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는 지금 최악의 춘궁기를 겪고 있다. 개봉 편수가 급격하게 줄어 극장에서 한국 영화 간판을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다. 편수가 적은데 잘 만든 영화, 못 만든 영화를 가릴 일도 없다.
지난 주말 박스오피스 순위를 들여다보면 '포비든킹덤', '테이큰', '스트리트 킹', '킬 위드 미', '버킷리스트' 등 외화들이 5위 안에 랭크돼 있다. 한국영화는 'GP 506'이 지난달 3일 개봉 후 첫주말 1위에 잠시 올랐을 뿐이다. 3월까지는 그나마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과 '추격자'가 3주간씩 박스오피스 1위를 달렸다. 한국 영화계가 스크린쿼터 축소 이후 2년여 만에, 홍콩 영화가 몰락했던 과정을 답습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위기감도 팽배해 있다.
톱스타, 할리우드 아니면 드라마
장동건 이병헌 정지훈 등 충무로의 특A급 배우들이 잇달아 할리우드로 진출하고 있다. 이는 배우 개인이나 국가적 차원에서도 좋은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현재의 상황을 악화시키는 '엑소더스'의 신호탄은 아닐까 우려된다. 현재 '스피드 레이서'의 프로모션 투어 중인 정지훈은 곧 워쇼스키가 제작하는 영화 '닌자 어새신'에 주연급으로 출연할 예정이며 '태풍'이후 국내 활동을 거의 중단한 장동건은 '론드리 워리어'로 할리우드 진출에 성공했다. '론드리 워리어'는 한국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지만 할리우드 영화. 혼혈 배우 다니엘 헤니는 '엑스맨 오리지널: 울버린'에 출연했으며 이병헌은 일본색 짙은 할리우드 영화 'GI 조'에 출연 중이다.
남자 배우들이 할리우드 진출을 모색하고 있는 동안 여배우들은 안방으로 돌아오고 있다. MBC 수목 '스포트 라이트'의 사회부 여기자로 변신하는 손예진, KBS-2TV 새 수목극 '태양의 여자'로 돌아오는 김지수, '이산' 후속드라마가 될 '밤이면 밤마다'의 김선아 등 '연기 좀 되는' 여배우들은 당분간 TV에서 만날 수 있을 것같다.
영화 인력, 여의도행
드라마의 외주 제작이 일반화되면서 현재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는 허물어졌다. 2년 전 '연애시대'부터 본격화됐던 영화사의 드라마 제작은 강제규 감독이 가세함으로써 이제 '대세'로 자리잡았다.
강제규 감독은 '미안하다, 사랑한다', '눈의 여왕' 등을 만든 이형민 감독과 손잡고 대작 드라마 '아이리스'를 제작한다. '아이리스'는 강제규 필름과 에이스토리에서 공동 집필하며 제작은 영화 제작배급사 태원엔터테인먼트와 강제규필름이 공동으로 맡는다. 이 드라마는 200억 원 이상의 제작비를 쏟아붓게 될 첩보 스파이물이며 러시아 일본 미국 중국 등 전 세계를 아우르는 해외 로케이션과 대규모 세트장을 짓는 등 웰메이드 대작 드라마로서의 면모를 서서히 드러내고 있다. 이병헌이 주연 배우로 낙점됐으며 내년 상반기 방송 예정이다. 6월부터 방송되는 SBS 금요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도 제작진 대부분이 영화 인력이다. 정이현 작가의 원작소설을 드라마화한 '달콤한 나의 도시'는 '인어공주'의 박흥식 감독이 연출을 맡은 것을 비롯, 촬영 미술 극본 등 대부분 스태프가 충무로 출신이다.
'너는 내 운명' 이후 영화 소식이 뜸한 박진표 감독도 드라마 제작사를 설립했으며 '가족의 탄생'을 연출한 김태용 감독도 방송용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이다.
위기 타개책은 없나
영화 감독들이 드라마로 눈을 돌리고, 스타들이 할리우드로 빠져 나가는 이유는 명백하다. 투자자들이 지갑을 열지 않기 때문이다. 2~3년 전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들이 잇달아 나오면서 투자자들이 몰렸던 때와 달리, 지금 돈줄은 위축돼 있다. 펀딩이 안되면 큰 영화는 제작 자체가 어렵다. 그러다 보면 위험성을 배제한 작은 영화들만 기획되며, 이런 악순환이 거듭 되다보면 영화 산업 전반은 갈수록 위축될 수밖에 없다. 물론 '큰 영화'에서 해법을 찾기 보다는 거품을 빼고 작품성을 제대로 갖춘 알짜 영화들이 꾸준히 나와준다면 오히려 한국영화의 건강성 회복에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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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한국영화들. 위에서부터 '강철중'(강우석 감독) '놈놈놈'(김지운 감독) '님은 먼곳에'(이준익 감독). |
충무로의 한 관계자는 "해법은 단 하나다. 재미있는 대박 영화가 두세 편만 잇달아 나와준다면 다시 상황은 호전될수 있다"고 단언한다. 1999년 '쉬리'가 한국 영화의 부흥을 이끌었듯이 '왕의 남자'나 '괴물' 같은 웰메이드 대작 영화가 개봉돼 얼어붙은 관객의 마음과 투자자의 마음을 녹인다면 한국 영화는 재도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강철중'(강우석 감독, 6월 중순) '놈놈놈'(김지운 감독, 7월초) '님은 먼곳에'(이준익감독, 7월말) 등 입소문이 파다한 명장 감독들의 신작을 손꼽아 기다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