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볼 것이다."
'매트릭스' 시리즈로 유명한 워쇼스키(래리 워쇼스키, 앤디 워쇼스키) 감독의 자만은 신작 '스피드 레이서'에서도 유효하다. 일본 만화가 원작인 이 작품은 비(정지훈)의 할리우드 진출작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스피드 레이서'는 가상의 미래 도시 코스모폴리스를 배경으로 자동차 경주의 세계를 다룬 영화.
'매트릭스' 시리즈는 영상 혁명이었다. 적어도 '스피드 레이서'의 비주얼은 '매트릭스'를 능가한다. 미래도시를강렬한 원색의 대비효과로 구현한 테크놀러지는 감탄을 금할 길이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카 레이싱 영화가 뭐가 그리 대단하겠는가 라고 반문할수 있지만 '스피드 레이서'에 등장하는 차들은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다. '매트릭스'의 블릿타임 효과가 선풍을 일으켰다면 '스피드 레이서'의 '카푸' 또한 눈이 휘둥그레질만큼 신기한 장면이다. 차들이 마치 사람처럼 격투기를 벌인다. 동양철학과 쿵푸에 심취해있는 워쇼스키 감독은 스포츠카들에게 쿵푸를 시킨다. '자동차(car)'와 '쿵푸(gongfu)'의 합성어인 '카푸'는 도시의 고층 빌딩 사이를 넘나드는 포뮬러 트랙에서 경주차가 곡예를 부리며 상대 경주차와 쿵푸 대결을 벌인다. '카푸'장면은 실사 애니메이션 같은 영상과 빠른 전개로 최고의 스피드와 박진감을 선사한다. 게임과 만화를 합쳐놓은 감각적인 영상이다.
그러나 비주얼의 성과와 달리 '스피드 레이서'에는 '매트릭스'의 심오한 철학이 결여돼 있다. '매트릭스'를 관통하던 동서양의 종교 철학, 사상, 세계관 대신 이 영화에는 정의와 가족애가 녹아있다. 사랑으로 뭉친 레이서 가의 가족애가, 불의를 타파하는 권선징악의 얼개에 맞춰 해피 엔딩으로 귀결된다. 네살짜리 아이들도 무리없이 즐길만한 오락 영화라는 얘기다. 오락 영화로서 '스피드 레이서'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완벽하다.
스토리
러닝타임은 129분이지만 스토리는 단순한 편이다. 최고의 레이서를 형으로 둔 꼬마 스피드(에밀 허시 분)는 오로지 레이싱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 의문의 사고로 형 렉스를 잃은 스피드는 최고의 레이서로 성장한다. 경주용 차를 만드는 아버지 팝스 레이서 (존 굿맨), "너의 레이싱은 정말 아름다웠어"라며 언제나 용기를 북돋워주는 엄마 맘 레이서(수잔 서랜든), 그리고 여자친구 트릭시(크리스티나 리치)의 전폭적인 지원아래 그는 레이서로서 승승장구한다.아버지가 직접 만든 마하5를 타고 형이 이루지 못한 꿈을 향해 가는 스피드에게 거대 기업 로열튼에서 스카우트 제안이 들어온다. 레이싱의 지나친 상업화가 싫었던 스피드는 매력적인 이 제안을 거절하고, 로열튼의 회장은 그에게 앙심을 품는다. 한편 승부 조작 레이싱에 참여했던 자동차기업 후계자 태조 토고칸(정지훈)은 형사에게 거대 기업들의 승부 조작을 밝혀줄 파일을 건네주는 대가로 스피드에게 죽음의 경주 코스에 함께 도전하자고 제안하고, 이 경주에는 전설적인 레이서X가 참여한다. 대기업의 승부조작에 맞섰다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 형과 레이서 X의 관계, 그리고 끝없는 승부의 세계 등 '스피드 레이서'는 2편, 3편의 제작도 기대하게 한다. 실제 워쇼스키 남매감독은 비에게 후속편의 출연도 제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개봉 5월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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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피드 레이서'에서 태조 토고칸 역을 맡아 할리우드에 첫 진출한 비(정지훈). 연합뉴스 |
비(Rain), 할리우드 연착륙
엔딩 타이틀에는 비(Rain)의 이름이 선명하게 박혀있다. 그는 한국인 출신 레이서 태조 토고칸으로 출연, 제법 비중있는 연기를 소화했다. 고문당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비의 등장은 자동차 경주 장면과 무술 액션장면으로 이어지고, 제법 그럴싸한 영어 대사도 자연스럽게 구사한다. 다음은 비와의 일문일답
-조연임에도 불구하고 '스피드 레이서'를 선택한 이유와 출연 소감은
▶'매트릭스'를 보고 워쇼스키에게 미쳐 있었다. 그리고 메이저리그에서 주전이 되고 싶어하는 선수가 되고 싶었다. 워쇼스키 감독이었기 때문에 많은 것을 배우고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경주 장면을 찍을 때는 운전대만 있는 그린 스크린에서 연기를 해야 했는데 가죽 수트까지 입어 체감온도가 30도가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친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고 쉬지도 않았다. '태조 토고칸'이라는 한글이 여기저기 들어간 것도 내가 제안한 것이다.
-영어 대사가 능숙하다. 영어로 연기하는 건 어땠나
▶자신 있게 하려고 했다. 난 한국 사람이다. 아무리 해도 네이티브 스피커는 될 수 없지만 자연스럽게 하려고 노력했다. 발음이 크게 어색하지 않아 다행이다.
-할리우드 제작 환경은 어땠나
▶자본이 뒷받침된 최강의 스태프다. 한국은 비싼 장비나 장소를 빌려서 해야 하니까 시간에 쫓긴다. 할리우드에선 아예 세트장을 지어 버리더라. 거의 장면마다 카메라가 4대 이상 돌아가고, 첨단 카메라가 알아서 동선을 따라간다. 능력있는 한국 감독들이 이런 여건 아래서 찍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할리우드 스타들과 함께 작업한 소감은
▶우선 절대 기죽지 말자는 생각으로 임했다. 수전 서랜든은 '이번 영화가 성공의 첫걸음이길 바란다'고 쓴 친필 편지도 써줬다.
-한국에서의 활동 계획은 어떤가
▶7월 말까지 워쇼스키가 제작하는 '닌자 어새신'의 촬영을 마치고 가을에는 아시아 팬들을 위해 특별 앨범을 만들 계획이다. 한국에서의 영화는 내년쯤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