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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원의 시네 에피소드] 우리의 왕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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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2-09-20 18:46:19
  •  |  본지 3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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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을 3개월 남짓 앞둔 시점에서 '광해, 왕이 된 남자'가 파죽지세를 올리고 있다. 개봉 첫 주 3일 만에 120만의 관객이 이 영화를 보았다. 이 시기 개봉스코어의 역대 신기록이라 한다. "요즘 정치인들도 좀 봤으면", "광해를 보고 노무현을 추억하다", "기성정치에 대한 소시민적 분노" 등 네티즌들이 남긴 코멘트는 의도했든 아니든 간에 이 영화가 지금의 대선정국에 어떤 무언의 신호를 타전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비슷한 소재를 다룬 '나는 왕이로소이다'에서는 감지되지 않았던 반응이다. 성군이라 불리는 세종대왕이 누리지 못했던 열광이 왕이라는 칭호조차 박탈당한 폭군에게 쏟아지다니 신기한 일이다.

왕이 되기 싫었던 세자가 그와 꼭 닮은 거지를 궁 안에 들여놓고 유유히 세상을 떠돌다 민심을 읽는 눈과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는 성군의 탄생비사를 다룬 '나는 왕이로소이다'가 영화적 야심이 부족한 일종의 팩션소동극에 가깝다면, '광해'는 일단 그 야심과 재능에서 압도적이다. 소재의 흥미로움과 더불어 연기, 연출, 세팅, 촬영, 편집 등 거의 모든 측면에서 높은 완성도를 지닌 점이 대중적 흡인력을 높인 것으로 보인다.

독살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신을 닮은 광대를 왕의 자리에 세워놓았더니 그 광대가 성군 정치를 펼쳐보이더라,는 이 이야기에는 역사에 대한 대담한 상상력이 담겨있다.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 중 "숨겨야 될 일들은 조보에 내지 말라 이르다"라는 한 줄의 글귀에서 출발하여 '승정원 일기'에서 사라진 15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를 온전히 상상력으로 재구성하면서 추창민 감독은 다소 발칙한 설정을 도입하기로 한다.

그것은 광해에 대한 당대와 후대의 엇갈리는 평가를 아예 서로 다른 두 명의 인물이 한 일로 분리하는 것이다. 그 결과 굶주린 백성들에게 곳간을 열고, 땅을 가진 만큼 조세를 부과하는 대동법을 실시하고, 사대의 예 대신 제 백성을 살리기 위해 실리외교를 펼친 것은 (광해가 아니라) 광대가 한 일이 된다. 고지식하게, 명백한 역사 왜곡이라고 지적하려는 게 아니다. 도리어 이는 새로운 정치에 대한 대중들의 바람을 담기 위한 영리한 설정이라 해야 할 것이다. 여기엔 광대를 내세워 새로운 리더가 가져야 할 최소한의 자질을 재상기시키고 우리가 어떤 리더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는 환기시키고자 하는 세밀한 영화적 전략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알고 보니 광해도 꽤나 괜찮은 왕이더라는 것보다 훨씬 솔깃한 얘기 아닌가.

사실 광대 하선이 광해의 자리에서 펼친 정치를 정치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영화는 마치 좋은 인성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듯, 정치에 대한 이상주의적이고 다소 순진한 관점을 드러낸다. 그럼에도 동시대 복잡한 현실정치를 대면하고 있는 우리에게 영화는 당장 현실 적용 가능한 매우 실용적인 교훈 하나를 들려준다. 이를테면 광해가 하지 못한 일을 일개 저잣거리의 광대가 해낼 수 있었던 이유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광해에겐 있지만 광대에겐 없는 것. 그들 사이엔 권력욕이라는 하나의 명료한 차이가 있다. 최고 권력자의 지위에 오르는 것을 삶의 목표로 삼은 이는 임기를 개인의 목표 달성으로 시작할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리더가 누구인지를 판단하는 일은 어쩌면 생각보다 쉬운 일일지도 모른다.

영화평론가·부산대 영화연구소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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