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민이 부산도시철도 1호선 동래역 아래 온천천 제방 콘크리트 벽에 설치된 테마벽면 작품 '역사의 벽' 앞을 자전거를 타면서 지나가고 있다. 강덕철 기자 kangdc@kookje.co.kr

- 1995년 시작된 온천천 살리기로 물고기와 새가 돌아왔다
- 변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 삭막했던 제방 벽에 그림을 그려 야외갤러리로,
- 도시철도 아래는 피서명소로…

-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도심생태하천으로
- 온천천은 탈바꿈하고 있다


보라. 여기는 온천천. 수풀이 무성한 하천에는 맑은 물이 흐른다. 순간 숭어가 수면 위로 퍼뜩 뛴다. 주위에는 청둥오리와 왜가리가 한가롭게 먹이 사냥을 하고 있다. 산책로에는 하루 일과를 끝낸 시민들이 유유자적 거닌다. 자전거 페달을 밟는 사람의 얼굴은 평화롭다.

하천 주변은 도심의 아파트 숲.

지금 해 질 녘 온천천을 가로질러 부산 동래구와 연제구를 이어주는 다리 세병교 주변에서 그처럼 기분 좋은 장면을 목격할 수 있다. 대한민국 어느 도시에 가도 구경하기 힘든 도심의 하천 풍경이다.

누구는 서울의 청계천과 비교하지만 온천천은 인공의 하천으로 변모한 것이 아니다. 주변에는 아파트 단지가 즐비하고 하천 위로는 도시철도가 지나가지만 자연 친화형으로 탈바꿈했다. 그래서 더 가치가 있다. 산업화의 산물이었던 콘크리트 덩어리가 속속 철거되고, 발원지인 금정산과 낙동강에서 하루 2만 t 이상의 물이 방류되면서 맑은 물이 흐른다. 현재 한창 진행 중인 온천천 정비사업이 마무리되면 하루 5만 t 이상의 물이 방류될 예정이어서 더욱 맑아질 것이다.

시민들이 부산도시철도 장전역 부근 온천천 돌계단에 앉아 쉬고 있다. 이 도심 하천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제방에는 부산 10경을 사실주의 그림으로 재탄생시킨 '문화의 벽면'이 조성돼 있다. 강덕철 기자 kangdc@kookje.co.kr

또 보라. 세병교에서 금정산 방면으로 올라가면 시대흐름을 잘 드러내는 도심 하천의 색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어쩔 수 없이 설치됐던 하천 콘크리트 벽면이 테마벽면 공간으로 변했다. 놀라운 발상이다. 우중충한 콘크리트 벽면을 활용해 하천 속의 갤러리를 조성한 것이다. 문화적 상상력이 돋보인다.

세병교에서 금정산 방면으로 온천천 위를 가로지르는 부산도시철도 1호선 동래역과 명륜역, 부산대역, 장전역 등 역사 부근 하천 벽면에는 각각 '역사의 벽', '학습의 벽', '희망의 벽, '문화의 벽'이 들어섰다. 1250도에 달하는 고온에 구운 세라믹(실사도자기) 타일로 작품을 만든 이들 야외 갤러리를 직접 찾으면 새삼 온천천의 존재감이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그 옛날 온천천의 빨래터도 복원될 예정에 있다. 온천천을 가로지르는 도시철도 역사 밑은 한여름 더위를 식혀주는 도시민들의 피서 공간으로 떠올랐다. 찰랑찰랑 맑은 물이 흐르는 하천 변에 도시철도 역사가 연출하는 거대한 그늘은 더없이 좋은 피서지 역할을 한다.

한낮 온천천 위에 위치한 도시철도 역사를 찾으면 어느 곳에서든 망중한을 즐기는 사람들로 붐비는 현장을 확인할 수 있다.

테마벽면과 피서 공간은 우리 시대 대도시라면 어디든 있는 도시철도 역사가 자연형 하천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창출한 멋들어진 문화와 생활 현장이다.

온천천에서 수영강과 연결되는 자전거도로가 완공되고, 일부 구간의 콘크리트 장벽이 사라지는 순간을 떠올리면 절로 신이 난다. 자전거로 온천천을 지나 수영강을 거쳐 해운대까지 거리낌 없이 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걷기도 가능할 터. 낙동강과 금정산에서 맑은 물이 더 많이 유입될 경우 온천천의 수심도 깊어져 갈대와 수양버들 군락지 등은 더 무성해질 것이다. 도심의 열섬 현상도 줄어들겠다.

보기 싫은 적도 있었다. 1990년대까지 온천천에는 물고기가 서식하지 않는다고 환경단체 등에서 야단이었다. 극소수의 개구리만 살았다. 곳곳에서 각종 생활하수가 흘러들어오고, 인근 공장에서는 심심찮게 벙커C유 등을 몰래 방류했다.

당연히 죽은 하천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었다.

누구나 그 현상을 당연시했던 것도 사실이다. 사람이 이 죽은 하천을 살렸다.

오랜 세월의 노력 끝에 결실을 본 것이다.

그 가치를 깎아내리지 말자.

온천천에서 발견된 숭어(점선 안)와 청둥오리들.

보라. 이곳은 온천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도심의 자연형 하천으로 거듭났다. 애써 서울의 청계천을 끌어들여 비교할 필요가 있을까. 이 시대의 전형적인 도시 구조를 잘 보여주고 있는 주변 풍광과 사람, 그리고 자연이 한데 어우러지면서 맑은 물이 언제나 흐르는 하천이면 족하다. 이런 하천을 즐기고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은 시민들의 몫이리라.


온천천은 부산의 진산인 금정산에서 발원해 금정구, 동래구, 연제구를 거쳐 수영강으로 흘러드는 하천이다. 총길이 15.62㎢에 너비는 60~90m에 달한다. 유역 면적은 55.97㎢. 그 옛날에는 맑은 물이 사시사철 흐르고 동래지역의 젖줄 역할을 했다.


산업화 물결에 따른 무분별한 복개와 하천 제방의 콘크리트화 등 난개발로 생태계는 점점 파괴되었다. 온천천 위를 가로지르는 부산지하철(지금의 부산도시철도) 1호선 1단계(노포~범일동) 지상 구간이 1981년 6월 착공되면서부터 하천의 존재가 잊히다시피 했다. 그래도 어느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먹고 사는 것이 우선이었던 시절이 남긴 산물이다.

온천천 살리기 사업을 시작한 것은 1995년. 특히 연제구가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 한파 이후 공공근로사업의 일환으로 세병교~안락교 2.8㎞ 구간에 대한 정비작업을 실시한 것이 주효했다. 이를 통해 세병교에서 수영강 방향 온천천의 일부 구간은 시민들의 품으로 되돌아왔다. 이에 뒤질세라 동래구도 온천천 살리기 사업에 뛰어들었고, 부산시는 종합정비계획까지 수립하는 등 통합관리에 나섰다. 그 결과 국토해양부가 올 초 실시한 부산 서울 대구 대전 등 4개 대도시의 도심 하천 복원사업의 주민 만족도 조사에서 92.4%라는 높은 만족도가 나왔다.

이제 온천천에서 자전거를 타거나 걷기운동을 하기 위해 사람들이 몰린다는 이야기는 웬만해서는 뉴스거리도 되지 않는다. 시민들은 이 도심 하천에서 질적으로 더 향상된 것을 요구하고 있는 시점이다.

■생태 복원 뒤 문화와 생활이 흐르는 하천

온천천은 죽은 하천에서 도심의 자연친화형으로 다시 태어났다. '징검다리 건너며 물장구치는' 도심 속의 하천이 된 것이다. 가장 먼저 연제구 거제동 세병교~연산동 안락교 온천천 둔치(길이 2.4㎞, 너비 5~15m) 일대가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이어 세병교 위쪽 도시철도 동래역 주변 둔치도 휴식공간으로 변했다.

그렇다면 지금 온천천에는 어떤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을까. 상류에서부터 맑은 물이 흐르고 하류에는 물고기와 새가 뛰논다. 이 정도는 귀 밝은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는 내용이다.

바로 온천천에 문화의 물결이 흐르게 된 점이 돋보인다. 무분별한 복개와 하천 제방의 콘크리트화 이후 볼썽사납게 방치된 둔치의 콘크리트 벽이 테마벽면으로 재탄생했다. 이 그라피티(Graffiti)는 그 자체가 하천 변의 야외 갤러리다. 고온에 도자기 형태로 구운 24색의 돌들을 콘크리트 벽에 촘촘히 박아 생동감 있는 작품으로 꾸민 테마벽면은 현재 네 곳에 조성되고 있다.

도시철도 동래역 아래 하천 제방 콘크리트 벽에 설치된 '역사의 벽'. 국사편찬위원회로부터 제공받은 자료를 바탕으로 조성된 이 테마벽면에는 길이 50.0m, 높이 2.5m에 달하는 조선통신사 행렬도가 생생하게 재현돼 있다. 부산시 건설본부 김연식 토목2과장은 "역사의 벽을 중심으로 동래역사와 복개주차장 충렬교 등 3개 지점의 580m 구간을 유기적으로 연결할 계획인데, 그럴 경우 이 일대에는 사람들의 왕래가 더 잦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명륜역 부근의 제방 콘크리트 벽에는 옛 정취가 물씬 풍기는 작품이 많이 전시돼 있다. '학습의 벽'(길이 30.0m, 높이 3.2m)으로 명명된 이곳에는 '집현전학사도' '김홍도서당' '서당 풍속도' '경기여고 수업 장면' '옛 영도다리' '서면로터리' 등이 자리 잡고 있다. 벽면 앞에는 천자문을 음각으로 새긴 대형 '조각작품'이 딱 버티고 있다.

사진 애호가가 부산도시철도 1호선 부산대역 아래 위치한 테마벽면 '희망의 벽'에 전시된 작품들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부산대역 아래 위치한 테마벽면을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희망의 벽'(길이 33.8m, 높이 3.2m)으로 부산지역 초등학생들이 자신의 희망을 담아 출품한 796점의 그림이 전시돼 있다. 이들 그림을 하나하나 본떠 각각 가로 20㎝, 세로 14㎝ 규모의 영구적인 그라피티로 재생했다. 어린이 특유의 재기 발랄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이들 작품에서 온천천의 밝은 미래를 엿볼 수 있다.

이 밖에 장전역 부근의 테마벽면 '문화 벽'(길이 30.0m, 높이 2.5m)에는 해운대해수욕장, 범어사, 금정산성, 태종대, 오륙도, 다이아몬드 브릿지(광안대교), 낙동강 하구 철새도래지, 충렬사, UN기념공원, 용두산공원 등 부산의 10경이 사실주의 미술작품으로 선명하게 부각돼 있다. 인근 주민 김덕종(46) 씨는 "퇴근 이후 온천천 주변에서 자전거를 즐겨 타는데 어느 순간 제방 콘크리트 벽면이 아름답게 탈바꿈한 모습을 본 뒤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갯버들 등 다양한 식물을 발견할 때마다 도심 하천에서 색다른 즐거움을 맛본다고 전했다.

세병교에서 금정산 방면으로 이어지는 도시철도 지상 구간의 각 역사 밑 공간이 한여름 시민들의 피서 명소로 변모한 것도 이채롭다. 동래역을 시작으로 명륜역, 온천장역, 부산대역, 장전역 등 금정산 방면으로 올라가면서 각 역사가 온천천 주변에 만들어낸 그늘 공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룬다. 부산시의 송방환 하천계획담당은 "도시철도 역사 밑 하천에 돌계단을 설치하는 등 더 많은 정비가 이뤄지면 관광명소로도 손색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여전히 정비와 상상력이 더 필요한 하천

온천천 세병교에서 금정산 방면으로 올라가는 부산도시철도 동래역 부근 둔치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8월의 한낮 더위를 식히고 있다.

온천천은 진화를 계속하고 있다. 부산시 등은 적지 않은 예산을 투입해 노후화한 시설물을 정비하고, 산책로와 자전거도로를 조성했다. 이어 하천의 자연성 회복에다 하천공원 조성, 그리고 시민들의 움직임을 원할하게 해주는 순환형 동선체계 확보에도 노력하고 있다. 이 같은 형태의 온천천 정비 작업은 적정 수준의 예산 투입과 행정적인 의지가 뒷받침돼 세월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완성될 일이다.

이제는 발랄한 상상력을 더 발휘해 세계 어느 도시에서도 볼 수 없는 도심형 하천을 만들자는 주문이 쏟아지고 있다. 제방 콘크리트 벽면을 활용해 일정 수준을 담보하는 작품이 흐르는 테마벽면이 조성되고 있지만 아직도 일부 구간에는 국적 불명의 그라피티가 널려 있다. 여태껏 무계획적으로 온천천 둔치 콘크리트 벽면을 뒤덮었던 낙서형 그림에 정비의 손길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이다. 미술인 하의수(판화작가) 씨는 "온천천 제방 콘크리트를 야외 갤러리로 꾸밀 계획을 잡았다면 곳곳에 있는 방치된 벽면 공간을 더 찾아 예술인 등에 맡겨 창작의 불꽃을 태우게 하면 지역 문화가 활짝 꽃을 피울 것"이라는 견해을 보였다.

부산의 대표적인 낭만가객 박명호(소설가) 씨는 "온천천은 다양한 부류의 문화예술인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소규모 콘서트나 전시행사 낭송회 등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부각됐다"고 말했다. 광복 이후 부산문화의 산실이자 집합처였던 중앙동이나 남포동처럼 이 시대 도심 문화의 상징 명소가 될 수 있는 곳이 지금의 온천천이라는 주장이다.

생활 속에서 사람들이 찾는 명소로 꾸미는 작업도 진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세병교 주변에 비해 도시철도 동래역 하류에서부터 금정구 두실교 7.0㎞ 구간은 상대적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적은 편이다. 이에 대해 지역주민들은 도시철도 역사 밑 온천천 둔치에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대규모 공간 등을 하천과 어우러지게 재단장해 사시사철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게 해야 한다는 주문을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총길이 15.62㎞에 달하는 온천천의 수심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는 작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많다. 현재 10㎝ 안팎에 불과한 수심을 적어도 30㎝ 이상 유지시켜야 어류들이 지속적으로 생활하고 갈대와 수양버들 등 수초 군락이 무성하게 형성되면서 진정한 생태 하천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수심 50㎝ 안팎을 유지할 수 있는 과학적인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온천천의 '장밋빛 청사진'을 실현시키는 데는 시민들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온천천은 부산사람들이 두고두고 가꾸고 다듬어야 할 도심의 생태 하천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