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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원의 시네 에피소드] 올 여름 가장 서늘한 영화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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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2-08-09 00:07:40
  •  |  본지 3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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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괴롭혀 자살로 몰아간 아이들의 뒤에는 그 아이들을 괴물로 키운 부모들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 아이가 그럴 리 없다'는 말로 시작해서 '도리어 우리가 피해자'라고 우기는 가해자 부모의 반응은 어쩌면 그렇게 하나같은지, 그들이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공분을 그들 자식에게서 그들 자신에게로 돌리는 데에는 이것만큼 효과적인 게 없다 싶다. 지금 조용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연극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그 제목부터 우리의 공분을 절묘하게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이야기는 동시대 사회문제를 재환기시키는 데는 효과적이겠지만 그 자체로 흥미로운 영화적 소재가 되기는 어렵다. 원인이 뚜렷한 비극이 반복될 때 그것은 영화로 다루기보다는 국회의 안건이 되는 편이 효과적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재발 방지를 위한 법제화로도 통제되지 않고 합리적 이성으로 도무지 파악할 수 없는 가공할 만한 비극도 비일비재하지 않은가. 이를테면 모두가 '악마'라고 손가락질하는 자식을 둔 어머니는 우리 생각만큼 그렇게 전형적인 '악의 뿌리'가 아닐 수도 있다. 지금 예술영화전용관에서 1만 관객을 돌파한 문제작 '케빈에 대하여'는 그런 어머니에 관한 영화다. 말하자면 콩 심은데 팥 나는 이야기랄까.
영화는 초췌한 행색에 파리한 얼굴을 한 에바가 그 도시의 '모든' 이들에게 온갖 폭력과 비방을 당하면서도 그걸 온전히 자신의 몫으로 감수하는 장면들로 시작된다. 도대체 그녀의 죄가 무엇이길래? 현재와 과거를 경계 없이 뒤섞어 놓은 이 영화는 그녀의 수난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마지막 순간에 밝히지만 그 비극이 일어난 이유는 끝끝내 설명하지 않는다. 린 램지 감독은 그건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던 그날 아침, 에바의 16살 난 아들 케빈은 그녀에게 복수라도 하듯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 그 순간 그녀의 삶은 지옥으로 떨어졌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녀에게도 케빈은 거대한 미스터리다.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그녀의 고통 뿐 그녀에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는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케빈에 대하여'를 보고 3년 전에 읽었던 어느 수기를 불현듯 떠올린다. 1999년 콜롬바인 고교 총기난사 사건을 일으킨 17세 소년의 어머니가 그로부터 10년 뒤에 쓴 그 글은 우리가 궁금해 했지만 결코 알아낼 수 없었던 것을 밝혀주리라는 기대를 단번에 수포로 돌린다. 대신 거기엔 불가해한 삶이 안겨주는 고통의 감각으로 가득차 있었다. 출근을 준비하던 엄마에게 짧게 "안녕(bye)"하며 인사하고 나간 아이는 불과 몇 시간 뒤 무차별 총격으로 학생 12명과 교사 1명을 죽인 후 도서관에서 자살했지만, 그 어머니는 "아이가 왜 그랬는지 저는 영원히 알 수 없을 거예요"라고만 했다.

다시 찾아 읽은 그 글은 그날 아침의 일상적인 풍경과 충격적인 사건 간의 간단없는 연결로 이상한 슬픔과 서늘한 전율 사이를 혼란스럽게 오가게 한다. 아들과 함께 했던 17년의 기억을 하나하나 되살리며 그 끔찍한 행위의 근원을 자기 안에서 되묻던 그 어머니는 '케빈에 대하여'의 에바와 쌍둥이처럼 닮았다. 아들이 남긴 공포와 고뇌 속에서 살아가게 될 그 어머니들의 여생은 그 어떤 공포영화보다 더 서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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