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백호는 청룡(靑龍)과 주작(朱雀), 현무(玄武)와 함께 우리나라의 사방을 지키는 사신(四神)이었다. 그중 백호는 흰털 동물을 성스럽게 생각하는 우리 민족에게 더욱 특별한 존재로 여겨진다. 동물원에서도 백호는 단연 인기 있는 동물이다. 새하얀 털을 가진 백호를 보고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신기함에 탄성을 지른다. 그러나 오늘날 동물원의 백호는 신기한 외모와 달리 여러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다. 자연적인 교배가 아닌 근친교배로 탄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백호는 알비노 동물과 혼동되기 쉽다. 정확히는 알비노증이 아닌 '루시즘'이라는 증상에 의해 태어나는 동물이다. 알비노와 루시즘은 둘 다 돌연변이이지만 발생하는 원리와 증상은 확연하게 다르다. 동물의 유전자 중 털색과 관련이 있는 유전자는 5가지로 알려져 있다. 과학자들은 이 유전자를 각각 A, B, C, D, E로 명명하고 구분했다. 그중 알비노는 'C'유전자가 고장 났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다. C유전자가 고장 나면 모든 색소를 만들지 못한다. 이럴 경우 피부나 털은 흰색을 띠고, 멜라닌 색소가 없는 홍채에는 망막의 혈관이 그대로 비쳐 붉은 빛을 띤다. 알비노 동물의 일종인 실험실용 흰쥐가 털은 물론 온몸이 하얗고 눈이 빨간 이유가 이 때문이다.
반면 루시즘은 발생 과정에서 피부나 털, 깃털의 피부세포가 색소세포로 제대로 분화되지 못해 발생하는 증상이다. 색소를 아예 만들지 못하는 알비노와 달리 색소가 부분적으로 부족해 몸의 일부 털이 흰색으로 변하거나 원래의 색이 희미해질 정도로만 변할 수도 있다.
백호를 자세히 관찰해 보면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보통의 호랑이라면 황토색이었을 부분의 털이 흰색으로 바뀌어 있다. 호랑이 특유의 검은색 줄무늬는 그대로 나 있고, 눈도 검정색이다. 글자 그대로 황토색 털만 흰색 털로 바뀐 것이다. 물론 몇몇 호랑이는 털이 완전한 흰색이 아닌 살짝 노란 빛을 띠기도 한다.
백호는 유전적 돌연변이로 태어나는 동물인 만큼 태어날 확률도 매우 낮다. 야생에서 백호가 태어날 확률은 벵갈호랑이는 1만 분의 1, 시베리아 호랑이는 10만 분의 1로 매우 희귀하다. 그럼에도 야생에서보다 동물원에서는 백호를 비교적 쉽게 볼 수 있다.
백호의 탄생은 멘델의 유전법칙 중 '우열의 법칙'을 따른다. 부모 호랑이 모두에게 백호를 발현하는 열성유전자(a)가 적어도 하나씩 있어야 백호가 탄생할 수 있다. 열성유전자를 하나씩 가진 황호(Aa) 두 마리가 교배했을 때 백호(aa)가 태어날 확률은 25%다. A형과 B형인 부모가 만났을 때 O형 자식이 탄생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황호(Aa)가 백호(aa)와 교배를 하면 백호가 태어날 확률은 50%로 늘어나고, 백호끼리 교배를 할 경우엔 확률이 100%가 돼 무조건 백호만 태어난다. 이윤선·과학칼럼니스트
※다음주에는 백호의 비밀(하)가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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