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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 따라 이야기 따라 <12> 산청 구형왕릉

망국의 설움 절절히 사무쳐…새·초목도 경외시 하는 곳

  • 김인수 기자 iskim@kookje.co.kr
  •  |   입력 : 2013-05-23 19:01:26
  •  |   본지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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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가야의 마지막 왕 구형왕의 무덤인 전(傳) 구형왕릉. 사적 214호 이다.
- "나라 잃은 몸이니 돌로 덮으라"
- 금관가야 마지막 구형왕 뜻 따라
- 우리나라 유일 피라미드식 무덤

- 정확한 사료는 아직 발견 안돼
- '전설속의 구형왕릉'으로 불려

- '국고 털어 신라에 항복한 왕'
- 승자의 역사에 서러움 더해

대전~통영 고속도로 생초 IC를 빠져 나오면 남강의 상류인 경호강이 굽이굽이 이어진다.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인 경호강을 따라 4㎞가량 가면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 덕양전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왼쪽 산길을 따라 1㎞가량 올라가면 피라미드처럼 생긴 돌무덤 구형왕릉이 한눈에 들어 온다. 자가용으로도 올라갈 수 있을 만큼 길이 넓지만 시나브로 걸어 올라가다 보면 다양한 볼거리를 즐길 수 있다.

■국내 유일한 피라미드

구형왕릉은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 구형왕의 무덤이다. 사적 214호 이다.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한국판 피라미드이기도 하다.

이 무덤은 가야의 일반적인 묘제와는 판이한 형태다. 경사진 언덕의 중턱에 층단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다. 경사진 지형에 수만 개의 잡석으로 모두 7단을 쌓아 올렸고 정상부는 타원형의 봉문으로 된 높이 7.15m의 거대한 돌무덤이다.

특히 전면 4단째에 폭과 높이 각 40㎝, 깊이 68㎝ 크기의 감실(불상, 신주 등을 안치시키기 위한 공간) 형태의 시설이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내용물도 없고 용도도 알려지지 않고 있다.

돌무덤은 1m 높이의 담장이 에워싸고 있고 무덤 앞에 가락국양왕릉(가락국은 가야, 양왕은 구형왕)이라고 적힌 비석이 있다.

구형왕릉의 신비로움도 전해오고 있다.

주변의 등나무와 칡넝쿨이 왕릉으로 뻗지 못하고, 이끼나 풀은 자라지 않고 위로는 까마귀와 참새가 날지 않는다고 한다. 이 같은 신비함에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진실이냐 전설이냐

   
구형왕릉에서는 매년 춘(음 3월16일) 추(음 9월16일)향례와 음력 초하룻날, 보름날에 삭망향례를 올린다.
180여 년 전에 발견된 왕산사기에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신하를 보내어 구형왕릉과 왕산사를 중수케 했다고 기록돼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왕산은 현의 서쪽 10리 지점에 있다. 산중에 돌을 포개서 만든 둔덕이 있고, 사면이 모두 층계로 돼 있는데 왕릉이라는 전설이 있다고 기록돼 있다. 또 일본사기와 고사기에 구형왕의 사망일과 능묘 장소, 모양이 정확히 기록돼 있고 이는 동국여지승람과 왕산사기와도 일치하고 있다. 또 지역에서 내려오는 전설도 구형왕릉이 사실임을 뒷받침하고 있다.

지역에서는 "구형왕이 '나라를 구하지 못한 몸이 어찌 흙에 묻히겠느냐, 차라리 돌로 덮어달라'고 해 살아남은 군졸들이 왕의 시신을 매장하고 잡석을 포개 얹었다"고 구전돼 오고 있다.

반면 학계에서는 이 돌무덤이 석탑이나 제사를 지낸 제단이었을 수도 있다는 추정을 제기한 바 있다. 이것을 탑으로 보는 이유는 이와 비슷한 것이 안동과 의성지방에 분포하고 있다는데 근거를 두고 있다.

이 같은 이유에다 정확한 사료의 뒷받침이 부족해 지금까지 이 무덤은 왕릉으로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전설속의 유적, '전(傳) 구형왕릉'으로 불리고 있다.

■승자가 적은 역사에 희생된 구형왕

삼국사기 법흥왕조에 수로왕이 세운 금관가야가 서기 532년에 멸망했다는 내용이 있다. 법흥왕 19년, 금관국 임금 김구해가 왕비와 맏아들 노종, 둘째아들 무덕, 막내아들 무력과 함께 국고의 보물을 가지고 와서 항복했다. 왕은 예를 갖추어 그들을 대우하고 상등의 직위를 주었다. 그리고 본국을 식읍으로 삼게 했다. 아들 무력은 각간의 벼슬에 이르렀다고 기록돼 있다. 김구해는 금관가야의 마지막 임금 구형왕을 가리킨다.

삼국사기는 구형왕에게 양왕이라는 별명이 생긴 까닭도 설명해주고 있다. '국고의 보물을 가지고 와서 항복했다'는 표현이 그것이다. 이 표현은 구형왕이 끝까지 신라와 혈전을 벌이다가 끝내 사로잡히거나 전사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나라를 바치고 항복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나라를 신라에 양보했다고 해서 양왕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얻은 것이다. 이는 김부식이 승자인 신라 중심으로 역사를 기술했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삼국유사와 일본사기의 관련 서술은 이와 사뭇 다르다. 일연은 '금관가야의 마지막 시간을 (신라)왕이 군사를 일으켜 쳐들어오매 (구형)왕이 친히 군졸을 부려 싸웠으나 저편은 많고 이쪽은 적어서 대전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중략) 항복하였다'고 증언하고 있다.

구형왕이 나라를 들어 바친 것이 아니라 싸우다가 어쩔 수 없이 항복을 했다는 뜻이다. 만약 구형왕이 저 하늘에서 삼국사기의 기록을 본다면 그는 아마 억울하고 원통해 다시 한 번 눈물을 흘릴 듯하다.

일본사기에도 '금관가야는 (신라의 침공에) 미리 준비하지 못하고 의탁할 곳을 몰랐기 때문에 멸망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 왕산 기슭 가야국의 흔적들

- 쫓겨난 왕의 마지막 안식처

   
구형왕과 왕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드리는 덕양전
산청군 왕산 기슭에는 구형왕릉 외 덕양전과 수정 궁터, 사대석 등 가야국의 흔적들이 즐비하다.

덕양전은 가락국 10대 왕 구형왕(양왕)과 왕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드리는 곳이다. 구형왕릉으로 가는 길목 1㎞가량 아래 지점에 있다.

안내판에는 구형왕이 532년에 신라 법흥왕에게 나라를 선양한 후 이곳 왕산 수정궁으로 옮겨 살다가 5년 후 돌아가셨다고 기록돼 있다.

그 뒤 제사를 올리다 전쟁 때문에 중단되었으나 1798년부터 다시 항례를 올리고 있다. 광무 2년(1898) 덕양전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1930년 지금의 자리로 옮긴 후 1991년 증축 됐다. 경남도 문화재 자료 50호로 지정돼 있다.

매년 춘(음 3월16일) 추(음 9월16일)향례와 음력 초하룻날, 보름날에 삭망향례를 올리고 있다.

왕산은 구형왕이 옮겨와서 살았던 산(山)이라는 의미이니, 덕양전 뒷산이 본래부터 그렇게 불린 것이 아니라 금관가야 멸망 이후에 새로 붙여진 이름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구형왕이 5년 동안 살았다는 수정 궁터는 구형왕릉 입구의 홍살문에서 왼쪽으로 난 가느다란 산길을 타고 1.5㎞ 정도 올라가면 나오는 류의태 약수터의 오른쪽 산비탈 일대이다.

물론 당시의 건물이 남아 있을 리는 없으니, 그저 여기가 구형왕이 살았던 수정궁 자리이구나 싶어 세월의 무상함을 탄식케 한다.

김유신이 활을 쏘았다는 사대석에는 '신라태대각간순충장열흥무왕김유신사대비'란 글씨가 있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구형왕의 증손자인 김유신이 화랑으로 활동하던 청년 시절 구형왕릉을 찾아와 무예를 연마하고 활을 쏘던 곳을 기념하여 세워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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