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자원공사 수질검사선을 생태탐방선 삼아 을숙도에서 원동취수장까지 25㎞ 뱃길을 가는 데만 1시간30분 걸렸다. 낙동강은 스토리텔링의 보물창고와 같은 존재지만 이를 낙동강 뱃길과 제대로 접목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전민철 프리랜서

- 2시간여 거리…
- 아직 즐길 거리 볼거리 약해
- 강변에 묻힌 다양한 이야기
- 살려내야 가치 있을 듯

낙동강이 부산의 젖줄이라는 표현은 지겹도록 들었습니다. 하지만 낙동강은 신문 기사 속에서나 또는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속에서나 보는 강이었습니다. 부산에 있는 줄도 알고 중요한 취수원인 것도, 철새들의 보금자리인 것도 압니다. 그야말로 글이나 영상으로 보던 이미지 정도였지요. 바다와는 다가오는 느낌이 영 달랐습니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만나는 시간이, 기회가 너무 적었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부산 해운대나 송정, 광안리 앞바다는 직접 몸으로 느껴볼 수 있는 물입니다. 바다에 들어가기도 하고 곁을 거닐기도 하고 다른 계절과 시간에 찾아 그때마다 정취를 즐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낙동강은 심정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모두 먼 곳이었습니다. 그런 낙동강을 가장 가까이에서 배로 만났습니다.

시범 운항하던 생태탐방선이 여의치 않아 수자원공사의 수질검사선을 타고 을숙도에서부터 원동취수장까지 25㎞ 뱃길을 둘러보았습니다. 편도 1시간30분 정도 걸리는 구간이었습니다. 취재를 간 지난 17일은 적당히 구름이 있는 가을 날씨로 바람이 무척 상쾌했습니다. 그래서였는지 물에서 냄새도 거의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취재진이 탄 배가 다가서자 구포 쪽 다릿발에서 노닐던 흰뺨검둥오리들이 퍼드덕거리며 날아오르고 있다.

하구에서부터 원동취수장까지 거슬러 올라가면서 강변 양쪽의 부산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겨울 철새들은 이달 말은 되어야 온다더니, 역시나 물새들을 거의 볼 수 없었습니다. 텃새인 흰뺨검둥오리 몇 마리를 본 게 다였습니다. 대신 넓은 강폭만큼이나 다양한 이야기들이 묻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산시와 부산관광공사는 낙동강 뱃길을 살려보자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하지만 갈 길은 먼 듯합니다. 을숙도에서 물금취수장까지 가는 동안 크게 볼거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중간마다 배가 설 수 있는 계류장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현재 요트 계류장이 두 곳이 있긴 하지만 이용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였습니다.

배에서 내릴 수 있어야 억새가 우거진 습지도 걸어보고 강물의 소리도 들어볼 수 있습니다. 물론 생태계보전구역을 어디까지 개방할지에 대한 논의도 꼭 필요합니다. 요즘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자전거길과의 연계도 생각해봄 직합니다. 배만 타고 한 바퀴 둘러보는 것만으로는 아무래도 즐길 거리와 볼거리가 약했습니다.

하지만 낙동강과 부산의 역사에 해박한 문화해설사나 생태 전문가와 함께 탑승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 같습니다. 취재 당일엔 낙동강 문화관의 이영주 관장이 함께해 낙동강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결국엔 스토리텔링으로 귀결되는 문제입니다. 낙동강과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삶을 알려내야 뱃길 복원도 가치가 있을 겁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1시간 30분~2시간 동안 그냥 강바람 쐬는 나들이와 다를 바 없습니다.


◇ 배가 거슬러 오른 것은 강이 품은 이바구였다

하굿둑을 뒤로하고 한국수자원공사 수질검사선에 올랐다. 아직은 부산시에서 운영하는 생태관광선은 없어 수자원공사 낙동강통합물관리센터의 도움을 받았다. 낙동강이 품은 이야기를 풀어낼 이야기꾼으로는 낙동강 문화관 이영주 관장이 나섰다. 오후 1시께 계류장을 떠나 강을 거슬러 올랐다. 배가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이 관장은 을숙도에 대한 이야기부터 풀어냈다.


# 새 을(乙) 자에 잘 숙(宿) 자를 붙여 새들이 잠자고 쉬어가는 섬, 을숙도…김정한 소설 '모래톱 이야기' 쪼마이 섬

■ 쪼마이 섬에서 시작된 부산 이야기

	낙동강 문화관 이영주 관장이 이야기보따리를 풀고 있다. 전민철 프리랜서

이 관장은 "하굿둑이 건설되기 이전에는 일웅도라고 불리는 섬이 하굿둑 위에 있었고, 하굿둑 밑에는 을숙도라는 섬이 있었다. 그런데 하굿둑이 건설되고 난 뒤에 이 두 섬이 붙어버려 현재의 을숙도라는 이름이 됐다"고 했다. 예전 을숙도는 새을(乙) 자에 잘 숙(宿) 자를 붙여 '새들이 잠자고 쉬어가는 섬'이라는 이름이었고, 현재는 새을(乙) 자에 맑을 숙(淑) 자를 붙였다고 했다. 같은 이름이지만 의미가 약간 변한 셈이다.

그러면서 김정한 선생의 단편소설 '모래톱 이야기'에 나오는 을숙도의 별명도 말해주었다. 소설 속에서 현지 주민들은 '쪼마이 섬'이라 불렀다고 했다. 부산 사투리로 쪼마이는 주머니를 뜻한다. 실상 을숙도가 아래로 길고 좁은 주머니같이 생긴 모양에서 붙은 이름이었다. 요즘도 나이 많은 주민들은 을숙도를 쪼마이 섬이라 한다고 했다.

	을숙도에 정박 중인 한국수자원공사 수질검사선. 출발지점이다.

이어 이 관장은 강 오른쪽 가까이 아파트 단지가 즐비한 곳이 하굿둑을 건설하면서 나온 모래와 흙으로 매립해 만든 것이라는 사실도 전했다. 예전에는 갈대 습지였는데, 데이트 명소로 인기가 많았단다. 그곳으로 들어가는 배가 하루에 두 번 있었는데 연인들은 마지막 배를 선호한다며 웃었다. 그래야 어쩔 수 없이 갈대밭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하니 새들의 보금자리인 동시에 연인들의 밀회 장소이기도 한 셈이었다.

20노트(시속 18㎞ 정도) 속도로 20분 정도 지나자 이 관장은 오른쪽의 목재 다리를 보라고 밖을 가리켰다. 그는 "1970년 이전 하굿둑 건설 이전까지는 목재로 지은 허름한 다리 700여 개가 줄지어 있었다. 똥다리라 불리던 곳인데, 주민들이 자신의 집의 인분을 그곳까지 가져와 버렸다"고 말했다. 1970년대부터 인공 비료가 나오면서 인분으로 비료를 만들 필요가 없어지자 인분을 버릴 곳이 마땅찮은 주민들이 강에 버린 것이었다.


# 인분을 내다버렸다는 똥다리, 불법 비닐하우스 철거되고 물 만드는 취수·정수장 자리잡아

■ 불법 하우스를 걷어내자 습지 살아나

	부산 북구 금곡동 맞은편 갈대밭에서 낚시꾼이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위), 경남 김해시 대동면 일대 낙동강. 그물을 매만지는 어부의 손길이 분주하다. 부산 북구 금곡동 맞은편이다.

똥다리가 있던 곳을 지나자 강 왼쪽에서 맥도지구 생태공원을 볼 수 있었다. 갈대가 우거지기 시작해 가을 정취가 물씬했다. 이 관장은 "4~5년 전만 해도 강변에 불법 점유한 농사용 비닐하우스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완전히 철거하고 공원으로 정비했다"고 설명했다. 조금 더 배를 몰아 1시 30분께 낙동대교를 지나자 오른쪽에 삼락생태지구가 보였다. 80만~90만 평에 달하는 생태지구는 현재 자연상태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이 관장은 "전에 비닐하우스들이 있을 때는 그곳에서 나온 각종 비닐과 쓰레기, 비료 등 쓰레기가 강으로 흘러들어 무척 지저분했지만 지금 강변은 무척 깨끗해져 냄새도 거의 없어졌다"고 말했다. 강변을 하얗게 덮고 있던 비닐하우스 대신 지금은 풀이 자라고 있다.

당시 삼락지구의 모래는 바깥으로 반출할 수 없을 정도로 오염돼 있어 옆에 모래세탁장을 만들어 씻은 뒤 내갈 정도였다고 한다. 현재는 말끔히 정비된 상태다. 이 관장은 "을숙도부터 밀양 삼랑진까지 이 뱃길이 47㎞다. 그곳에 있던 비닐하우스를 다 철거해 지금은 쓰레기가 거의 없다"고 했다. 강 왼쪽으로는 부산시 공업용수 정수장이 보였다. 하굿둑에서 8㎞ 지점으로 이곳에서 정수한 물을 신평, 녹산까지 끌어다 쓴다.

배가 다리 옆에 붙은 상수도관 아래를 지나쳤다. 부산 시민이 쓰고 먹는 물은 두 곳에서 만들어진다. 물금취수장의 물을 화명 정수장에서 깨끗하게 만들어 북구와 기장군까지 보낸다. 매리취수장에서 취수한 것은 덕산 정수장에서 정수해 관을 타고 동부산까지 가는 것이다. 이 다리를 건너 사하구, 사상구 지나 동부산으로 가는 셈이다. 부산의 젖줄이라고 부를 만하구나 싶었다.


# 거북이가 상류 쪽으로 엎드려 알을 품는 듯한 형세, 구복포란의 물형을 가진 '구포'

■ 부산의 지명과 역사 속 이야기들 풍성

	김해평야 일대에 물을 대려고 만든 대저 수문. 예전엔 대동 수문이었다.

다리를 지나자 구포(龜浦) 일대가 눈에 들어왔다. 이 관장은 구포의 지명 유래를 거북 구(龜), 안을 포(抱)자로 색다르게 설명했다. 거북이가 상류 쪽으로 엎드려 알을 품는 듯한 형세인 구복포란의 물형을 가진 지역이라 구포라 부른다는 것이었다. 지역의 산의 이름도 거북산이라고 했다. 산 아래 아파트 단지를 지으면서 진입도로가 필요했다. 하지만 거북이 머리가 상류 쪽으로 몸통이 하류 쪽으로 향해 있는 산세였는데, 아파트 단지 진입로를 만들려고 거북이 목에 해당하는 곳을 잘랐다고 한다. 그랬더니 다음 해에 구포 열차사고로 많은 사람이 죽고 다쳤다. 이 때문에 다친 거북 목을 이어주려고 구름다리를 놓았다고 한다.

이곳을 지나치자 덕두나루와 구포나루 터가 나왔다. 강의 왼쪽은 경남 김해로, 예전에는 김해의 배가 명물이었다. 아낙들이 김해에서 배를 사서는, 덕두나루에서 배를 타고 구포나루에 내려 구포역에서 이 배를 팔았다. 부산역으로 가려는 열차가 정차해 있을 때 배를 팔았다. 그런데 배를 팔면서 하는 말이 "내 배 사이소, 물 많은 내 배 사이소"했다는 것이었다. 손님 중에는 '어느 배를 사라는 것이요?"라며 진한 농담을 건네는 이도 있었다고 한다.

	취재진이 탄 배가 화명대교를 지나고 있다.

텃새인 흰뺨검둥오리들이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부화한 지 3~4개월쯤 되는 어린 것들이라고 설명한다. 겨울 철새는 이달 말이나 되어야 구경할 수 있다고. 구포 도시철도 역사도 거북이 모양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북구빙상경기장 자리도 거북 형상인데, 하류 쪽으로 거북이가 머리를 향하고 등은 상류 쪽이라고 했다.

강 오른쪽으로 아파트 단지가 촘촘하게 자리 잡은 화명 신도시가 다가왔다. 화명생태공원에는 요트 계류장도 보였다. 5년 전만 해도 강변 전체가 쓰레기 투기장으로 쓰이던 곳을 생태공원으로 가꿨다.

이 관장은 왼쪽 상수도관을 가리키면서 대저 수문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낙동강 본류가 당일 배로 탐방하던 곳이 아니었다. 지금의 서낙동강이 낙동강 본류였다. 그런데 비가 많이 오면 홍수가 나 서낙동강 주변의 김해평야가 잠겼다. 이 때문에 일제가 토목공사를 해 둑을 쌓으면서 본류와 지류가 바뀌었다. 그래도 김해평야에 물을 공급해야 하니 서낙동강 물길을 열어 두고, 대동 수문을 만들어 수량을 조절했다. 그 대동 수문은 지금은 대저 수문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화명대교를 지나자 양산시 물금에 닿았다. 이곳은 아주 옛날 가락국과 신라의 접경 지역이었다. 당시 물금 쪽의 강폭이 가장 좁아 두 나라 간 무역이 성행했다고 한다. 사무역이 활발해지자 결국 가락국과 신라는 지금으로 치자면 자유무역협정을 했다. 한자로 말 물(勿) 자와 금할 금(禁) 자를 합치면 '금하는 일은 아니 한다'로 해석할 수 있다. 금하지 않는 교역은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뜻이겠다.


# 원동취수장~물금 물문화관까지 자전거 철길 3㎞, 내년 7월 생태탐방선 운항

■ 자전거 철길과 절벽, 눈을 사로잡다

	원동 취수장 부근에서 만난 자전거 철길. 파란색이 이채롭다.

강변 오른쪽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곳은 파란색의 자전거 철길이었다. 기차가 다니는 곳이 절벽 같은 곳이라 아예 강 위로 자전거 도로를 만들었다. 자전거 종주길 위로 몇 대의 자전거들이 손을 흔들며 지나갔다. 그 위로 원동 취수장을 볼 수 있었다. 원동취수장에서부터 물금 물문화관까지 3㎞ 정도 자전거 철길이 놓여 있다. 늦가을에 단풍이 생기면 강과 단풍이 어우러지는 절경을 즐길 수도 있다.

취재 당일은 전형적인 가을 날씨로 23도에 습도 41%로 아주 쾌적했다. 햇볕도 적당해 배 밖에서 바람을 쐬기에 좋았다. 한국에서 강폭이 넓기로 유명한 낙동강을 타고 올라가면서 낙동강 자체가 이야기 주머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낙동강과 함께 살아오던 사람들의 이야기, 그 속의 역사, 애환 등이 풍부하게 담긴 이야기 주머니….

부산시는 내년 7월 낙동강 뱃길을 잇는 생태탐방선을 운항할 예정이다. 을숙도~구포~화명~물금~원동까지 총 33㎞ 구간이다. 20t급 50인승 미만의 생태탐방선 건조에 들어갈 계획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