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규슈 북부의 항만도시, 천혜의 숲과 섬에 둘러싸여 아름다운 풍광과 여유 즐겨
- 열도속 네덜란드 하우스텐보스 옛 영광 재현 위해 진화 중
- 많은 아픔 간직한 돔형 벽화 작품 규모·완성도 빼어나
- 범선·크루즈 타고 다도해 감상·도심 쇼핑·체험형 수족관 등 다양한 볼거리·체험 제공

일본 최서단의 국립공원인 구주쿠시마 전경.

일본 후쿠오카 공항에서 내려 사세보까지 가는 길에서부터 이색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사세보까지 고속도로를 타고 2시간가량 달리는 과정에 세부리산과 후쿠치산의 울창한 숲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여행 전문 관광업체인 넷재팬의 김인태(46) 대표는 "한국의 산꾼들도 즐겨 찾는 이들 산은 그 자체가 원시림의 이미지를 자아낸다"고 말했다. 중간중간 드러나는 고속도로 주변 들녘에는 시골풍의 마을이 스쳐 지나간다. 사세보 초입까지 이어지는 독특한 일본 풍광이다.

일본 규슈 나가사키현 북부에 위치한 항만도시 사세보. 가장 큰 매력은 도심이 자연에 둘러싸여 있다는 점이다. 1880년대 말 미 해군 주둔 결정 이후 도심은 급속히 발전한 반면 주변 바다를 개발할 수 없었던 역사적 배경이 남긴 유산이다. 게다가 주변 바다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도심도 자연을 닮아가는 곳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런 사세보가 최근 관광객 유치에 정열을 쏟고 있다. 한국인들의 방문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점을 반영하듯 곳곳에서 한글 표지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변신 중인 하우스텐보스, 제대로 보면 예술 작품

17세기 네덜란드 왕궁과 거리를 재현한 하우스텐보스. 일본 속의 '네덜란드 자연의 도시'인 이곳에는 40만 그루가 넘는 나무와 길이 6㎞에 달하는 운하가 있어 물과 녹음이 풍부하다. 사세보=강덕철 기자 kangdc@kookje.co.kr

일본을 관광했다는 한국 사람들 중에는 하우스텐보스(숲속의 집)를 방문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17세기 네덜란드 왕궁과 거리를 재현한 이후 수많은 사람들을 끌어모았던 하우스텐보스는 그러나 2000년대 후반부터 몰락했다. '생태학과 경제의 공존'을 콘셉트로 여유롭게 즐기는 분위기에 집중하다 보니 새로운 방문객 창출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다. 사람들의 발길이 줄어드니 시설을 운영하면 할수록 적자. 결국 일부 시설만 가동되는 등 명맥을 유지하다 최근 일본의 웹 관광업체로 유명한 H.I.S에서 인수한 뒤 진화하고 있다.

1992년 3월 문을 연 하우스텐보스는 1520㎢ 부지에 40만 그루가 넘는 나무와 30여만 종의 화초가 자라고 길이 6㎞, 너비 20m, 깊이 5m의 운하가 있어 물과 녹음이 풍부한 '네덜란드 자연의 도시'다. 거리에는 각종 오락시설, 박물관, 특색 있는 레스토랑뿐만 아니라 4개의 체제형 리조트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너무 볼거리가 많은 탓일까. 그동안 방문객들은 수박 겉핥기 식으로 구경만 하다 보니 제대로 된 가치를 못 느꼈을 법하다. 재탄생하는 이곳을 알고 방문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하우스텐보스는 오는 15일부터 대부분의 시설을 가동하고 가족 단위 방문객들이 즐길 수 있는 아이템을 속속 내놓는다.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애니메이션 '원피스'(오다 에이치 원작)의 세계를 재현한 체험형 어트랙션이 등장한다. 기존의 여유로운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도록 운하에서 낚시를 할 수 있는 '시 텐보스'와 캠프를 할 수 있는 '캠프보스' 등이 운영된다. 이미 개장한 낚시터에는 복어 전쟁이 돌돔 참돔 등을 풀어놓았다. 이와 함께 오는 17일부터 호러타운 '스릴러·판타지·뮤지엄'이 오픈해 밤에는 빛과 음악 쇼를 즐길 수 있다.

진화에만 관심을 둔다면 후회할 사람들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자세히 보자. 역사학자와 건축가, 해양학자, 환경학자들이 네덜란드 정부와 기업의 후원을 받아 계획한 하우스텐보스는 건립 이후 20년 가까이 지났다. 그만큼 세월의 더께가 묻었다는 것. 세월의 흐름에 따라 네덜란드 거리도 고풍스러운 모습으로 탈색하고, 건물 하나하나가 예술 조각품으로 손색이 없을 정도. 특별히 궁정을 눈여겨 보자.

구주쿠시마의 자연을 재현한 체험형 수족관에서 묘기를 부리고 있는 돌고래.

박물관과 미술관이 있는 팰리스 하우스텐보스는 건축 당시 한 번 완성했지만 설계도에 나온 것과 달리 벽돌 3개 정도가 남아 전부 허물고 다시 건립된 사연을 갖고 있다. 완벽하게 네덜란드 여왕이 거주하는 궁정을 재현하겠다는 의도였다.

궁정에는 일본 최대의 돔형 벽화가 있다. 작품의 규모는 물론 완성도나 메시지, 그리고 창작 과정에서 겪은 작가의 아픈 사연 등이 어우러져 앞으로 세계 명작이 될 것으로 보여 놓치면 아깝다. 네덜란드 현대작가 로브 스포르테를 비롯해 40명의 어시스턴트들이 제작한 이 작품의 테마는 '반전과 평화'. 1991년 1월부터 제작된 벽화는 높이 19m 폭 11m 캔버스 면적 825㎡ 규모로 '소년의 꿈'을 설정, 17세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쟁을 반복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형상화했다.

작품 제작 과정에는 이런 일화가 있다. 로브 스포르테가 1994년 크리스마스 휴가로 네덜란드에 갔다가 차량 폭탄테러로 양 다리를 절단하는 아픔을 겪었다. 작가는 그러나 "손은 남아 있다"며 끝까지 그림을 그려 1995년 11월 대작을 완성할 수 있었다. 울산 출신으로 2005년 일본으로 건너와 나가사키 국제대학 국제관광과를 졸업한 뒤 일본 현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넷재팬의 이상민(28) 씨는 "한국의 많은 관광객들이 이 작품을 그냥 지나치고 간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또 다른 볼거리는 네덜란드에서 직접 제작한 범선 '간코마루'. 하우스텐보스 건립 훨씬 이전인 1988년 2월 네덜란드 현지에서 제작한 이 범선은 3월 적도를 통과해 4월 입항한 명물이다. 네덜란드를 출발해 71일 동안 2만1668㎞를 항해한 뒤 이곳에 정착한 범선은 하우스텐보스에서 하루 서너 차례 운항한다.


■자연과 역사적 배경이 살아 있는 사세보 중심가

사세보 중심가의 술집 풍경.

사세보는 일본 도심에서 국립공원을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평지가 적어 시가지가 주변의 산지와 곡지에 펼쳐져 있는 점도 특이하다.

구주쿠시마는 사세보항에서 북쪽으로 히라도세토에 이르는 25㎞ 해상에 펼쳐진 208개의 섬들을 일컫는 일본 최서단의 국립공원이다. 좁은 지역에 이처럼 많은 섬이 밀집해 있는 것도 이색적이지만 사세보 근해의 남 구주쿠시마에는 특별히 아름다운 섬들이 많다. 지난 3일과 4일 이 다도해의 절경을 감상하기 위해 구주쿠시마의 전망이 으뜸이라는 덴카이호우에 연달아 올랐지만 집중호우에다 짙은 안개 때문에 제대로 조망할 수 없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러나 산아래 빗속의 비경을 상상으로 그릴 수 있었다.

사세보 중심가는 역사적 배경을 증명이라도 하듯 미군 제7함대의 오랜 주둔에 따른 이국풍 이미지에다 자연과 전통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시가지를 가로질러 7개의 마을을 관통하는 사루크 시티는 일본에서 가장 긴 거리의 아케이드이다. 직선 거리로 960m에 달하며 쇼핑을 해도 좋고 그냥 구경삼아 유유자적 거닐어도 괜찮다. 아케이드에서 조금 벗어나 뒷골목을 찾으면 일본의 지난 세월 거리나 주택가 풍경을 목격하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다. 사세보역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어 눈 밝고 옛 정취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발품을 조금 팔아 쉽게 방문할 수 있다. 뒷골목에서 사세보를 대표하는 민예품인 팽이 고마를 조상 대대로 제작하고 있는 집을 발견한다면 색다른 추억이 될 것이다.

관광객들이 팰리스 하우스텐보스를 찾아 일본 최대의 돔형 벽화를 구경하고 있다. 높이 19m에다 캔버스 면적만 825㎡에 달하는 이 벽화는 '반전과 평화'를 주제로 전쟁을 반복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형상화했다.

나가사키 일대는 1550년부터 시작된 일본 최초의 천주교 전파지역. 그래서 천주교인들이 박해를 많이 받은 사세보에 성당 등 그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사세보 역 인근에 위치한 미우라초가톨릭교회(옛 세이신 천주당)가 눈길을 끈다. 1897년 처음 지어진 이 교회 건물은 1931년 재건축돼 비교적 현대적 이미지를 자아낸다.

미군이 주둔하는 지역적 특색이 잘 드러나는 이곳 중심가에서는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다. 당연히 미 해군들이 전파한 햄버거를 일본 최초의 햄버거로 탄생시킨 사세보버거를 맛보는 즐거움을 빠뜨릴 수 없다. 일본 전역에서 직접 사세보버거를 먹기 위해 현지를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보고 체험할 수 있는 관광을 더 즐기고 싶다면 구주쿠시마의 자연을 재현한 체험형 수족관과 바다를 테마로 다채로운 시설이 즐비한 사이카이 펄 시 리조트 등을 찾으면 된다. 유람선 '펄 퀸'과 해적선 '가이오' 등을 타고 섬과 섬 사이를 가로질러 항해하는 순간에는 바람의 속삭임을 느낄 수 있어 일상의 찌든 때를 훌훌 털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국립공원을 요트로 둘러보는 크루즈와 무인도 상륙에 이은 먹이 주기 체험 크루즈도 이번 여름 이색 추억거리를 만들고 싶은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취재 협조: 사세보관광컨벤션협회 하우스텐보스


# 미쓰하루 사세보관광컨벤션협회 이사장

- "재탄생한 하우스텐보스 다시 활기…한국 관광객 위해 한글안내판 확대"

사세보관광컨벤션협회의 미쓰하루 이이다(62·사진) 이사장은 흡사 타임머신을 타고 네덜란드의 옛 고장을 방문한 것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하우스텐보스와 일본의 28개 국립공원 가운데 하나인 구주쿠시마를 크게 자랑했다. 그러면서 "한국인 관광객들이 사세보에 체류하면서 불편이 없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미쓰하루 이사장은 "재탄생하는 하우스텐보스 덕분에 다시 관광객들이 몰릴 것"이라는 기대감을 보였다. 특히 하우스텐보스가 생기기 전에는 연간 관광객이 230만 명 수준이었는데 그 이후 400만 명으로 급증했지만 최근 경기가 안 좋아 다소 활기를 잃었다는 점을 언급했다.

그는 또 미군들의 발길이 잦은 사세보 시내 중심가의 독특한 밤 문화도 볼거리라고 전했다. 사세보버거는 물론 돔 샤브샤브 등 풍부한 해산물 요리 등 먹는 관광에도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와 함께 국립공원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주변 호텔과 도심의 옛 여관 형태 건물 등 숙박 시설도 상대적으로 풍부한 편이라고 했다.

미쓰하루 이사장은 "현재로서는 한국인 관광객들을 많이 유치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관광객들이 교통 등 이동에 불편이 없도록 하고 아직 한글 안내판이 미흡한 관광지를 가능한 한 이른 시일 내 정비하겠다"고 말했다. 사세보의 활기찬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그는 이곳에서 40여 년간 관광호텔을 운영하는 등 지역 관광업 활성화에 힘을 쏟고 있다. 지난 4일에도 선착장 인근 해상에서 열린 바다 수영대회인 '오픈워터스위밍대회' 행사 진행 상황을 보는 등 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해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