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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부산의 요리사들 <5> 면옥향천 김정영 요리사

도쿄에서 메밀로 맞붙어 보겠다는 완벽주의 승부사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3-09-05 18:38:09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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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확 이후 관리 까다로운 메밀
- 향과 맛 보존하는 것 어려워
- 마음에 차는 재료 얻기위해
- 지난해 논산에서 직접 재배 시작
- 고가의 제분·제면 설비투자까지
- 철인 3종경기로 체력·승부욕 단련

몇 년 전 그와 일본 도쿄에서 열린 식품박람회를 참관했다. 2박 3일간 낮에는 박람회를, 저녁에는 음식점을 순례하는 강행군이었다. '도쿄 3대 소바'로 꼽히는 유명 메밀국숫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던 중 불쑥 던진 한 마디.

"언젠가는 일본에 진출하렵니다. 도쿄에서 메밀로 승부를 한 번 걸어봐야지요." 술 마시다 흰소리하는 사람은 더러 봤어도 국수 먹다가는 처음이었다. 그런데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느낌이 들었다.

김정영은 2009년부터 부산 해운대구 우동에서 '김정영의 면옥향천'이라는 메밀국숫집을 운영하고 있다. 진작부터 블로그에서 '맛집'으로 소문났고, 때로는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로 호황이다.

하지만 열 평 남짓한 작은 규모에 메뉴라 해봐야 메밀국수, 막국수, 돈가스 정도. 그마저도 기본에 충실한 것 빼고는 특별히 남다른 구석은 없다. 전통 있는 소바집이 수두룩한 도쿄에 진출하겠노라 큰소리쳤던 인물의 가게치고는 어딘가 부실하다.

메밀은 황무지에서도 잘 자라고, 저온에 강하며, 단기간에 수확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농경 국가면서 산이 많은 한국과 일본은 오래전부터 구황작물로 활용했다. 하지만 재배가 쉬운 대신 수확 이후가 까다롭다. 적정 온도와 습도에서 보관해야 하고, 맷돌에 갈아야 맛과 향이 다치지 않고, 가루를 오래 두면 향이 달아나고, 글루텐이 적어 면을 만들기도 쉽지 않다. 메밀국수가 발달한 일본에서는 단계별로 철저하게 관리·유통되지만, 한국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일부 제분업자와 제면 업자들은 현실을 인정하기보다 일반인이 메밀의 향을 느끼는 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를 일본의 메밀국수 장인들에게 물으면, 향이 없는 것은 메밀국수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백석은 그의 시 '북신'에서 '거리에서는 모밀내가 났다/부처를 위하는 정갈한 노친네의 내음새 같은 모밀내가 났다'고 했다.

대중적인 메밀국숫집을 운영하면서도 남 못지않은 제면 기술을 터득한 김정영은 이러한 현실이 늘 아쉬웠다. 재료비를 아끼지 않고 강원도 봉평농협으로부터 국산 메밀가루를 사들여 쓰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했다. 메밀의 재배·제분·제면의 전 과정을 통제하지 않고서는 자신이 추구하는 면을 만들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는 우선 농부가 되었다. 2012년 봄 충남 논산의 농지 3000평을 빌려 메밀 재배를 시작했다. 한 번의 성공과 한 번의 실패를 거쳐 올가을 세 번째 수확을 기다리고 있다. 자가 재배의 가능성을 확인한 김정영은 자가 제분을 준비 중이다.

제분을 위해서는 만만찮은 투자가 필요하다. 메밀과 메밀가루를 보관할 창고, 수백~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맷돌, 그리고 이를 설치할 제면실이 필요하다. 남들이 보기에 면옥향천을 통해 꽤 많은 돈을 벌었음 직한 김정영은 여전히 빚에 허덕이고 항상 앓는 소리를 한다. 그간 번 돈을 죄다 재배와 제분 설비를 갖추는 데 썼기 때문이다.

면 요리사에게는 강한 승리욕과 지치지 않는 체력이 필수다. 20년 가까운 마라톤 경력을 가진 김정영은 2년 전부터 철인3종경기에 도전했다.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1시간 반 동안 달리고, 휴일에는 12시간씩 사이클을 탄다.

지난 7월 제주도에서 열린 '국제철인3종경기대회'에 참가한 김정영은 수영(3.8km), 사이클(180.2km), 마라톤 풀코스(42.195km)를 11시간36분에 완주, 800여 명의 참가자 가운데 20위를 기록했다.

"요리는 목숨 걸고 하고 운동은 취미로 하는데, 요리가 훨씬 어렵다"고 김정영은 말한다. 목숨 걸고 요리하는 그에게 일본 진출까지 얼마나 걸리겠느냐고 물었다. "5단계 중 이제 겨우 1단계가 마무리됐다. 아마도 제분실이 완성되는 올 연말이면 2단계가 마무리될 것"이란다.

   
만만찮은 세월이 걸리겠지만 뭐 어쩌랴! 국수 가닥은 길고, 우리는 그가 만든 메밀국수나 즐기며 연목구어 하는 심정으로 기다릴 밖에…. 그가 과연 우리 땅에서 재배한 메밀로 도쿄에서 어떤 음식을 선보일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1971년 부산에서 태어난 김정영은 1996년부터 2002년까지 부산 남포동과 해운대 '희락'에서 일했다.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사이판 한식당에서 경험을 쌓은 뒤 현재 '김정영의 면옥향천'을 운영 중이다.

박상현 맛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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