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대원미디어 제공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팬을 거느린 애니메이터를 꼽으라면 미야자키 하야오(사진) 감독을 들 수 있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비롯해 '천공의 성 라퓨타' '이웃집 토토로' 등은 수많은 애니메이터에게 영향을 끼쳤으며, 지난 7월 개봉한 '퍼시픽 림'의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에게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베니스 국제영화제는 하야오 감독이 세계 영화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2005년 명예 황금사자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1941년 1월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하야오 감독은 비행기 회사의 공장장이었던 아버지 덕분에 부유한 환경에 자랐다. 가쿠슈인대학에서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한 후 도에이동화(현 도에이 애니메이션)에 입사해 본격적인 애니메이터의 길을 걷게 된 그는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몰이한 TV 애니메이션 '미래소년 코난'(1978)의 연출을 맡아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루팡 3세-칼리오스트로의 성'(1979)으로 처음 극장용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이름을 올렸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1984년 하야오 감독은 자신의 연재만화를 기초로 연출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 현대 문명의 폐해와 환경문제를 다루며 일본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된다. 이후 디즈니, 픽사와 더불어 세계 3대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라 불리는 스튜디오 지브리를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과 공동 설립한 그는 '천공의 성 라퓨타' '이웃집 토토로' '마녀 배달부 키키' '붉은 돼지' '모노노케 히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벼랑 위의 포뇨' 등을 차례로 연출하며 거장의 반열에 올랐으며, 다음 달 5년 만에 내놓은 신작 '바람이 분다'의 한국 개봉을 앞두고 있다.

자연 친화적이고, 반전주의자로서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을 애니메이션 속에 담고 싶어 하는 하야오 감독은 예나 지금이나 컴퓨터그래픽이 아닌 사람의 손으로 직접 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고집하고 있다. 한 땀 한 땀 수작업으로 탄생한 애니메이션이야말로 그림이 지닌 진정성을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벼랑 위의 포뇨'

지난달 26일 일본 도쿄 니바리키에 있는 자신의 아틀리에에서 만난 하야오 감독은 "어린이들을 위해 지금까지 없었던 판타지를 만들어내는 것이 나의 일"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것은 상업주의와 타협해서는 안 되는 신성한 일"이라는 점을 특별히 강조했다. 일흔 살이 넘은 나이에도 마치 '이웃집 토토로'에 나올 법한 아틀리에에서 자연의 일부분처럼 작업하고 있는 거장의 이 한마디가 그의 일생을 통해 일궈낸 '미야자키 하야오 월드'를 가장 잘 나타내는 순수한 표현이 아닐까.



◆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인터뷰

- '바람이 분다'가 전쟁 미화? 한 시대를 열심히 살았기에 비참했던 사람의 얘기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대원미디어 제공

지난달 일본에서 개봉한 '바람이 분다'는 항상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비행기 설계사인 호리코시 지로의 실제 삶을 그려 주목받은 애니메이션이다. 지로의 비행기에 대한 열정과 아내 나오코에 대한 사랑, 이탈리아인 비행기 제작자 카프로니에 대한 존경을 담은 '바람이 분다'는 그 자체로는 서정적이면서도 여운이 가득하다. 하지만 지로가 설계한 전투기 제로센이 태평양 전쟁 당시 주력기였다는 점은 이 영화를 논란에 빠뜨렸다. 국내에서도 다음 달 개봉을 앞두고 '바람이 분다'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 하야오 감독을 최근 일본 도쿄 니바리키에 있는 그의 아틀리에에서 만났다.


-왜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의 주력기였던 제로센을 설계한 호리코시 지로를 이번 영화의 소재로 잡았는지 궁금하다.

▶호리코시 지로는 당시 많은 요구를 받았지만, 그에 대항하면서 꿈을 이뤄온 사람이다. 그 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무조건 죄를 안고 가야 된다고 말할 수 없다. 내 아버지도 전쟁에 가담했지만, 좋은 아버지였다. 전쟁으로 힘든 시기를 살았던 이들은 그들만의 살아가는 방식이 있었을 것이다. 그 순간 시대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가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그들이 시대의 그림자를 업고 가는 건 숙명이지만. 무조건 그들을 나쁘게만 볼 수 없을 것 같다.

-한국에서 태평양 전쟁은 민감한 소재다. 이에 대한 감독으로서 생각은.

▶지금까지 내 작품에 이렇게 많은 일장기를 그려본 적이 없다. 영화 속에서 일장기가 붙은 비행기들이 줄줄이 추락한다. 그런 장면들을 통해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제로센을 말하자면, 실제로 가미가제 특공대에 사용된 제로센은 구식이었기 때문에 당시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주인공 지로는 많은 압박을 받았지만, 적극적으로 대응했던 인물이었다. 단지 전쟁이 끝나고도 그 회사에 계속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반박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무조건 죄를 안고 살아야 하는 것은 너무 잔인하다. 시대와 함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지로의 삶이 맞다, 틀리다를 말하고자 했던 게 아니라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비참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번 영화에서 마지막 신 전에 (태평양전쟁을 포함한) 10년 정도의 시간이 표현되어 있지 않다. 그 10년 정도의 시간은 전쟁이 가장 심각했을 때인데, 그 시기를 굳이 그리고 싶지 않았다.

	바람이 분다

-영화는 "바람이 분다, 살아야 한다. 살아있는 것이 멋지다"고 이야기한다. 어떤 의미인가.

'▶바람'은 산뜻한 바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시대의 거친 바람, 방사선을 포함한 독이 든 바람도 불어 댄다. 동시에 바람이 일어나는 것은 생명이 빛나는 증거이기도 하다. '세계는 있다. 세계는 살아 있다. 나도 너도 살아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이해한다.

-주인공 지로는 "일본은 가난하다"고 말한다. 그 의미는.

▶고도 경제 성장 결과 숫자상으로는 '일본은 풍족하다'고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은 가난하다'고 생각한다. 게임, 영화에 빠진 아이들, 과도한 소비나 경쟁, 이웃집 사람에 대한 무관심 등 그 예는 얼마든지 있다. 물질과 마음의 균형이 잡힌 사회는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문화계 인사로서 정치적 의견을 내는 것에 대한 생각은.

▶목소리는 내야 할 부분에서 소리를 내지 않으면 시대에 휩쓸려 버렸을 뿐 시대를 살았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뿐이라면 일을 할 기회도 없을 것이다.

-한국 관객이 보기에는 불편한 부분도 있다.

▶영화를 관람하는 것이나 영화를 어떻게 볼 것인지는 개인의 자유다. 나는 고뇌하면서 성실하게 이 영화를 제작했다. 이 점만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 미야자키 하야오 월드의 대표 애니메이션들

#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

거대 산업문명이 붕괴하고 천 년 후의 지구는 부해라 불리는 유독한 균류의 숲이 확장되고 있다. 바람계곡의 마을 사람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는데, 군사국인 토르메키아는 7일 동안 지구의 생명체를 모두 태워버린 거신병의 부활을 통해 균류를 모두 없애려 한다. 이에 화가 난 곤충류 집단인 오무는 토르메키아군에 대항한다. 자연과의 공생만이 인류가 살 길임을 안 바람계곡의 공주 나우시카는 토르메키아군과 오무, 균류 사이에서 자신의 몸을 던진다. 현대 문명에 관한 성찰과 환경보호, 공동체 사회의 등장, 무정부주의적 세계관, 여성 주인공의 등장 등 '하야오 표' 애니메이션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 천공의 성 라퓨타(1986)

	천공의 성 라퓨타

광산촌에서 사는 고아 파즈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소녀 시타를 구해준다. 비행석 목걸이를 걸고 있던 시타는 하늘에 떠 있는 성 라퓨타에서 온 소녀로, 정부의 조직 무스카 일당과 해적인 도라 일당에게 쫓기고 있었다. 파즈는 시타와 함께 라퓨타를 찾아 나선다. 조나단 스위프트의 소설 '걸리버 여행기'의 제3부에 등장하는 떠도는 섬 라퓨타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온 작품이다. 주인공 파즈와 시타는 '미래소년 코난'의 코난과 라나를 연상시키며, 전쟁 무기가 누구의 것이 되느냐에 따라 다르게 쓰일 수 있다는 암시가 담겨 있다.

# 이웃집 토토로(1988)

열한 살의 언니 사츠키와 네 살의 메이는 아빠와 함께 입원 중인 엄마가 퇴원하면 요양할 수 있는 시골로 이사한다. 도토리나무가 우거진 숲 속에 있는 낡은 집에서 새로운 생활을 하는 두 자매는 도토리나무의 요정인 토토로를 만나 친구가 된다. 그러나 엄마의 퇴원이 연기됐다는 전보가 오고, 혼자 엄마를 찾아 나선 메이는 길을 잃는다. 사츠키는 사라진 메이를 찾기 위해 토토로에게 도움을 청한다.

비 오는 날 밤 버스 정류장에서 비 맞고 있는 토토로에게 사츠키가 우산을 건네고 나무 씨앗을 맞는 장면이나 메이를 찾기 위해 사츠키가 고양이 버스를 타고 가는 장면이 눈에 선한 작품이다. 하야오 애니메이션 중 가장 서정적이고, 자연에 대한 섬세한 표현이 도드라졌던 작품이다.

# 붉은 돼지(1992)

	붉은 돼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20년대 말 이탈리아 공군의 에이스였지만, 전쟁의 참혹함을 잊기 위해 스스로 마법을 걸어 돼지가 된 포르코 롯소는 무인도에 살면서 하늘의 해적들을 소탕하며 살고 있다. 해적들은 포르코와 대적하기 위해 미국인 비행사 도널드 커티스를 고용하고, 둘은 치열한 대결을 벌인다. 하야오 감독인 연재했던 만화 '비행정시대'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으로, 감독 자신의 성향이 가장 많이 드러난 영화이기도 하다. 정치적으로는 이탈리아 파시즘에 대한 강한 반감을 느낄 수 있다.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이사를 하던 치히로와 그의 부모는 무언가에 이끌려 낯선 마을에 들어선다. 들떠 있던 부모는 음식을 마구 먹어치워 돼지로 변하고, 겁에 질린 치히로는 마을에 머물게 된다. 밤이 되면 800여 신들이 찾아오는 온천장 종업원으로 일하게 된 치히로는 주인인 마녀로부터 센이라는 새 이름을 얻게 된다. 자신을 도와주던 용으로 변하는 소년 하쿠가 상처를 입게 되자 치히로는 생과 사를 운행하는 죽음의 기차에 오른다. 하야오 감독이 "열 살이 되거나 열 살을 경험했던 모든 이들을 위해 만들었다"고 말한 작품이다. 낯선 세계를 떠나면 자신을 잃어버리는 센은 열 살의 시기를 잊어버린 어른을 위한 캐릭터이기도 하다.

# 바람이 분다(2013)

비행기 설계사 호리코시 지로는 관동대지진 때 도움을 준 인연을 계기로 나오코 결혼한다. 하지만 나오코는 폐결핵을 앓게 되고, 지로는 나오코에 대한 사랑을 간직한 채 비행기 설계에 매진한다. 비행기 설계사 호리코시 지로(1903~82)의 삶과 호리 타츠오(1904~53)의 자전적 소설 '바람 불다'의 순애보를 접목한 이 애니메이션은 하야오 감독이 최초로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화제를 모았다. 지난 7월 일본에서 개봉한 후에는 영화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전쟁을 미화했다는 논란을 일으켰다.


◆ 지브리 미술관

- 토토로의 고양이 버스가 정말로 있었어!

	'이웃집 토토로'

일본 도쿄 미타카에 있는 '지브리 미술관'은 숲 속에 숨겨진 '라퓨타 성'를 연상한다. 담쟁이 넝쿨과 짙게 우겨진 나뭇가지 속에 숨겨진 지브리 미술관의 입구에 서자 옥상 정원에 세워진 '천공의 성 라퓨타'에 등장하는 거신병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6m 높이의 거신병은 이곳이 '미야자키 하야오 월드'라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게 한다.

지하 1층, 지상 2층인 지브리 미술관은 2001년 10월 1일 개관했다. 소규모 미술관이지만, 내부에는 하야오 감독이 그간 작업하면서 사용한 몽당연필이나 전축, 담배꽁초와 같은 다양한 소품과 각 캐릭터의 스케치가 빼곡히 소장돼 있다. 애니메이션 제작 과정을 쉽게 알 수 있는 코스도 마련돼 있어 교육적이기도 하다. 2층에는 '이웃집 토토로'에 등장하는 커다란 고양이 버스 인형이 아이들을 반긴다. 지하에는 아이들을 위해 지브리 미술관에서만 볼 수 있는 단편 애니메이션이 상영된다.

지브리 미술관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직접 구상하고 디자인을 맡았는데, 나선형 계단이나 자연 친화적인 복도의 소품은 아이들을 눈높이에 맞춘 세심한 배려가 느껴진다. 미술관 내의 많은 창은 아름다운 원색의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돼 있다. 기요후미 관장은 "저녁이 되면 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여러 가지 색이 마룻바닥을 비춘다. 같은 장소라도 빛의 높이와 시간에 따라 전혀 다른 풍경이 된다"고 설명했다.

예약제로 운영되는 지브리 미술관은 하루 관람객이 2400명에 달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한국 관광객은 출국 전에 예약하는 것이 좋다.

	지브리 미술관 2층에 있는 '이웃집 토토로'의 고양이 버스 인형. ⓒMuseo d'Arte Ghibl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