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부산 영도구에서 가슴 등판에 아무런 무늬가 없는 벌 한 마리가 발견됩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포착된 것으로, 중국 남부와 베트남 인도 등 아열대 지역에서 서식하는 '등검은말벌'(사진)입니다. 성충은 나무 수액이나 꽃의 꿀 등을 주로 먹으며, 유충은 성충이 사냥한 곤충을 먹고 자랍니다.
등검은말벌이 부산에서 처음 발견됐을 때는 지구 온난화에 관한 인식이 널리 퍼지기 전이었습니다. 당시 학자들은 등검은말벌이 선박 등을 통해 우연히 유입된 것으로 추정했고, 우리나라 기후에 적응하지 못하고 얼마 안 가 사라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의 '자생생물 조사·발굴 연구' 결과 현재 등검은말벌은 산림지역뿐만 아니라 도심에서도 급격히 퍼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작년 기준으로 지리산 북부지역은 물론 강원도 삼척 부근까지 계속 서식지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놈들이 토착 말벌류보다 세력이 강해 생태계에 혼란을 주고 있으며, 심지어 시민에게 피해를 주는 사례까지 증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국립생물자원관에 따르면 등검은말벌은 인도네시아와 대만뿐만 아니라 프랑스에서도 도시민에게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해 벌집 제거 요청과 피해신고가 수만 건 접수되는데, 2010년 부산 금정구의 말벌류 피해에 의한 119구조대 출동 중 등검은말벌이 41%로 가장 높게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 도심에서 주로 나타났던 말벌류는 왕바다리입니다. 왕바다리는 개체 수가 적고 공격성과 독성이 비교적 약한 편입니다. 반면 등검은말벌은 왕바다리보다 독성이 훨씬 강합니다. 국립생물자원관은 "국내에 서식하는 토착 대형 말벌류는 총 9종으로 알려졌으며, 그중 5종 정도가 등검은말벌의 침입과 확산 후 세력이 약화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생태계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측면에서 피해도 상당합니다. 등검은말벌은 토종 꿀벌이나 양봉 꿀벌의 집 앞에서 기다리다 꽃가루 등을 채취해 돌아오는 꿀벌을 공격하고 사냥하는 전문 포식자입니다. 국내 양봉 농가에 경제적 피해가 우려되는 대목입니다.
등검은말벌 한 종류에 왜 이렇게 할 말이 많으냐고요? 온난화 때문에 일어날 생태계 변화의 단면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국립생물자원관은 등검은말벌의 확산이 기후변화에 의한 결과라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내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이미 제주도와 한반도 남해안은 아열대에 가까운 날씨를 보이고 있습니다. 생태계의 변화는 갈수록 가속도가 붙을 것입니다. 흔하지 않던 질병도 기승을 부릴 것입니다. 기후변화 대응을 넘어 적응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높습니다. 하지만 발걸음은 더디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