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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륙도를 배경으로 우뚝 선 이기대의 명물 농바위. 농바위는 6000만 년 전~7000만 년 전의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화산 퇴적암이 오랜 시간에 걸쳐 침식돼 만들어진 자연의 작품이다. |
- 해맞이공원~동생말 중생대 백악기 형성
- 응회질 퇴적암·안산암질 화산암 많아
- 2400만 년 전 일본 열도 분리된 후
- 지층 융기·침식활동으로 해안절벽 탄생
- 화산 퇴적층 깎여 파식대지 만들어져
- 모래·자갈 움직이며 만든 돌개구멍
- 폐 구리광산·파식동굴도 숨어있어
부산을 대표하는 해안 절경이라면 태종대와 더불어 오륙도와 이기대를 꼽을 수 있다. 오륙도와 이기대는 다대포 몰운대에서 송도 암남공원, 영도 태종대, 해운대, 청사포를 거쳐 송정에 이르는 부산의 해안선 가운데 대략 중간에 위치하면서 빼어난 해안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 태종대가 관광객이 주로 찾는 곳이라면 이기대는 트레킹을 위해 찾는 이가 많은 곳이다.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코스는 때로는 절벽 위를, 때로는 파도치는 바위 해안 옆으로 이어지며, 광안대교와 맞은편 해운대 쪽의 멋진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가까이 태종대와 송도반도가 호수 퇴적층의 모습을 보여준다면, 이곳 오륙도와 이기대는 한반도 남동부의 백악기 말 화산활동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곳으로 격렬했던 화산활동과 이어지는 오랜 침식작용의 기록이 오롯이 남아 있다. 오륙도와 이기대 지질여행은 갈맷길 코스이자 부산에서 강원도 고성에 이르는 770㎞ 해파랑길의 시작점인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시작해 해안 길을 따라 동생말까지 이어진다.
■격렬했던 화산 분화의 기록
이기대는 물론 앞서 국가지질공원 후보지로 소개한 태종대와 송도반도, 몰운대 등의 지층은 모두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것이다. 태종대·송도반도는 주로 9000만 년 전~7000만 년 전의 2000만 년에 걸쳐 형성됐고 이기대와 오륙도는 8000만 년 전~7000만 년 전 시기에 형성돼 대체로 겹친다. 하지만 지층의 형성 과정은 크게 다르다. 거리로는 눈에 보일 정도로 가까운 지역이지만 지질학적 특성은 많이 다른 것이다.
고생대와 신생대 사이의 시기인 중생대는 약 2억2500만 년 전부터 약 6500만 년 전까지의 1억6000만 년 동안에 해당한다. 그중에서도 백악기는 삼첩기(트라이아스기)와 쥐라기에 이어 중생대를 셋으로 나눈 것 중 마지막 시대로, 약 1억3500만 년 전부터 6500만 년 전까지다. 태종대와 송도반도 지층은 퇴적층인 다대포층은 화산활동의 영향이 나타나긴 하지만 대체로 호수 퇴적층의 특징을 담고 있다. 반면 오륙도와 이기대는 격렬한 화산활동의 기록이 뚜렷하다. 이곳 지층은 화산분출물이 쌓여 형성된 응회질 퇴적암과 용암이 분출돼 만들어진 안산암질의 화산암이 대부분이다. 응회질 퇴적암은 이기대 외에도 황령산과 백양산 등의 산지, 태종대에서도 관찰할 수 있다.
해맞이공원에서 동생말에 이르는 대략 4㎞의 이기대 트레킹 코스는 지금은 차갑게 식어 있지만 과거 어디보다도 뜨거웠던 화산활동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이다. 부경대 백인성(지구환경과학과) 교수는 "이기대와 오륙도는 백악기 화산 폭발의 기록이 가장 뚜렷하게 남아 있는 곳이다. 절묘하게 균형을 잡고 있어 독특한 경관을 보여주는 농바위는 화산활동과 이후 침식활동의 극적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시간이 만들어낸 해안 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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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대 파식동굴은 파도가 암벽의 약한 부분을 깎아 만들어진 뒤 지층이 상승해 바닷물이 미치지 않는 곳에 있다. |
이기대 해안 절벽은 태종대나 송도와 마찬가지로 대략 2400만 년 전 하나로 이어져 있던 일본 열도가 분리돼 떨어져 나가면서 치고 들어온 이후 오랜 기간 바닷물에 깎여서 만들어졌다. 이기대 코스에서 볼 수 있는 농바위와 치마바위, 파식동굴 등은 이전에는 파도의 힘을 바로 맞는 위치에 있을 때 깎여 나간 것이다. 이후 부산지역의 전반적인 융기로 지층이 솟아오르면서 파도에 침식된 지층이 현재의 높이까지 올라온 것이다. 2000만여 년의 시간에 걸쳐 파도와 지층의 움직임이 만들어낸 자연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다.
농바위에서 동생말 방향으로 10분가량 가면 시야가 트이며 발아래 바위해안이 펼쳐지고 멀리 수영만 마천루와 해운대, 달맞이 고개, 장산 등 기막힌 경관을 볼 수 있다. 이곳의 평평하게 기울어져 바다로 들어가는 듯한 바위해변은 파식대지다. 이름 그대로 오랜 시간 파도가 바위를 깎아 집어삼켜 만들어진 것이다. 이곳 파식대지는 현재진행형으로 파도에 의해 조금씩 깎여나가고 있다. 트레킹 코스의 내리막 계단 아래 파도가 들이치는 곳엔 화산재 등이 쌓여 만들어진 어두운색의 화산성 퇴적암 사이로 용암이 뚫고 들어온 뒤 굳어 만들어진 밝은 회색의 관입암맥이 있다.
파식대지에서 수영만을 배경으로 눈앞에 보이는 비스듬하게 층층이 펼쳐진 암벽이 치마바위다. 태종대나 송도반도의 퇴적암보다는 덜하지만 역시 뚜렷하게 층을 이룬 화산 퇴적층을 알아볼 수 있다. 호수 퇴적층과 비슷하게 이기대 화산 퇴적층도 분화의 규모에 따라 각 층의 두께가 다르다. 화산활동은 소규모와 대규모 분화가 간헐적으로 이어졌다. 층의 두께는 분화의 강도 차이를 보여준다.
■풀에 묻힌 도심 속 구리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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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경대 백인성 교수가 파식대지 위 돌개구멍의 형성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돌개구멍은 모래나 자갈이 파도의 작용에 의해 바위의 약한 부분을 깎아내 만들어졌다. |
이기대 구간에서는 다양한 해안지형을 볼 수 있는데 특히 어울마당을 지나면 해안 길을 걸으며 더욱 가까이 볼 수 있다. 어울마당 옆 '이기대' 유래 안내판을 지나면 곧바로 넓은 파식대지가 나온다. 이곳 바위해안에는 지름 50㎝, 깊이 10㎝ 이상 되는 10여 개의 원형 웅덩이가 있다. 한때 공룡 발자국으로 잘못 알려지기도 한 이 웅덩이는 화산 퇴적암의 빈틈에 들어간 모래나 자갈에 오랜 기간 파도에 의해 움직이며 바위를 깎아 만들어진 돌개구멍(포트홀, pothole)이다. 같은 과정으로 만들어진 돌개구멍을 태종대 지층에서도 볼 수 있다.
이곳을 지나면 곧 구리광산 안내판이 보인다. 안내판 뒤 절벽에 일제 강점기 때의 구리광산이 있다. 이곳은 이기대에서 개발된 4곳의 갱도 가운데 2호 갱도로 깊이 380m에 걸쳐 있다. 폐광된 지 오래인 지금은 갱도의 흔적만 남아 있고 여름철 자란 무성한 풀이 덮고 있어 입구조차 알아보기 어렵다. 대규모 단층을 따라 발달한 구리광산은 보존이 잘 돼 있는데다 갈맷길을 따라 있어 접근성도 높다. 이곳을 도심 속 광산 체험관광 장소로 개발한다면 부산의 독특한 관광자원이 될 가능성이 높다. 백인성 교수는 "도심 광산은 드문 경우라 관광·교육 자원으로의 가치가 높다. 안전성을 고려해 일부를 탐방 코스로 만든다면 체험관광 장소로 활용할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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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대 갈맷길 구간의 중간쯤에서 만나는 파식대지. 화산퇴적층이 파도에 평평하게 깎여나가 만들어진 것이다. |
옛 광산을 지나 자갈 해안을 따라 20~30m 가면 절벽 아래 파식동굴이 숨어 있다. 예전 이곳이 바닷물에 잠겨 있을 때 절벽을 이룬 암석의 약한 부분이 파도에 깎여 만들어진 곳이다. 다른 지역의 해식동굴과 달리 동굴이 만들어진 뒤 지층이 솟아올라 육상에 노출돼 있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곳이다. 이기대 코스의 끝 부분인 출렁다리에 들어서서 30m 정도 가면 왼쪽 암벽에 붉은색의 'ㄱ' 자 모양을 이룬 보석 광물 벽옥도 자리 잡고 있다.
# 12만 년 전 섬이 된 오륙도
- 육지였다가 마지막 간빙기 때 떨어져나간 형제 섬들
- 8000만 년 전 백악기 말 지층 형성
- 해수면 오르내리기 반복해 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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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에서 내려다 본 오륙도. 왼쪽 육지에서 가까운 곳부터 방패섬, 솔섬, 수리섬, 송곳섬, 굴섬, 등대섬. 국제신문DB |
이기대 끝 승두말 남쪽에 떠 있는 오륙도는 부산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1972년 부산기념물 제22호로 지정됐다가 2007년 국가지정문화재인 명승 제24호로 지정됐다. 오륙도는 해맞이공원에서 가까운 곳부터 우삭도, 수리섬, 송곳섬, 굴섬, 등대섬 등 높이 28~68m의 다섯 개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우삭도는 별개의 두 개 섬으로 봐서 각각 솔섬과 방패섬으로 불리기도 한다.
오륙도란 이름은 잘 알려졌다시피 보는 위치에 따라 다섯 개로 보이기도 하고 여섯 개로 보이기도 하는 데서 유래했다. 1740년 편찬된 '동래부지 산천조'에 '오륙도는 절영도 동쪽에 있다.… 동쪽에서 보면 여섯 봉우리가 보이고 서쪽에서 보면 다섯 봉우리가 되어 이렇게 이름 한 것이다'라고 기록돼 있다.
지금은 육지와 떨어져 섬을 이뤄 부산의 절경으로 대접받는 오륙도는 지질학적 시간으로 볼 때 최근까지도 섬이 아닌 육지의 일부분이었다. 오륙도 일대가 탄생한 것은 약 8000만 년 전인 백악기 말이다. 화산 분화로 만들어진 이기대의 한 부분이었다. 이후 대략 2400만 년 전에서 1500만 년 전에 걸친 시기에 일본이 분리되고 동해가 형성됐다. 이후로도 계속 육지와 연결돼 있던 오륙도는 약 12만 년 전인 마지막 간빙기 때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파도에 의해 약한 부분이 서서히 깎여나가며 섬의 형태를 갖추게 됐다.
이후로도 해수면은 여러 차례 올라왔다 내려가기를 반복했다. 또 지층이 솟아오르기도 했다. 약 1만8000년 전 마지막 빙하기에는 해수면이 한층 낮아져 바다가 멀리 물러나고 오륙도 일대 역시 물 위로 완전히 드러나 풍화와 침식을 겪었다.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고 다시 기온이 상승하자 바다는 다시 높아지고 오륙도는 물에 잠겨 거센 파도의 침식과 비바람의 풍화작용에 깎여나가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지금도 오륙도는 파도에 깎여나가고 있다. 오륙도의 암석은 이기대와 마찬가지로 화산 분화 때 날아온 자갈과 화산재가 굳어 만들어진 퇴적층이 층층이 쌓여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