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쏟아진 폭우로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와 시립미술관 앞 도로가 침수돼 있다. 부산의 주요 간선도로는 우수관의 시간당 처리 용량이 70㎜에 불과해 집중 호우가 내릴 때마다 침수된다. 박수현 기자 parksh@kookje.co.kr

- 홍콩, 도심 대형 배수시스템 도입
- 산사태 등 피해 10분의 1로 줄여
- 영국, 1000년 빈도 돌발홍수 대비

- 부산, 시간당 100㎜에도 '물바다'
- 폭우 빈번해져도 행정은 제자리
- 인프라 개선 없인 '재앙' 못 막아

홍콩아일랜드는 섬 중앙에 산이 있고, 해안선을 따라 도심이 발달했다.

전체 면적의 60% 이상이 15도 이상의 자연경사면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해마다 300건 이상의 크고 작은 산사태가 났고, 2000년대 초에는 도심에서 큰 침수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연간 20~30건으로 산사태가 줄었다. 인명 피해도 많지 않다. 비밀은 홍콩의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은 배수시스템에 있다. 홍콩은 산지에서 도심으로 유입되는 빗물을 수직갱도를 통해 지하로 보내고, 모인 빗물은 대방수로를 통해 곧바로 바다로 배출한다. 섬 35개 지점에 대규모 갱도를 만들었고, 갱도의 깊이는 구간에 따라 100m에 이른다. 모인 빗물을 배출하는 대방수로관의 지름은 6.25~7.25m나 된다.

서울시는 최근 홍콩의 배수시스템을 배우기 위해 교류협력관을 파견했다.

또 서울시는 우면산 산사태 이후 8500억 원을 들여 도심을 관통하는 '빗물 고속도로'를 내고 있다.

주택가 또는 산지와 배출구인 한강을 잇는 지름 5~7.5m의 '대심도 배수관'을 설치하는 사업이다. 완공되면 광화문 광장의 배수능력은 시간당 75㎜에서 50년 빈도인 시간당 105㎜로 대폭 향상된다.

■1000년 빈도에 대응한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은 앞으로 70년 뒤 폭염은 90%, 집중호우는 66%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 20년 빈도로 나타나는 일 최고 기온은 50년 뒤에는 2~5년 간격으로 빈번하게 나타나고, 일 최고 강수량 빈도는 20년에서 15년으로 간격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한다. 특히 우리나라가 포함된 동아시아의 경우 20년에 한 번 내리는 규모의 집중호우가 20~30년 뒤에는 10년마다, 2080년대에는 5년마다 나타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이 같은 기후변화로부터 런던 도심을 보호하기 위해 1000년 빈도의 돌발홍수에 대비하고 있다. 런던시 동부 템즈강의 홍수 수위조절장치인 템즈 배리어(Thames Barrier)의 시설용량 계획을 최근 수정한 것이다. 이 수문조절장치는 1982년 건설 당시 연평균 1.8㎜의 해수면 상승을 기준으로 설계했다.

그러나 최근 온난화가 가속화하면서 연 평균 해수면 상승률은 3.1㎜로 배 가까이 빨라졌다. 영국 치수당국은 이에 따라 2m 이상 수문을 높일 계획이며, 2030년까지 연간 8㎜의 해수면 상승에 대비하도록 설계를 바꾸고 있다.

■발상 전환 없이 피해 못막아

부산시의 주요 간선도로와 지선도로의 우수관이 시간당 처리할 수 있는 용량은 70㎜에 불과하다. 최근 시간당 100㎜ 가까운 폭우가 쏟아질 때마다 빗물이 도심 주요 도로를 가득 채우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 정도 시스템으로는 닥쳐올 기후변화를 감당할 수 없다.

지난 14일과 15일, 부산에는 약 300㎜의 집중호우가 내렸고 도심 곳곳이 침수 피해를 입었다. 부산에서 단시간에 내리는 집중호우의 피해는 이제 일상이 됐다. 지난해에는 영도구 영선동 동삼동 일대에 산사태 등으로 도로가 막혀 한 달여 차량통행이 제한됐으며, 2009년 7월에는 하루 310㎜의 폭우가 쏟아져 연제구 연산6동과 사하구 장림동 일대가 산사태로 큰 피해를 봤다.

사정은 갈수록 악화되지만 행정은 제자리걸음이다. 부산시청 생활하수과는 오수관로만 주로 담당한다. 빗물을 처리하는 우수관로에 대한 업무는 구청 등 기초단체가 주로 맡고 있다. 이렇다보니 해마다 집중호우로 인한 피해가 커져도 우수관로의 확장은 꿈도 못꿀 일이다. 공무원 월급 주기도 빠듯한 부산지역의 구·군청이 우수관로 확대에 나서기는 애초부터 어렵다.

부산시 관계자는 "시 정책의 초점은 범람이 잦은 곳에 대책을 모색하는 것이며, 센텀시티와 부산대운동장 등과 같은 지하에 대규모 우수저류시설을 확충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 15일 폭우 때 센텀시티 일대 역시 올림픽공원 지하에 90억 원을 들여 만든 빗물저장시설이 제 역할을 못하면서 물바다로 변했다.

연세대 '기후변화 적응형 사회기반시설 연구센터'의 정상섬 교수는 "기후변화로 예상되는 우리나라 대도시의 가장 큰 문제는 산사태다. 온난화 속도를 감안하면 도심 인프라를 100년 빈도 강수에 맞춰도 안심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우리나라의 식생이 변했고, 녹화사업을 명목으로 산에다 등산로 생태공원 경작지 등을 조성했다. 그러나 이런 시설을 하는 과정에서 빗물이 제대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는 구조물 등이 있을 수 있다. 특히 아파트 등 인공구조물이 많은 경사면이 피해를 키우지 않도록 오수 우수관을 확장,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조성준 캐나다 토론토시의원

- "행정, 철저히 기후변화에 맞춰야"

- 40년 이후 기후변화 예측해
- 토론토시 인프라 바꿔나가
- 환경보존 위한 '행정협의체'
- 부산시 검토 롤모델로 제시

"앞으로 닥칠 온난화와 재난을 생각하면 산을 깎아서 집을 짓거나 공공시설을 한다는 것은 캐나다에서는 상상하기 어렵다. 도시 행정, 특히 인프라는 철저히 기후변화를 고려해 바꿔가야 한다."

조성준(71·영어명 레이몬즈 조·사진) 의원은 캐나다 토론토 시의회의 7선 의원이다. 1991년 시의회에 진출한 이후 21년째 의정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는 환경위원회의 부위원장이자 토론토동물원의 이사를 맡고 있다.

조 의원은 "토론토시는 40년 이후의 기후변화를 예측하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가동하면서 이를 토대로 기후변화 적응 대책을 꾸준히 세워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시청 공무원과 시의원 교수 전문가 등이 모인 태스크포스팀을 중심으로 캐나다 최대 도시의 인프라 개선에 많은 예산을 투입하면서 공을 들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2005년 폭우로 큰 피해를 입었고, 또 앞으로 집중호우에 따른 침수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큰 토론토시 북쪽의 저지대를 중심으로 배수시스템을 확대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스카보로를 중심으로 한 토론토시 동쪽 지역에는 작은 빌딩규모(약 2000㎥)의 저수조를 만들고 있다.

이 같은 적응 대책은 건축에도 적용된다. 새로 짓는 건축물에 대해서는 설계 심사 단계에서 배수관의 크기를 한 단계 확대하도록 요구한다. 도로포장의 개념도 바꿨다. 가능하면 밝은색, 또 빗물이 잘 스며드는 재료를 사용하도록 시의 방침을 정했다.

토론토교통공사(TTC)의 이사로 최근 선출된 조 의원은 토론토시가 추진 중인 지하철 노선 확장에 대한 목소리도 높이고 있다. 현직 시장이 추진하는 지하노선의 경전철 건설정책에 반대하고 있다. 투자비와 에너지 효율, 도시의 미래를 위한 인프라라는 측면을 감안할 때 시장의 정책이 적절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조 의원은 '토론토지역보존기구(TRCA)'는 부산시에서도 도입을 검토할 만하다고 밝혔다. TRCA는 토론토지역 환경보존을 위한 강력한 행정 협의체로, 1만6000㏊의 땅을 소유 및 관리한다. 400명 이상의 정규 직원이 친환경적 도시개발을 유도하는가 하면 저지대를 매입해 기후변화에 대비한 빗물저장시설을 설치하기도 한다.

조 의원은 '나무심기 운동'을 통해 토론토의 스타로 부각됐다. 조 의원은 "시의회 진출 직후 캐나다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다 곧바로 나무심기 운동을 시작했으며, 현재는 토론토 지역사회의 운동으로 확장됐다"고 밝혔다. 그 덕분에 토론토시에서 한인사회의 위상이 한껏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특히 조 의원의 나무심기 운동은 최근 토론토의 낮기온이 30도 이상 치솟는 날이 많아지면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도심녹화와 폭염해소에 숲이 뛰어난 인프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 의원은 "이번 임기 안에 토론토시의회 안에 '지속가능한 환경보존위원회(Sustainable Environment Conservation Committee)'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기후변화 적응에 필요한 보다 심도 있는 논의를 위해 현재 환경위원회보다 기구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재생에너지와 전기자동차 등의 보급 확대를 위한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토론토

※ 이 기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지원받아 취재했습니다.

태풍 시나리오에 따른 침수(예상) 면적  (단위 ㎡) 구분 태풍 사라호 태풍 매미 슈퍼태풍 강서구   119,500 107,600 14,482,200 사하구   828,000 990,000 1,493,200 수영구  1,108,100 1,101,700 1,348,500 해운대구     1,854,600 1,564,400 2,871,700 기장군    1,390,000 1,293,700 1,867,200 ※출처 : 부산시 기후변화 적응대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