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영화의 대표선수급 감독들이 줄지어 해외진출에 나섰다.

김지운과 박찬욱이 할리우드로 넘어가 '라스트 스탠드'와 '스토커'를 연출한 데 이어 봉준호는 크리스 에반스, 에드 해리스, 존 허트, 틸다 스윈튼 등 유명 배우들이 출연한 '설국열차'를 만들었다. 430억 원의 제작비를 들인 '설국열차'는 세계시장을 겨냥한 작품이다. '라스트 스탠드'와 '스토커'의 성과는 첫걸음에 만족하는 정도였다면 '설국열차'는 어떨까? 시사회 반응으로 본다면 반반이다. 미국에서 반응이 좋기를 기대하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현실적으로 본다면 미국의 할리우드를 제외한 나라의 영화가 세계 시장을 휩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21세기 들어 대중문화의 지역성이 강해지면서 드라마와 코미디는 자국 영화들의 강세가 현저하다. 짐 케리와 아담 샌들러 이후 미국 코미디를 대표하는 배우는 잭 블랙과 세스 로건이지만, 한국에서는 인지도조차 희박하다. 그럼에도 100여 년 동안 영화시장을 장악해 온 할리우드 영화는 끊임없이 변화하며 세계를 공략해왔다. 관객 역시 할리우드 영화의 스타일에 익숙해졌고. 21세기에도 여전한 할리우드의 힘은 스펙터클이다. 적어도 스펙터클에서 할리우드를 대신할 국가는 없다.

한국, 일본, 프랑스 등 어느 나라건 인기를 끈 블록버스터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그 영화들도 해외로 나가는 순간 경쟁력이 사라진다. 이를테면 윤제균 감독의 '해운대'를 보자. 엄청난 해일에 부산이 쑥밭이 되는 스펙터클을 보며, 한국인은 공감하고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할리우드 영화와 비교되면서 저예산의 재난영화로 취급받게 된다. 제작비부터 할리우드에서는 저예산이다. 일본이나 유럽에서 '해운대'는 수많은 외국영화의 하나일 뿐이다. 한국인의 정서에 조응하는 캐릭터, 대사, 상황은 외국인이 보기에는 낯설고 이해하기 어렵다.

올여름 기대작의 하나였던 '미스터 고'의 부진도 그런 의미로 분석할 수 있다. 합작영화를 만들게 되면, 합작에 참여한 나라들의 요구와 정서에 모두 맞추려다 어정쩡한 영화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 개성적인 색깔이 사라지고 단조로운 영화. 애초에 세계시장을 겨냥한 영화들도 그렇다. 해외시장에 팔리기 위해 보편적인 캐릭터와 상황을 만들어낸다면서, 결과적으로는 심심하고 지루한 영화가 된다. '가장 민족적인 것이 세계적이다'는 말에 허점도 많지만, 한 나라에서 호응받지 못한 영화나 소설이 세계적인 히트를 하는 경우는 없다. 인기를 끌고 있는 '한류' 역시 세계시장을 겨냥하고 만들었다기보다, 국내에서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 만들어진 영화, 노래, 드라마 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세계시장을 목표로 만든다면 어설프게 한국과 세계를 동시에 사로잡을 생각을 하지 말고, 아예 할리우드 영화를 만들겠다고 나서는 게 필요할 수도 있다.

할리우드 스타일의 프랑스 액션영화 '레옹'과 '니키타'를 만들었던 뤽 베송은 제작자가 되면서 세계시장에 통할 수 있는 영화들을 꾸준하게 만들어왔다. 저예산의 액션영화 '트랜스포터' 시리즈와 이연걸을 기용한 '키스 오브 드래곤' 등등. 그리고 마침내 '테이큰'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북미시장에서 1위를 차지했던 '제5원소'를 연출하기도 했던 뤽 베송이지만 그런 규모의 블록버스터로 할리우드와 지속해서 경쟁하는 것은 불가능함을 알고 있었다.

세계시장을 겨냥한다면, 그 '세계'가 어디인지부터 정확하게 조준해야 한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