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식(사진작가)

물결치는 갈대숲, 그 사이로 한가로이 오가는 돛단배, 비상하는 고니떼, 강물을 온통 붉게 물들이는 저녁 노을….

을숙도라고 하면 이런 장면들이 아련히 떠오른다. 1960년대 나는 철새 촬영을 위해 을숙도를 자주 찾았다. 도로사정도 그렇고, 대중교통도 불편했던 시절이라 을숙도로 가는 길은 고역이었다. 부산 충무동에서 하루 두세차례밖에 없는 버스를 타고 대티고개 산길을 넘어 하단까지 가는데 장장 2시간이 걸렸다. 그렇지만 아름다운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는 생각에 늘 가슴이 설빀다.

그때 강변에 앉아 종종 막걸리를 마시던 기억이 생생하다. 걸쭉한 술맛뿐만 아니라 황홀한 대자연에도 흠뻑 취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것은 내가 앉은자리 바로 코앞으로 고니가 지나다녔다는 것이다. 그만큼 사람과 새가 가까웠다. 때문에 줌(Zoom)카메라가 없어도 새 사진을 찍는데 문제가 없었다. 지금은 새들이 멀어져 수백m 떨어진 곳에서야 겨우 촬영할 수 있으니 격세지감이 든다.

을숙도로 건너가는 하단나루터 옆에는 주점들이 10여곳 있었는데 낭만이 철철 넘쳤다.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흥겨운 우리 국악도 울려퍼지는 등 나름대로 특성이 있어 데이트족들의 발길을 끌었다.

당시 을숙도는 촬영감들이 널려 있었다. 갯벌에 점점이 찍힌 온갖 새들의 발자국과 갈대숲 사이 샛강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오리 가족, 갯벌에서 노니는 가마우지. 그리고 연인들이 손잡고 건넜던 나무다리까지. 어느 한가지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요즘 을숙도가 걱정이다. 새들이 쫓겨나고 갈대가 죽어 황폐해지고 있다. 새들이 더 이상 돌아오지 않고 지천으로 널렸던 풀과 꽃들이 피어나지 못한다면 우리 인간 사회도 삶의 건강함을 잃고 말 것이다.



임수생(부산시인협회 회장)

을숙도를 처음 찾은 것은 50년전인 고교시절이었다. 부산에서 태어난 나는 아버지의 사상문제로 6·25전쟁 직전 경남 하동의 외가로 피신해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하고 5년 만에 부산으로 돌아와 고교를 다니고 있었다.

어느날 무슨 마음이 내켰는지 친구와 함께 자동차가 일으키는 뽀얀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신작로를 걸어 하단으로 갔다. 거기서 목선을 얻어타고 조그마한 섬들을 지나 을숙도에 닿았다.

당시 나의 뇌리를 압도한 풍경은 하늘을 뒤덮고 땅을 뒤덮던 철새떼와 바람에 서로 몸을 부비며 서걱이던 갈대숲이었다.

나는 을숙도에서 사랑을 배웠다. 상상을 초월하는 대자연의 신비로움에 넋을 빼앗긴 채 을숙도 사랑에 흠뻑 빠져들었다.

을숙도에서 낙동강을 사랑하게 되었고, 갈대숲을 사랑하게 되었고, 비상하는 철새떼를 사랑하게 되었다. 모래톱을 사랑하게 되었고, 갈대밭을 누비는 게들을 사랑하게 되었고, 재첩과 꼬시래기와 백합을 사랑하게 되었다. 을숙도를 몇 갈래로 나누는 샛강을 사랑하게 되었다. 낙동강을 오르내리는 목선들과 통통배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낙동강 하구에서 노동하는 농어민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을숙도는 집안 문제로 정신적으로 방황하던 나에게 사랑을 가르쳐준 스승이었다.

세월은 되돌릴 수 없는 것인가. 을숙도는 옛날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하구둑이 건설되고 문화공간이 조성되면서 변모의 물결을 타고 있다. 자연의 오묘함과 빼어난 풍광을 간직한 을숙도는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져가고 있다.

내 사랑 을숙도. 자연에 대한 사랑을 일깨워준 을숙도. 나의 사랑을 어디에서 찾아야 하나. 추억 속에서만 찾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면 너무나 서글프다.

/ 글 = 구시영기자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