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의 맛'을 느끼기 위해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1시간30여분 달렸다. 육회가 들어가는 비빔밥, 한상 가득 차려내는 헛제삿밥, 그리고 쭉 늘어선 장어거리…. 부산에서 그리 멀지 않지만 다른 음식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땅거미가 질 무렵, 부산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을 진주교의 은은한 불빛과 장어 굽는 냄새가 붙잡았다. 선비의 도시 진주. 이젠 관광 도시로 변신을 꾀하고 있는 이곳에는 전통의 맛을 고수하는 사람들이 있어 더욱 즐거운 맛기행이었다.
#진주비빔밥-살살 녹는 육회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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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비빔밥 |
육회와 선지국. 진주비빔밥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이다. 진주시민들에게 전통 비빔밥집을 물으면 첫마디에 중앙시장의 '천황식당'을 댄다. 진주교와 진주성을 지나 찾아간 천황식당은 시장 한복판에 있다.
이집이 처음 지어진 것은 1927년. 한국전쟁때 폭격을 맞아 전소된 후 재건축 된 건물이 지금까지 이어진다.
실내의 테이블과 의자를 가로지르면 소담한 마당과 이를 둘러싼 방들이 나온다.
3대째 진주비빔밥의 맛을 재현하고 있는 김정희 사장이 차려낸 상에는 비빔밥과 선지국, 김치 3종류에 고추장아찌가 전부이다. 비빔밥 위에는 제철나물과 육회가 소담스럽게 올라가 있다. 비벼 먹어보니 맵지 않으면서 뒷맛이 달짝지근하다. 육회가 나물에 섞여 입안에서 녹는다.
입속에 오래 남는 단맛에 대해 김 사장은 "포탕이 중요하다. 문어와 소고기 바지락 등을 넣고 푹 우려낸 국물을 비빔밥에 한숟가락 끼얹는데 이것이 조미료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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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빔밥으로 유명한 천황식당. |
포탕 외에 이집 맛의 비결은 제철나물과 싱싱한 육회, 그리고 고추장에 있다. 마당 한귀퉁이에 있는 장독대에는 한해동안 쓸 고추장과 간장, 김치가 담겨져 있다. 이렇게 직접 담근 간장으로 나물을 무치고 독에서 꺼낸 김치를 상에 올린다.
비빔밥에 김치 한점을 올리고 선지국을 한숟가락 떠 넣으면 간이 딱 맞다. 약간 싱거운 듯한 비빔밥의 간을 짠 김장김치가 맞춘다.
오랜 세월만큼이나 잊지못할 손님들도 많다. 김 사장은 "다방이 흔하지 않았던 예전에는 여기서 남녀가 맞선을 본 적이 많았다. 이곳에서 맞선을 봐 결혼을 했다며 며느리와 손자를 데리고 찾아오는 노인네들을 만나면 보람을 느낀다"며 "이들을 위해서라도 집을 고치지 않을 작정"이라고 덧붙였다. 비빔밥 5000원, 불고기 1만5000원, 육회 2만원. (055)741-2646
#장어구이-두번 구워 꼬들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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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의 대표적 먹을거리 중 하나인 장어를 파는 남강 주변의 가게들. 연탄화덕에 장어를 굽는 장사꾼들의 모습이 이색적이다. |
진주교에서 진주성 가는 남강변을 지나다보면 이색적인 풍경이 눈길을 끈다. 야외에 내놓은 연탄불과 장어 굽는 아줌마들. 진주 장어거리는 뿌연 연기와 냄새로 시작된다. 이 거리는 남강에서 민물장어가 잡히던 시절, 강변을 따라 포장마차촌이 들어서면서 시작됐다. 거리정비작업을 거쳐 지금의 건물이 들어섰다.
이곳의 30년 터줏대감인 '유정장어본점'에 들어서니 각종 동물들의 박제와 자수정이 이색적이다. 음식점이 아니라 박물관에 들어선 느낌을 주는 깔끔한 실내에 서면 남강이 바로 발밑이다.
장어거리의 다른 음식점들과 마찬가지로 이 집도 바다장어와 민물장어를 모두 취급한다. 고추장 양념을 바른 바다장어는 비린내가 느껴지지 않고 꼬들꼬들하게 씹히는 맛이 있다. 함께 구운 양파의 고소한 맛이 장어 특유의 비린내를 없애는 것 같다.
"싱싱한 장어를 잘라 석쇠에 놓고 꽉 눌러 연탄불에 굽는다. 이렇게 초벌구이한 뒤 냉동 보관했다가 손님이 주문하면 양념을 발라 한번 더 굽는다. 두번 굽는 동안 기름기가 빠지면서 살의 퍼석한 맛이 줄고 쫄깃쫄깃함이 살아난다."
사장 곽기영씨는 진주장어 특유의 맛을 굽는 방법의 차이로 설명했다. 장어 굽는 모습을 지켜보니 석쇠에 양파를 듬뿍 놓고 그 위에 초벌구이한 장어를 올린다. 양편을 돌려가며 구운뒤 마지막에 접시를 엎어 접시째 구워낸다. 접시도 데워야 맛이 변하지 않는다고.
이렇게 접시째 구워도 먹다보면 식기마련. 이를 방지하기 위해 이 집에는 식탁 위에 작은 램프가 마련돼 있다. 장어접시를 램프 위에 올리고 촛불로 데워 먹는다.
장어는 초여름이 제철이다. 살이 오르고 기름기가 배는 산란기전 6~9월이 되면 이 거리는 식도락가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민물장어 1만5000원, 바다장어 1만3000원, 냉면 5000원. (055)746-9235
#헛제삿밥-선비의 고장 맛을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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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헛제삿밥 |
선비의 고장, 진주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헛제삿밥이다. 산사람을 위한 제삿밥이라고 헛제삿밥이라 불리는 이 음식을 3대째 고집하는 집을 찾아갔다.
진주시 평안동 진주중학교 인근 골목에 위치한 '진주헛제삿밥'에 들어서면 마당 가득 걸린 메주가 먼저 반긴다. 제사음식은 마늘 고춧가루 등 각종 양념을 쓸 수 없어 간장으로 맛을 낸다. 그런만큼 간장이 중요한데 이 곳에서는 일년에 쓸 장류를 직접 만들어 사용한다.
상을 받아보니 밥과 3적, 7색나물, 조기, 전, 13가지 음식을 넣어 만든 탕 등이 놋그릇에 담겨 나온다. 색색의 음식들이 황색 놋그릇에 비치는 모습이 은은하다.
뿌옇게 우러난 탕을 한숟가락 입에 넣으면 해산물 우린 맛이 진하다. 부추전처럼 생긴 전을 집으니 이명덕 사장은 이 집에서만 맛볼 수 있는 '장떡'이란다. 짭짤하고 맵싸한 맛이 부추전과 다르다. 부추 방아 땡초 조갯살과 된장을 섞어 만든다. 원래 제사상에는 올라가지 않는 음식이지만 손님들을 위해 만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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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비의 해학을 엿볼 수 있는 헛제삿밥집. |
"윗지방에서는 장떡에 고추장을 넣어 만들지만 아랫지방은 된장을 사용한다.
이 사장은 부꾸미와 쑥이 담긴 놋접시를 내밀며 제철음식만큼 좋은 것은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헛제삿밥은 탕과 나물을 비벼먹는 맛이 일품. 단, 이 집에서는 고추장을 내놓지 않는다. 나물 본래의 맛을 흐리게 한다는 주인장의 고집이다.
음식점 주인들이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손님들이 맛을 못잊어 다시 찾을 때일 것이다. 이 집은 하나 더 있다. 외지에서 온 손님이 "어릴 때 먹던 그 맛"이라는 말을 들을 때이다. 헛제삿밥 3만원(3인). (055)743-3633
#붕어탕-우유 뒷맛 같은 고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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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붕어탕 |
왠지 비린내가 날 것 같은 붕어탕. 이 음식을 먹기 위해 줄을 선다는 진주시 하대동 '통나무집'은 허름한 외관이 무허가 건물 같은 느낌을 준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나무땔감을 넣는 난로가 이채롭다. 이 집을 7년째 운영하고 있는 진명희 사장은 위궤양을 앓던 남편에게 붕어탕을 끓여 먹인 것이 계기가 돼 음식점까지 열게 됐다.
푹 곤 붕어탕을 주문하면 상위에 오르는 밑반찬과 부추 파 방아가 푸짐하다. 마니아들은 야채는 물론 소금도 치지 않고 삼킨다는 붕어탕에 부추 파 방아를 넣고 소금으로 간을 맞춘뒤 국수를 넣었다. 붕어탕 초보자들은 간이 맞지 않는 것 같아 자꾸 소금을 넣게 되는데 진 사장은 국을 먹다보면 짜게 된다며 만류했다. 뜨겁다보니 맛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라고. 한입 떠넣은 탕은 붕어 특유의 냄새가 나지만 그다지 역하지는 않고 뒷맛이 고소한게 우유를 한모금 삼킨 듯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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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붕어탕으로 이름난 통나무집. |
국수는 맛보기용이고 밥을 말아 김장김치를 한점씩 올려 먹다보면 어느새 한그릇을 비우게 된다. 붕어의 비린맛을 없애는 비결을 물었더니 재료의 싱싱함을 꼽았다. 이 집 붕어는 수질이 좋은 진양호와 합천에서 가져다 쓴다.
또 탕을 끓이기 전에 비늘 내장 아가미를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진 사장은 덧붙였다. 몸에 해로운 성분들이 이 부분에 집중되어 있다는 생각에서이다. 설명을 마친 뒤 진 사장이 안내한 곳은 뒤뜰. 가마솥 7개가 눈에 띈다.
진 사장은 "가마솥에 붕어를 넣고 장작불로 12시간 고아낸다. 이런 전통방식으로 끓여야 비린내가 없어지고 고소한 맛이 우러난다"고 말했다. 평일 점심시간이 가장 붐비는 이집 붕어탕은 별미라고 알려지면서 일본인들도 많이 찾는다. 붕어탕 7000원, 메기매운탕 2만원, 메기찜 2만5000원. (055)762-1749
/ 글 = 오혜숙기자 ohs@kookje.co.kr
/ 사진 = 서순룡기자 seosy@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