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핵발전소 부품비리 사태와 관련해 '고강도'(?)의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았습니다. 지난 7일 국무총리와 장관 등 고위 관계자들이 나서 합동 브리핑까지 했습니다. 서울쪽 언론은 이번 대책에 대해 '원전 비리와의 전쟁 선포'라는 둥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그런데 핵발전소를 끼고 사는 부산에서 볼 때는 전혀 느낌이 안 오니 무슨 일일까요. 환경단체 관계자는 "껍데기(표현)는 좋은데 뜯어보니 내용은 깡통"이라고 실망감을 표시했습니다.
정부는 최근 문제가 불거진 신고리와 신월성 원전뿐만 아니라 현재 가동 중이거나 건설 중인 모든 원전의 부품 시험성적서 12만5000건을 전수조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빠르면 2개월 늦어도 3개월 안에 조사를 마치겠다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조사하겠다면서 12만5000개의 부품 시험성적서를 2개월에 마친다구요? 상황이 다급한 만큼 토·일까지 근무한다 해도 60일 동안 하루에 2083개의 부품 시험성적서를 조사해야 합니다. 부품 시험성적서가 A4용지 한 장이라도 2000장이 넘습니다. 부산녹색연합 김승홍 간사는 "큰 기대를 한 것은 아니지만 이번 전수조사 역시 정부의 보여주기식 전시행정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습니다.
정홍원 총리는 이날 "과거 유사한 사건이 있었음에도 근본적인 해결을 못하고 방치하다가 이제 와서 국민의 큰 부담으로 터져나온 궁극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철저히 가리겠다"고 말했습니다. 총리가 정말 궁극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몰라서 이런 발언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날 산업통상자원부에서 내놓은 설명자료를 보면 정부는 조목조목 무엇이 문제인지 짚어내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실천입니다. 정부가 수차례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수차례 반복됐던 실패 사례 때문입니다. 지난해 고리원전 1호기 정전사고 은폐 때도,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에도 원전 안전 확보와 관련한 수많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원전 관련 비리와 사고는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습니다.
당장 최근에 이슈가 되고 있는 스트레스 테스트만 해도 그렇습니다. 시민사회단체가 그렇게 요구했던 중요 사항이 대부분 빠졌습니다. 테스트 시행 주체가 한국수력원자력인 데서 보듯 이번 부품 비리의 원인이 된 고질적 병폐인 폐쇄성과 비밀주의가 그대로 들어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데도 이 지경입니다.
원전의 현실적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핵발전에 민감한 이유는 분명합니다. 한 번의 사고가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부르기 때문입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전 도쿄전력은 "임계사고 혹은 노심융해사고라고 하는 최악의 사태가 일어나도 절대로 방사성물질을 외부로 누출되지 않도록 하는 '5중의 벽'이 있다"고 공언했습니다. 그런데 이 5중의 벽은 너무도 허망하게 무너졌습니다.
이은철 원자력안전위원장은 "지금까지 하던 방식대로 안전에 문제가 있으면 원전을 정지하는 것이 저의 원칙"이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부산과 울산 경주 등의 시민들은 안전에 문제가 없도록 하라는데, 원전 마피아들은 문제가 있으면 세우면 그만이라니 인식의 간격이 너무 크다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