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는 우리와 친하다.
친구나 아는 사람을 만났을때 "언제 소주 한잔 하자"는게 인사다. "맥주 한잔 하자, 양주 한잔 하자, 막걸리 한잔 하자"는 인사는 들은 기억이 없다.
떠나보낸 연인을 생각하며 포장마차에서 홀로 홀짝거리는 것이 소주요. 산행길 버너로 라면 하나 끓여놓고 마시는 것도 소주다. 사직야구장 출입구에서 전경들이 여자 핸드백 속까지 뒤져가며 단속을 해도 어떻게든 숨겨와 관중석에서 투수를 안주삼고 감독을 안주삼아 먹던 것도 소주였다. 삼겹살 집에서 맥주 먹는 사람 못봤고, 횟집에서 양주먹는 사람 본적이 없다.
소주 인기의 비결은 다양하다. 우선 가격이 싸고, 알코올 도수가 적당하다. 격식을 따지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마실 수 있어 우리 국민의 기질과도 맞아 떨어진다.
소주는 지난 2000년 주세가 35%에서 72%로 인상돼 가격이 크게 올랐다. 정부는 현행 100%인 맥주 주세율을 오는 2007년 72%까지 연차적으로 낮추기로 이미 확정했다. 그에따른 재원 삭감은 소주 위스키의 주세율 인상으로 충당할 방침이다.
여기에다 지난 28일 국내 최대 소주업체인 진로가 소주 출고가격을 740원에서 800원으로 8% 인상했다. 소매점 판매가격은 900원에서 1000~1100원선. 대선주조도 5월1일부터 가격을 올릴 예정이어서 이제 1000원 한장으로는 소주 못산다는 이야기도 나올법하다. 소주의 출고가격이 맥주 출고가격과 비슷하거나 추월할 가능성도 있다. 요즘도 웬만한 식당에 가면 소주 맥주 1병 가격이 3000원으로 같다.
서민주인 소주는 요즘같은 불경기때면 오히려 더 잘 나간다. 맥주 양주 위스키 등 비싼 술 주당들이 소주로 많이 이동하기 때문이다.
2003년 국내 소주 판매량은 2002년보다 4.5% 증가한 29억3589만병(360㎖ 기준)으로 집계됐다. 국민(4760만명) 1인당 61.7병 꼴이다. 전년보다 3병 가까이 늘었다. 반면 맥주와 위스키는 같은 기간중 각각 2병, 0.1병씩 줄었다.
이처럼 경기변동에 덜 민감하고, 불경기에도 판매량을 유지하는 '스테디셀러'인 까닭에 다른 술과 달리 가격인상설이 나돌면 '사재기'가 발생하는 것도 소주시장이다.
대한주류공업협회 자료에 의하면 지난 1~2월 2개월간 수출분을 제외한 국내분 소주 판매실적은 4억6182만병(360㎖ 기준)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5억2281만병에 비해 11.7%나 줄었다. 지난해 4월 소주가격 인상을 앞두고 연초에 극심한 사재기 현상으로 가수요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대선주조 조용학 대표이사는 "소주의 최대강점은 적당한 알코올 도수에 무색무취하고 먹기 편하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흔히들 소주는 향이 없는 것이 치명적 약점이라고 이야기한다. 주류업계에서도 오래전부터 이 때문에 소주가 주류업계에서 퇴출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향기가 없다는 것이 도리어 소주의 장점이자 소주의 장생 비결이라는게 조 사장의 지론.
조 대표이사는 "위스키로 생선회를 먹는다고 가정해보자. 회맛을 느낄 수 없다. 위스키의 톡 쏘는 향기가 회맛을 덮어버리기 때문이다. 무색무취한 소주야말로 생선회의 참맛을 고스란히 전달해주는 술이다"고 강조했다. 술은 음식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생명이다. 그런 점에서 소주는 모든 음식과 조화를 이루는 최고의 술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주는 우리 국민의 기질과도 맞다.
요즘 웰빙붐을 타고 와인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와인은 격식을 따지는 술이다. 와인병을 천에 싸서 얼음통에 담가 먹는다. 힘들여 코르크마개를 따야하고 술맛도 혀를 굴리듯 음미해야 제맛이라고 한다. 하얀 고기에는 하얀 와인, 붉은 고기에는 붉은 와인이 올바른 주법이라고 한다.
중국음식점에 앉자마자 "빨리빨리"를 외치는 우리 국민성과 쉽게 친해지기 어려운 술이다. 비싼 양주를 폭탄주로 만들어 순식간에 해치우거나, 물먹듯 스트레이트로 마셔대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 국민들이 아닌가.
우리 소주는 일본 중국에서도 인기다.
한류 열풍까지 겹쳐 한국소주의 일본 판매량은 1998년 5721만6000병(700㎖ 기준)에서 2003년에는 1억916만4000병으로 최근 6년간 90.7% 증가했다. 일본 고유의 술(사케) 시장규모를 넘어설 기세다. 이 때문에 4월 한달동안 일본의 방송 신문기자 등 200여명의 취재진이 한국의 소주문화 취재를 위해 내한하기도 했다.
일본인들은 한국산 소주를 물이나 우롱차 주스 등에 타먹는다. 그래서 우리의 폭탄주 문화나 술마시는 속도에 경악한다.
소주가 지금처럼 빠른 속도로 일본시장을 파고든다면 일본 도쿄 도심 술집에서 폭탄주를 먹거나, 술잔을 돌리는 일본인들을 쉽게 볼 수 있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