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스 크라임의 한 장면.

요즘의 범죄 영화들은 치밀한 계획과 스펙터클한 액션, 긴박감 넘치는 이야기 전개로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그런데 시대를 역행하듯 '느리게 걷는' 범죄 영화 '헨리스 크라임'이 범죄 영화를 보는 또 다른 재미를 주며 눈길을 끈다.

'스피드' '매트릭스' 등으로 한때 할리우드 액션 영화의 주인공으로 이름을 날렸던 키아누 리브스가 주연은 물론 제작에도 참여한 '헨리스 크라임'은 어딘지 엉성해 보이는 인물들과 절도 계획으로 은행금고를 터는 소품 같은 영화다. 또 범죄 영화를 바탕으로 로맨스 영화의 향기를 품고 있는 흔치 않은 색깔의 영화이기도 하다.

고속도로 톨게이트 야간 매표원인 헨리는 무기력한 생활을 한다. 동료들이 자신을 은행 강도에 몰래 끌어들여도 혼자 잡혀 해명도 하지 않고 1년간 감방 생활을 한다. 가석방으로 출소한 헨리는 자신을 감방으로 보낸 은행을 바라보다 교통사고를 당하고, 운전자인 연극배우 줄리와 인연을 맺는다.

이야기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헨리는 은행 부근의 카페에 걸린 옛날 신문 기사에서 은행 밑으로 굴을 뚫었던 도둑의 기사를 보고는 진짜로 은행을 털기로 결심한다. 교도소 생활을 함께한 사기꾼 맥스를 합류시킨 헨리는 은행과 이웃한 소극장의 땅굴을 이용할 계획을 세운다.

헨리에게 은행털이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함인 것 같다. 헨리는 옛날 땅굴을 이용해 다시 은행을 털어보겠다는 계획을 세우지만 엉성하기만 하다. 그런데 자신의 계획에는 없었던 줄리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줄리와 사랑을 나누는 그의 얼굴에는 생기가 흐른다. 게다가 헨리는 은행을 털기 위해 줄리가 주연을 맡은 연극 '벚꽃동산'에 출연하는데, 자신과 전혀 맞지 않을 것 같은 연기에 소질을 보인다. 연극 첫 공연날 은행도 털어야 하는데, 헨리의 은행털이는 성공할 수 있을까? 그리고 줄리와의 사랑은?

인생의 낙이 없던 남자가 은행을 털기로 하면서 활력을 얻고, 삶에 있어 사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을 천천히 보여주는 영화가 '헨리스 크라임'이다. 처음에는 답답하게 느껴지던 헨리의 모습이 엔딩에서는 잔잔한 미소로 바뀌면서 흐뭇해지는 것이 이 영화의 매력이다. 한편,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연극 '벚꽃동산'은 안톤 체호프의 4대 희곡 중 하나로, 극의 내용이 헨리의 삶과 맞아떨어지는동시에 헨리와 줄리의 사랑을 엮어주는 역할을 한다. 개봉 1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