다.
넓은 면적에 다양한 화산지형이 있지만 그 중 불칸아이펠 지오파크를 대표하는 것이 마르(Maar)로 불리는 화산 분화구다. 이외에도 대규모의 화산암 노두, 크고 작은 화산탄, 온천, 석회동굴, 폭포 등이 산재해 있다. 수려한 경관과 다양한 화산지형을 갖춘 불칸아이펠은 1988년 지질공원 프로젝트를 시작해 2000년에는 유럽지질공원 네트워크(EGN)의 회원이 되고 2004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네트워크의 창립회원이 됐다.
■민간이 참여한 공원 운영과 수익 창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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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칸아이펠 지오파크 동부에 있는 '볼카노 파크' 인포메이션 센터. |
유럽에서 태동한 지질공원 개념은 지질명소를 보존, 연구하는 동시에 관광과 교육 목적으로 활용하고 지역 주민의 소득 증대에도 기여하자는 것이다. 독특하게 불칸아이펠 동부의 플라이트와 멘디그, 마이엔 지역에 걸친 '볼카노 파크'는 지역 주민이 출자해 설립한 민간 회사가 담당한 지역이자 회사 이름이다. 지역의 지질 자산에 관한 연구와 기본적인 정보는 학계가 제공하고 탐방객에 관한 안내와 관리 등은 지역 주민이 맡고 있다. 볼카노 파크가 운영하는 곳은 인포메이션 센터와 화산지형을 가로지르는 강을 따라 운항하는 유람선, 모이린 로마 광산 전시관, 석기시대 채석장 등 여러 곳이다.
플라이트에 있는 인포메이션 센터는 1층엔 영상관과 화산암 전시관, 기념품점이 있고 2층엔 이 지역 화산암으로 만든 맷돌과 무덤 등 선사와 역사 시대 유물을 전시해 두고 있다. 25분 분량의 동영상은 지역 대학교수가 참여해 만든 것으로 아이펠 지역에서 일어난 화산활동을 시간 흐름에 따라 알기 쉽게 보여준다. 센터가 위치한 곳은 이전에 용암이 흘러간 곳으로 주변에는 안내판이 곳곳에 설치된 지오 트레일이 계곡을 따라 조성돼 있다.
센터에서 10여 분 거리에 있는 모이린의 로마광산은 이탈리아 이외 지역에서 가장 큰 로마 시대 광산 유적에 지붕을 씌워 그대로 전시장으로 만들었다. 인근의 라아흐 호수가 폭발할 때 분출된 화산물질이 퇴적된 곳으로 2000년 전 무렵 집중적으로 채석이 이뤄졌다. 야외에는 로마 시대 복장을 한 주민들이 당시의 대장간 등 생활상을 복원해 보여주고 있다. 백인성 교수는 "지오파크 관리와 운영에 지역사회가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이 돋보인다. 특히 모이린 광산 유적은 지역 주민이 직접 관리하며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어 주민 참여에 의한 지질공원의 경제적 활용에 좋은 사례가 된다"고 평가했다.
■지질공원은 트레킹과 휴양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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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더샤이드 시 인근의 작은 화산 호수인 힌켈스 마르. 호수를 중심으로 다양한 트레킹 코스가 만들어져 있다. |
불칸아이펠 지역은 지질공원 지정 이전에도 깨끗한 호수와 울창한 숲이 어우러져 휴양지로 인기 있는 곳이었다. 특히 이 지역에는 크고 작은 75개의 분화구가 남아 있다. 이 중 대부분은 우리나라의 백록담이나 천지처럼 용암이나 화산재의 분출로 만들어진 것이고 '마르(maar)'로 불리는 것은 마그마 내부의 압력에 의해 가스나 수증기가 폭발적으로 분출하며 만들어진 원형의 분화구다. 일반 분화구와 마르 가운데 상당수가 물을 담고 있는 화산호로 수영이나 요트 등 휴양과 트레킹을 위해 많은 이가 찾는다. 김진섭 교수는 "불칸아이펠은 휴양지로 잘 활용되고 있으며 주민이 주도적으로 지질공원 관련 협회를 만들거나 강연·좌담회 등 모임을 연간 단위로 조직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공원 운영에 참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볼카노 파크 지역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20분 거리의 마리아 라아흐 제(호수)는 해발 100여 m 높이에 있는 백두산 천지보다 넓은 화산호수이다. 지금도 호수 바닥에서 이산화탄소 기체가 올라오는 이 호수 주변에는 대규모 휴양시설이 운영된다. 휴양지로 인기가 높은 이곳은 대규모 캠핑장과 함께 요트를 즐길 수 있다. 또 호수 주변을 따라 거미줄처럼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어 트레킹이나 자전거 여행을 하는 이를 쉽게 만날 수 있다.
불칸아이펠의 중간 지점인 다운 시에서 남동쪽으로 1시간 정도 내려가면 '아이펠의 눈'으로 불리는 분화구 호수 풀버 마르다. 구릉 지대에 불쑥 솟아오른 원형의 마르는 사계절 캠핑 장소로 인기 있다. 특히 여름 휴가철에는 호숫가의 잔디밭에서 바비큐 파티를 하거나 물놀이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마르 주변의 휴양시설에도 여름엔 빈자리가 없을 정도다. 이곳에서 휴양시설을 운영하면서 이 일대 화산지형의 가이드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프랑크 피텐 박사는 "풀버 마르 주변에서는 화산탄 등 다양하면서 독특한 화산 지형을 만나볼 수 있다. 토요일마다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데 유료인데도 참가자가 많다"고 설명했다.
# 지질명소마다 자세한 안내판, 박물관도 곳곳에…훌륭한 교육 인프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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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이린 로마 광산 전시관을 찾은 관광객이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광산 유적에 그대로 지붕을 씌워 만든 전시관은 지역 주민이 관리하고 있다. |
지질공원의 역할로 시민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교육 기능을 빼놓을 수 없다. 불칸아이펠 지오파크에는 각각의 지질명소에 빠짐없이 특징과 형성 과정 등을 그림과 함께 보여주는 설명판이 설치돼 있고 박물관도 곳곳에 운영하고 있다. 교육뿐만 아니라 관광을 위해서도 친절한 안내를 하고 있으며 다양한 지질명소마다 특징을 내세워 방문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노출된 화산지형뿐만 아니라 폐광이나 채석장도 관광과 교육 장소로 활용한다. 또 로마 시대 유적과 중세 성곽 등 역사·문화 유적을 지질명소와 연계해 다양한 관광코스를 개발했다. 주요 도시마다 박물관과 전시관, 관광안내소, 현장 안내판 등의 시설과 다양한 종류의 안내지도, 책자, 인터넷 사이트 등으로 알찬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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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이린 로마광산 전시관에서 로마 시대 복장을 한 주민들이 당시 생활상을 보여주고 있다. |
지오파크가 1만3000㎢라는 광범위한 면적에 걸쳐 있는 만큼 6개 권역으로 나뉜 지역별로 모두 6개의 지질 관련 박물관이 있다. 이곳들은 규모는 크지 않지만 지역별로 특성화돼 다른 주제로 박물관을 꾸며 방문객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지역의 학생들에게는 지질과 자연 교육의 장이 되고 있다. 게롤스타인에는 자연사박물관이, 융커라트에는 철 박물관, 아이펠에는 화산박물관, 만더샤이드에는 마르박물관이 운영된다. 마르박물관을 가 보면 이 지역의 지질학적 형성 과정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아이펠에서 나온 어류, 양서류, 파충류, 영장류 화석과 다양한 암석을 전시하고 있다.
불칸아이펠 지오파크 일대는 독일의 10대 하이킹 코스로 선정될 만큼 트레킹 코스가 다양하고 경관이 빼어나다. 이런 코스를 따라서도 설명판과 교육장이 이어진다. 만더샤이드 시 인근의 작은 화산호인 힌켈스 마르는 지오 트레일을 따라 여러 갈래의 트레킹 코스와 교육장이 만들어져 있다.
이곳을 답사한 날은 평일에 비가 날리는 궂은 날씨였는데도 작은 호수 주변을 걷는 노인들과 트레킹하는 젊은이를 자주 만날 수 있었다. 탐방코스 곳곳엔 이정표·설명판과 함께 대피소와 캠핑장도 조성돼 있다. 호수 주변 절벽은 화산 분화로 생성된 화산암으로 산 남쪽에서 노출된 퇴적층을 볼 수 있다. 그 앞엔 화산호의 형성 과정, 지구화학적인 성분 등을 그림과 함께 상세히 보여주는 안내판이 설치돼 있고 가까이 야외 교육장도 마련돼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
독일=이진규 기자 ocean@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