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불볼락들이 해중림 위를 지나고 있다. 불볼락은 가거도, 흑산도, 홍도 등 신안군 도서지역의 특산종으로 매년 가을 불볼락 축제가 개최된다. |
- 목포서 남서쪽으로 145㎞ 떨어진 섬
- 서해·남해 만나는 해역, 자원의 보고
- 참조기·홍어·멸치·참돔·돌돔·감성돔…
- 바닥엔 손바닥 크기의 홍합이 빼곡히
- 넘쳐나는 해면, 바닷속 구석구석 덮어
- 인근 국흘도엔 돌돔·방어 떼가 '군무'
우리나라 최서남단에 위치한 가거도는 목포에서 남서쪽으로 145㎞ 떨어져 있다. 행정구역상 전남 신안군 흑산면 가거도리로 분류되며, 목포 여객선 터미널에서 쾌속선으로 4시간30분은 가야 도착할 수 있다. 조선 시대 흑산도는 큰 죄를 지은 죄인만 유배 보낸 아주 먼 귀양지였는데 흑산도 보다 70㎞나 더 먼 가거도는 귀양조차 보낼 수 없는 멀고 먼 곳이었다. 가거도를 소흑산도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일제강점기 때 흑산도의 부속도서로 여겨 편의상 붙인 명칭이다. 이에 대해 자립심이 강한 가거도 사람들은 소흑산도라는 이름을 싫어한다. 가거도 주민들은 이름의 유래를 '아름다운 섬'이라는 뜻의 가가도(嘉佳島, 可佳島)에서, 또는 '가히 살 만한 섬'이란 뜻의 가거도(可居島)에서 찾고 있다.
| |  |
| 가거도 수중에는 제주도 문섬 앞바다처럼 대형연산호류를 쉽게 관찰할 수 있다. |
가거도는 지난해 11월 해양생태계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나무섬과 남형제섬이 오는 11월께 해양생태계보호구역으로 지정될 예정이니 1년 앞섰다. 가거도는 해양생태계보호구역 지정 요건 중 '해양의 자연상태가 원시성을 유지하고 있거나 해양생물 다양성이 풍부하여 보전 및 학술 가치가 있는 해역'이라는 지정 요건을 충족시킨다. 바다환경뿐 아니다. 신안군에서 가장 높은 독실산(639m)을 중심으로 뻗어 나간 가거도에는 후박나무, 굴거리나무 등 삼림이 우거져 마실 물이 넉넉하며 희귀 약초 자생지역이다. 취재 도중 만난 사람들은 가거도에서는 조금만 부지런하면 누구나 풍요롭게 살 수 있다고 전한다. 그만큼 가거도는 육상 및 수산자원이 풍부하다.
서해와 남해가 만나는 가거도 해역은 제주도에서 갈라진 구로시오 난류가 서해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다. 해양생태계보호구역 지정에 앞서 시행한 해양생태계 기본조사에 의하면 참조기, 홍어, 멸치, 참돔, 돌돔, 감성돔, 농어, 돗돔, 방어, 불볼락 등이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  |
| 조류가 강한 지역으로 나아가자 돌돔무리가 나타났다.
|
특히 가거도 인근 해역에서 잡히는 참조기는 가거도를 부유한 어촌으로 만든 일등 공신이다. 어업에 직·간접적으로 종사하는 500여 명의 주민은 금어기(산란기인 4월 22일 ~ 8월 31일)가 풀리는 9월부터 다음 해 봄까지 참조기 조업에 매달린다. 해질 무렵 만선 깃발을 나부끼는 어선이 항구에 도착하면 주민들은 밤을 새워 그물에서 조기를 털어내고 얼음에 재워 목포로 보낸다. 목포에 도착한 조기가 법성포로 가면 법성포 굴비로, 영광으로 가면 영광굴비가 되어 우리 식탁에 오른다.
가거도 바다의 가장 큰 매력은 원시 생태를 보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해양생태계보호구역으로 지정된 70.17㎢의 주변 해역은 어느 곳을 가나 대형 갈조류인 대황과 감태를 비롯해 톳, 작은구슬산호말 등이 해중림을 이루고 있다. 해중림은 이를 직접적인 먹이로 삼는 해삼, 산호, 전복 등의 식생을 가능하게 하며 이곳에서 만들어진 영양물질은 어류를 불러 모은다.
가거도 수중탐사를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기자를 반긴 것은 푸른 바다를 정열적으로 수놓던 불볼락 무리였다. 첫 번째 수중탐사 때 불볼락의 화려함에 도취했던 기자에게 가이드를 맡은 김성민(42·가거도 주민) 씨가 가거도에서 불볼락에 마음을 뺏기면 다른 건 아무것도 볼 수 없을 거라는 우스갯소리를 했다.
두 번째 탐사부터 불볼락의 유혹을 무시하자 바닥면에 빼곡하게 붙어 있는 손바닥 크기만 한 홍합들이 눈에 들어왔다. 울릉도와 독도 등 동해의 청정해역에서 홍합을 관찰할 수 있지만 밀도 면에서는 가거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우리나라 연안에 자생하던 홍합들이 외래종인 진주담치에 밀려나고 있지만, 가거도는 진주담치의 도발이 미치지 않아 원시 해양환경이 잘 보존돼 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을 바닷속에서 살아왔는지 홍합 껍데기에는 해면과 각종 부착 생물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가거도 바닷속은 우리나라 해역에서 가장 많은 종의 해면이 서식하고 있다. 그 수많은 홍합마다 해면이 붙어 있고 넘쳐난 해면들은 바닥면 곳곳을 덮고 있다. 바닥면에는 전복과 소라 등의 복족류가 아무렇게나 기어 다니는데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크기이다.
| |  |
| 가거도 바다 바닥면에 홍합이 빽빽하게 서식하고 있다. |
가이드를 따라 가거도 북쪽에 위치한 작은 섬인 국흘도(천연기념물 341호 쇠오리, 바다제비, 슴새 등 희귀조류 서식지)로 향하자 외해에서 밀려오는 풍랑과 조류가 맞부닥쳐 파도가 거세다. 조류가 강한 곳에는 큰 물고기들이 산다. 국흘도와 소국흘도가 만들어낸 수중협곡을 비집고 들어가자 한 무리의 돌돔이 있다. 대충 크기를 가늠해도 50㎝ 안팎이다. 돌돔의 크기를 가늠하고 있는데 바로 옆에서 '쉭 쉭' 하는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려보니 수 십 마리가 넘는 방어 떼가 지나고 있다. 1m 안팎까지 자라는 방어는 회유성 어종답게 움직임이 빠른데다 민감하다. 다른 물고기들은 수중사진기의 플래시 빛에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지만 방어는 플래시 빛에 헤엄치는 방향을 순간적으로 바꿔 버린다.
갯바위에 올라 휴식을 취하는 동안 함께 배를 타고 온 주민들이 갯바위에 닥지닥지 붙은 거북손을 채취하고 있다. 조금만 부지런하면 가거도에서는 풍족하게 살 수 있다는 섬사람들의 말은 가거도 바다가 지닌 풍족함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하는 말일 게다. 원래 우리 해역이 이토록 풍성했을 텐데 개발과 산업화로 훼손되고 있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움을 더한다. 가거도의 해양생태계를 보전해야 하는 것은 우리나라 원시 해양환경을 있는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몇 남지 않은 생태계 보고이기 때문이 아닐까.
| |  |
| 가거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