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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원의 시네 에피소드] 부산국제영화제 후기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0-10-21 19:14:15
  •  |   본지 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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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는 일상을 돌연 멈춰 세운다. 매일매일 규칙적으로 하던 일을 모두 접어두고(심지어는 밥 먹고 잠자는 일조차도 때론 건너뛰거나 대폭 줄인다), 온전히 영화 보는 일에만 집중하게 되는 9일. 부산국제영화제는 비행기 티켓을 준비하지 않고도 전 세계의 가장 혁신적이고 뜨거운 영화들을 지금 여기서 만날 수 있는 대한민국 시네필들의 해방구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것도, 노는 것도 아흐레 동안 하다보면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친다. 녹초가 되어 일상으로 돌아오면 이제야 가을이 쓸쓸한 계절임을 절감하게 된다.

축제는 끝났다. 내가 본 영화를 곰곰이 되짚으며 올해의 영화제를 정리하는 일은 일상으로 돌아와서야 시작된다. 벌써 15년째. 많은 것들이 변했다. 영화제 티켓을 구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졌고, 극장에서 영화인들과 마주치는 일도 점점 줄어든다. 그 많은 영화인들은 다들 어디로 간 것일까? 아무런 정보도 없이 보러 들어갔다가 놀라운 걸작과 마주하게 된 희열은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고, 우리가 방금 본 그 영화의 감흥을 나누기 위해 밤을 지새우는 일도 더불어 사라졌다. 영화제 프로그래밍에 문제가 생긴 것일까, 아니면 영화를 보는 내 지각에 문제가 생긴 것일까?

그럼에도 영화제에서 영화를 보는 일은 여전히 특별한 관람경험으로 존재한다. 평소라면 엄두조차 내지 않을 엄청나게 지루하고 난해한 영화에 미어터질듯 관객이 몰려들고, 그 열광적인 관객들과 호흡하며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영화는 보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감각하는 것이라 믿게 된다. 그렇기에 상영 직후 즉각적으로 터져 나오는 박수소리에 감격하는 이는 감독만은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관객과의 대화에 나선 감독과 배우를 마주하는 일은 극장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큰 즐거움 아니겠는가.

(언젠가의 나처럼) 운이 좋다면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과 나란히 '서서' 그의 영화를 같이 보기도 하고, 허우샤오시엔의 앞자리에 앉아 영화에 대한 그의 반응에 귀 기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극장 밖을 나가면 줄리엣 비노쉬 같은 스타와 마주칠 수도 있다. 시네필이라면 꿈인가 싶은 순간들이 부산영화제에서는 가끔 실현가능한 현실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건 부차적인 즐거움. 결국 영화제는 어떤 영화로 기억될 것이다. 내게 각 해의 영화제는 기억해야 할 낯선 이름의 목록으로 남는다. 이를테면 차이밍량을 만난 해, 다르덴 형제를 만난 해, 지아장커를 만난 해, 엘리아 슐레이만을 만난 해,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을 만난 해…. 발음하기도 어려운 이 이름들이 입에 붙을 즈음에 다음 영화제가 시작된다.

올해는 어떤 영화로 기억해야 할지 모르겠다. 왕빙의 '바람과 모래'는 충격적이었고, 우밍진의 '타이거 팩토리'는 집요했다. 키아로스타미의 '증명서'는 지적이었고 기타노 다케시의 '아웃레이지'는 삭막했다. '레드이글', '대지진', '라아반'으로 태국, 중국, 인도 대중영화의 오늘을 목격하기도 했다. 어떤 영화는 좋았지만 감각을 뒤흔들어놓을 정도는 아니었고, 어떤 영화는 실망스러웠지만 그 조차 예상을 넘어선 것은 아니었다.

신기하게도, 영화는 아무리 많이 보아도 '이것으로 충분하니 이제 그만'이라는 생각은 허용하지 않는다. 영화제도 그렇다. 인상적이지 않아도 다음 해를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영화에는, 축제에는 중독성이 있다. 부산의 가을을 영화제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2011년 신임 위원장과 함께 두레라움에서 시작하게 될 영화제의 두 번째 시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영화평론가·부산대 영화연구소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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