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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주업체들이 알코올 도수 낮추기 뿐만 아니라 다양한 첨가물과 기능성을 겸비한 신제품 개발 등 품질 경쟁에 나서고 있다. 사진은 메가마트 동래점의 주류 판매코너에서 한 시민이 소주를 고르고 있는 모습. |
국내 소주업체들은 지난 2~3월 21도 소주 판매에 들어갔다. 알코올도수를 종전 22도에서 21도로 낮춘 것이다. 도수만 낮춘 게 아니다. 주류에도 '웰빙' 바람이 불면서 업체마다 건강을 염두에 둔 리뉴얼 소주를 경쟁적으로 내놓고 소비자 입맛 끌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잔을 마셔도 건강을 생각한다'는 요즘 음주 경향이 말해주듯 부드럽게 마실 수 있으면서 소주 맛을 최대한 살리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추세다.
부경대 양지영(식품생명공학부) 교수는 "식품공학적으로 보면 밋밋하지 않으면서 순수 알코올 맛을 느낄 수 있는 소주의 적정선은 25도 수준이다. 하지만 갈수록 소비자들이 순하고 부드러운 맛을 선호하면서 알코올도수가 급속히 낮아졌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술 소비층이 여성 및 젊은층으로 빠르게 넓어진데다 음주 패턴이 과음·폭음을 지양하고 느긋하게 즐기는 쪽으로 바뀐 영향도 크다고 양 교수는 분석했다.
여대생 이효정(21·경성대 광고홍보학과 3년)씨는 "소주 도수가 낮아지면서 대학가 술자리 풍경에도 변화가 생겼다"고 얘기한다. 소주를 잘 못마시는 사람은 술자리에서 겉돌거나 빨리 집에 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은 여성들도 술좌석에 같이 어울릴 수 있어 그만큼 친밀도가 높아졌다고 이씨는 설명했다.
21도로 내린 뒤 소주 판매량은 껑충 뛰었다. 대선주조는 지난 2월 한달간 매출량이 1422만6000여 상자에서 21도 소주가 출시된 3월에는 1706만3000여 상자로 20% 늘었다. 두산 주류BG는 한달 40만 상자에서 45만 상자로 증가했다. 무학은 10%가량 상승했다고 밝혔다.
1주일에 한두차례 술자리를 갖는 회사원 홍대식(37·SK(주) 부산영업소 과장)씨는 "근래 소주 주량이 1병반 정도에서 2~3병으로 늘었다"면서 "22도일 땐 소주 한잔을 두번 정도로 나눠서 마셨는데 지금은 '원샷'으로(한번에) 들이켜도 부담이 없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도수가 낮아져 소주맛이 밋밋하다" "맹물같다"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알싸하면서 톡 쏘는 소주 특유의 맛을 느끼기 힘들다는 얘기다. "소주가 순해지면서 과거처럼 기분을 내려면 주량이 늘어날 수밖에 없고, 그런 만큼 서민들의 술값 부담이 가중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다.
옛날에도 21도보다 낮은 소주가 있었다. 1985년 대선주조가 야심만만하게 출시한 알코올도수 20도의 '순한 鮮(선)'이 그것이다. 이 소주는 출시 이후 소비자들의 '냉대'로 결국 1년여 만에 실패로 끝났다.
대선주조 이상범 생산부장은 "당시 20도 소주가 인기를 끌 것으로 봤는데 25도에서 20도로 한꺼번에 5도나 내린 탓인지 '싱겁다' '물같다'는 거부 반응들이 많아 오래 버티지 못했다"면서 "요즘 21도 소주 선호 추세를 보니까 시대가 바뀐 것을 절실히 느낀다"고 얘기했다.
알코올도수 낮추기 등 경쟁이 본격 시작된 것은 23도로 내린 90년대 후반부터다. 이 때를 고비로 소주시장은 순하고 부드러운 맛을 선호하는 이른바 저도주(低度酒) 시장으로 급격히 옮아갔다.
저도주를 먼저 치고나간 것은 대선주조, 무학, 금복주 등 지역 소주업체들이었다. 이는 1992년 '자도주(自道酒) 구입제도'가 폐지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해당 지역에서 생산되는 소주를 50% 이상 의무 구입토록 한 이 제도는 1996년 일시 부활했다가 그해말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에 따라 완전히 없어졌다.
지역 소주업체들은 '자도주' 폐지 이후 심각한 경영난에 봉착했다. 자도주 '우산' 아래서도 지역 시장점유율이 높지 않았던데다 진로 등 메이저사들이 향토시장을 빠르게 장악해 나갔기 때문이다. 대선주조는 자도주 시행 당시에도 부산시장 점유율이 50%대였다. 대선주조는 한때 '선(鮮)'을 내놓아 60%대로 상승하기도 했지만 중앙 업체들의 장벽을 넘기는 역부족이었다.
이같은 환경변화를 계기로 90년대 중반부터 소주업체들의 살아남기 위한 품질향상 등 무한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진다. 건강지향 흐름에 따라 앞다퉈 알코올도수를 낮추면서 부드럽고 순한 소주를 연구 개발한 것도 이와 같은 연장선상에서 나왔다.
대선주조 이용수(제조·연구팀)이사는 "우리는 25도 소주때부터 건강을 중시하는 소비변화의 트렌드를 읽고 대비를 해왔다"면서 "21도 소주도 내부적으로 이미 작년 상반기에 연구개발을 모두 완료한 상태였다"고 밝혔다.
소주업계는 도수 낮추기 이외 소주에 다양한 첨가물을 가미해 입맛을 당기거나 기능성을 겸비한 신제품을 개발하는 등 품질 경쟁에 나서고 있다.
보해양조는 소주업계 처음으로 소주병에 온도감지센서 라벨을 부착, 온도가 섭씨 7도에 이르면 상표에 붙어있는 잎새가 빨갛게 변하는 제품을 내놓았다. 이 제품은 특히 단풍나무 수액을 함유해 눈길을 끈다.
웰빙 소주를 표방한 대선주조는 소주 맛의 생명인 깨끗한 물을 쓰기 위해 국내 최초로 음이온 청정수 제조공법을 도입하고 있으며 숙취해소에 효과가 있는 아스파라긴 첨가를 배가량 늘렸다.
이밖에 진로는 대나무숯에 여과하는 제조기법을 도입하고, 두산은 녹차를 함유한 제품을, 무학은 천연벌꿀·아스파라긴을 함유한 제품을 각각 내놓고 있다.
보다 순한 소주, 보다 감칠맛 나는 소주 전쟁이 이미 불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