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장·교사의 일상적인 성폭력·학대, 청각장애인학교 실제 사건 재구성
-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사라진 비인간적인 우리 사회에 대한 질타

진실의 소리는 울림이 큰 법이다. 황동혁 감독이 만든 '도가니'(오는 22일 개봉)는 광주의 한 청각 장애인학교에서 실제 일어난 사건을 재구성한 것으로 우리 사회의 어둡고 불편한 진실을 고발하고 있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 자막을 통해 감독은 "믿을 수 없지만, 청각장애인학교에서 실제 일어난 사건입니다. 2000년부터 5년간 청각장애아를 상대로 교장과 교사들이 비인간적인 성폭력과 학대를 저질렀습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 이야기는 진실입니다. 이제 이 끔찍한 진실을 마주해야 할 시간입니다"라고 밝힌다. 그 진실의 시작은 이렇다.

인호(공유 분)는 무진에 있는 장애인 학교에 미술교사로 발령받는다. 모범학교로 선정된 바 있는 이 학교 교장은 지역사회 유력인사로 학교 설립자의 아들이다. 교장의 쌍둥이 동생은 학교 행정실장이다. 인호는 부임 첫날부터 학교 분위기가 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지만 기분탓이려니 하고 넘긴다.

그러나 며칠 후, 인호는 사감 선생에게 폭행당해 기절한 연두를 발견해 병원에 입원시킨다. 그곳에서 연두가 성폭행을 당했다는 충격적인 얘기를 아이들의 작고 여린 손을 통해 모두 듣게 된다. 오래전부터 이들 장애아를 대상으로 교장을 비롯한 일부 교사들이 폭력과 성폭행을 일삼아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인호는 인권위원회 소속의 유진(정유미 분)과 가해자들을 검찰에 고발한다. 그러나 지역 유지인 가해자들은 피해 학생들의 부모를 돈으로 입막음 하고, 판·검사도 구워삶아 솜방망이 처벌로 풀려나고 만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현실에서도 가해자들 가운데 누구나 수긍할 합당한 처벌을 받은 사람은 없다. 그뿐 아니라 일부 교사는 다시 복직돼 어딘가에서 교사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아이들 곁에 있다. 모든 사건이 발생했던 이 장애인 학교는 이름만 바꿔 학교를 계속 이어가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고 한다.

실제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굳이 알고 싶지 않은 불편한 진실에 그쳤을 이야기가 영화를 보고 나면 이 사회의 어른으로서 결코 그냥 넘길 수 없는 책임감과 중압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것은 잘못을 참회하지 않는 뻔뻔한 가해자들과 그들의 잘못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그들이 빠져나갈 수 있게 방관한 무리들이 사회의 또 다른 어른이며 이웃이라는 점이다.

영화의 출발점인 소설 '도가니'를 집필한 공지영 작가는 "집행유예로 석방되는 그들의 가벼운 형량이 수화로 통역되는 순간 법정은 청각장애인들이 내는 알 수 없는 울부짖음으로 가득 찼다"는 한 줄의 글이 도화선이 되어 소설 집필을 결심했다. 소설의 표지에 "진실은 결코 개에게나 줄 수 없다"고 결연하게 적은 그녀는 이 한편의 이야기를 위해 그간의 모든 집필을 중단하고 작품에 몰입했다고 한다.

'도가니'와 같이 실제 사건을 영화화했던 작품들이 있다. 1986년 경기도 화성에서 일어난 연쇄살인사건을 추적하는 형사들을 그린 '살인의 추억'이 그중 하나다. 극적인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내는 동시에 자연스러운 유머가 살아있는 이 영화는 봉준호 감독 연출과 송강호 김상경의 연기가 화제가 됐다.

그리고 아홉살 된 아들을 빼앗긴 부모와 유괴범과의 44일간 피말리는 날들을 보여준 '그놈 목소리'(박진표 감독)도 있다. 1991년 이형호군 유괴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실제 아이를 납치한 후 바로 살해하고 44일동안 부모에게 60여 차례의 전화를 통해 몸값을 요구했던 희대의 살인범에 대한 이야기다.

올 2월에 개봉했던 영화 '아이들···'(이규만 감독)은 도롱뇽을 잡으러 집을 나선 다섯 명의 초등학생들이 깜쪽같이 사라진 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1991년 3월 대구시 달서구 이곡동에 살던 우철원(당시 13세) 군 등 5명의 동네 초등학생들이 개구리를 잡기 위해 집을 나섰다가 실종된 사건으로 수많은 의혹에 쌓여 있었다. 실제 사건 수사 과정에서 아이를 잃은 슬픔으로 피눈물을 흘리는 피해 학생의 부모 중 한 명이 용의자로 지목돼 수사를 받는 황당한 해프닝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