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숙도 공화국은 분단국가
1987년 낙동강 하구둑
을숙도를 남과 북으로 갈랐다
콘크리트 국경선을 타고
무시로 인간이 들어오면서
원래 주인 철새들은 남으로 밀려났다
북은 날개없는 길짐승들의 땅이 됐다
개발의 땅이 됐다
뭍의 경계는 물위로도 그어져
위쪽은 민물, 아래쪽은 바닷물
뱀장어 숭어 복어 뱅어 전어 웅어
기수어*들 갈 곳이 없다
인간들의 남하는 계속됐다
을숙도 최남단 부산쯤 되는 자리에
분뇨 해양처리장이 들어서고
경남북 일대엔 쓰레기 매립장이 차례로 섰다
좌우에서도 협공이다
오른쪽 일본땅 하단 가락타운 아파트 불빛
왼쪽 중국땅 명지 신도시 러브호텔 불빛
철새들의 밤을 뺏어갔다
갈대숲에서 밀려난 철새들
더러는 뻘밭 양식장 말목위에 지친 몸을 세우고
더러는 먼바다 거친 물살위에 피곤한 몸을 눕힌다
남쪽땅을 명지대교가 다시 동강내면
이젠 진짜 떠날 때다
새가 많아 을숙
물이 맑아 을숙
갈대가 날려 을숙
재첩이 널려 을숙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역에 사는 어류
부산 사하구 하단동 가락타운 3단지 뒤쪽.
나룻배 사공이었던 이창수(56·부산 사하구 하단동)씨는 손가락으로 원을 그리며 이곳이 을숙도와 명지를 오가던 하단나루터가 있던 자리라고 설명했다. 지금은 온통 건물이 들어차 있고 도로(당리동~신평동)가 나 있어 나루터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하단 토박이로 10대 때부터 사공 일을 했던 이씨는 “한번에 15명 정도 태웠고 배삯은 왕복 600원”이라며 당시를 생생하게 기억했다.
을숙도까지는 10여분, 하단~명지 도선은 40~50분 걸렸다. 1960년대 하단나루터에서 운영됐던 을숙도 유선(遊船)은 줄잡아 20여척. 70년대엔 50여척에 이르렀다.
나룻배를 운영했던 이춘식(56·하단 어촌계장)씨는 “지금의 낙동강하구둑 근처에도 나루터가 있었고, 1970년대는 옛 동산유지(현재 S아파트 공사장)쪽으로 나루터가 옮겨졌다가 하구둑 건설(1987년)을 전후해 모두 없어졌다”고 설명했다.
하단 나루터를 떠난 배는 현재 하구둑 아래의 을숙도 중간 부분에 도착했다. 당시 을숙도에는 선착장 주변에 주점·음식점 10여곳이 있었고, 농가도 50여가구가 산재해 있었다.
낙동강하구에서 40여년간 고기잡이를 하고 있는 김상규(75)씨는 “옛날엔 을숙도의 절반이 갈대숲으로 덮여 있었어. 갈밭 사이로 배가 다녔지. 그땐 갈대 키가 3m를 훨씬 넘었어. 요즘은 높이가 절반도 채 안되지. 하구둑이 생기고 나서는 갈대숲이 대부분 가라앉았고 없어진 고기도 굉장히 많아”라며 씁쓸해 했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낙동재첩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이곳 어민들의 얘기를 들어보자.
“재첩이 지천으로 널렸었죠. 2~3시간이면 마대 자루 가득 담았으니까 돈벌이도 됐지. 놀러왔던 사람들도 재미삼아 채취를 하곤 했어요.”
재첩은 하구둑 건설 이후 자취를 감췄다가 지난 90년대 중반부터 재개됐다. 사하·강서구의 하단·장림·중리·진목·신천 어촌계가 주로 하동쪽에서 가져온 종패를 6~8월에 뿌린 뒤 12~2월에 거둬들인다. 채취한 재첩은 대부분 일본에 수출된다. 10여개 수출업체가 최근엔 종패값 상승에다 폐사율이 높아 고전하고 있다.
낙동재첩 수출업체를 운영중인 임학봉(43)씨는 “지난해 태풍과 홍수 영향으로 올해 수확이 예년의 20~30％ 수준이고, 전망도 그리 밝지 않다”고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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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5년 을숙도 남단의 한 나루터에서 아낙네들이 섬으로 들어오는 돛단배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작가 최민식씨가 당시 현장에서 찍은 것이
다. |
을숙도는 과거부터 영화촬영지로도 각광을 받았다.
60, 70년대 웬만한 영화에는 을숙도의 울창한 갈대숲과 구름다리, 낙조 등의 모습이 단골처럼 등장했다. 하단에서 자란 백성수(62·강촌훼밀리타운 대표)씨는 “신성일씨를 비롯해 왕년의 스타들이 이곳에서 보름이나 한달씩 머물며 촬영하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근래에도 영화팀의 발길이 잦다. ‘엽기적인 그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친구’ 등이 이곳 일대에서 카메라앵글을 잡았다.
을숙도 하면 에덴공원을 떼놓을 수 없다.
하단나루터 인근에 위치했던 에덴공원은 당시 최고의 데이트 코스. 에덴공원에서는 을숙도와 낙동강 하구 일대가 한눈에 보이고 저녁 노을이 일품이었다.
지금은 건물숲에 둘러싸여 건물 사이로 을숙도가 조금 보일 뿐이며 체육공원으로 주민들의 발길이 잦다. 정상 부분에 세워진 청마 유치환의 ‘깃발’ 시비와 부산 음악교육자였던 오태균 음악비 등이 세월의 덧없음을 노래하는 듯 했다.
산책길에서 만난 한 주민(57)은 “공원 주변은 모두 갈밭이었고 하단나루터로 이어지는 길이 있었는데 지금은 매립돼 옛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에덴공원은 원래 다대포 몰운대와 함께 부산의 팔선대(八仙臺) 중 하나로 강선대(降仙臺)라고 불렸다. 맞은편 승학산에서 신선이 학을 타고 내려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60, 70년대 에덴공원에는 문인·예술인과 대학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캔버스와 카메라를 둘러메고 을숙도로 들어가는 미술·사진가, 갈대숲을 걸으며 상념에 젖는 문인과 젊은이 등등. 강선대 끝자락의 갈대밭 옆에 있던 ‘강변’이라는 고전 음악실이 이들의 사랑방 구실을 했다. 1964~74년 ‘강변’을 운영했던 백광덕(70)씨는 “요산 김정한 선생도 부산대 교수 시절 이곳에 자주 오셨다”고 회상하면서 “낭만이 철철 넘쳤던 을숙도와 하단 일대의 아름답던 정경이 이대로 잊혀 가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에던공원에는 한때 10여곳의 주점·음식점이 있었으나 이젠 정상부분에 ‘솔바람’이라는 고전음악 카페 1곳만 남아있다. 백씨가 지난 83년께 문을 연 이곳에 들어서자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반긴다. 한쪽 벽면의 액자 속에 적힌 정용해(작고) 시인의 ‘사라진 하류’의 구절이 가슴에 와 닿았다.
“낙동강 도도히 흐르던 하류/ 두 줄기로 갈라지면서/ 을숙도를 낳고…옛부터 사람들이 건너가 사랑을 맺고/ 사랑을 익히면서 놀던 을숙도엔/ 끝없는 갈대의 여울도 사라지고/ 노릿배 와 닿던 우묵한 사주(砂洲)도 간 곳 없고/ 처녀 총각 새색시 새서방을 맞이하던/ 할머니 가게집도 허물어졌다….”
/ 글 = 김찬석기자 chansk@kookje.co.kr
/ 사진 = 강덕철기자 kangdc@kookje.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