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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래 장영실과학동산 전경. |
선조들의 자랑스런 과학기술 중에는 현존 최고(最古)의 천문시설인 경주 첨성대와 고려시대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가 있다. 측우기를 발명하고 자격루와 각종 천문기기를 창제한 조선조 세종 때는 우리 과학기술의 전성기였다. 15세기 조선시대의 천문과학이 세계적인 수준에 이른 것은 세종대왕 자신이 천문학자로서 학문의 수준이 매우 높았을 뿐만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 천문기기 제작에 적극적인 지원을 했기 때문이다.
천재 기술자 장영실의 조상은 중국 송나라 사람이지만 고려에 귀화한 후 그 후손들은 고려 말에 이르기까지 고려 조정에서 대대로 고위직을 지내며 과학기술 관련 직에 있었다. 장영실의 과학기술자로서의 천부적 재능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그는 노비였지만 왕의 특명으로 관직에 오른 뒤 세종의 명으로 중국에 유학하고 돌아왔다. 세종 14년(1432)부터는 천문관측기기 제작에 착수해 간의와 혼천의를 완성한 이래 수많은 천문기기를 창제했다. 1434년에는 새로운 형태의 물시계인 자격루(自擊漏)를 완성해 그 공로로 대호군(大護軍·장성급)에까지 승진했고, 1438년에는 천상시계인 자동물시계 옥루(玉漏)를 만들어 경복궁 천추전 서쪽 흠경각에 설치했다.
자격루는 15세기 공학기술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자동시보 물시계이다. 그 구조는 아날로그 물시계 부분과 자동으로 시간을 인형의 팻말로 보여주면서 종과 북과 징으로 소리내어 시보하는 디지털 자명종 시계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시간을 알려주는 방법은 하루의 시간을 12시(자, 축,…)로 나타내며 매시 시패(時牌) 창에서 시패를 든 인형이 올라오고, 또한 종을 쳐서 시간을 알려준다. 특히 밤 시간은 경점(更點) 시간으로 나타내는데 계절마다 밤의 길이가 같지 않기 때문에 계절에 따라서 물시계 잣대를 교환하면서 사용했다. 밤 시간은 5등분해 5경(更)으로 하고, 매 경을 다시 5등분해 5점(點)으로 나타냈다. 경 시간에는 북을 치고, 점 시간에는 징을 쳐서 시간을 알렸다. 당시의 유물은 없어졌지만 최근 국립고궁박물관에 복원해 전시하고 있다.
옥루(흠경각루)는 종, 북, 징을 타격해 시간을 알려줄 뿐만 아니라 태양운행 시스템을 부착하고 천체의 변화를 보여주는 장치까지 있어 동지, 춘분, 하지, 추분 등을 알려주는 종합적인 자동물시계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중국의 여러 장치는 사람의 손으로 움직이는 수동식이었는데, 옥루는 자동으로 운행하도록 장영실이 독창적으로 고안하고 개량한 것이다. 옥루의 전체적인 모습은 시경 '빈풍도'에 묘사된 사계절의 아름답고 풍요로운 산천의 모습으로 유교적 지상낙원을 담은 풍경이다. 옥루는 천문시계이기도 하지만 성군이 다스리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사회, 그리고 자연의 이치가 순리대로 구현되는 자연의 세계를 재현해 놓았던 것이며, 세종이 자신의 이룩하려던 목표였던 것이다. 당시 유물은 없어졌지만 복원을 위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세종 때 자격루와 옥루의 독창적인 시보장치와 타종장치에 대한 기술은 시보시스템을 나타내는 종합적인 시계 기술로 이어졌다. 이러한 기술적 발전이 서양의 추력식 동력장치를 이용하여 1만 원권의 그림인 국보 230호 송이영의 혼천시계 제작(1669) 기술로 이어졌다. 오늘날 우리의 과학기술이 먼 옛날 장영실과 같은 선조들의 과학정신과 맞닿아 있음을 새삼 느끼며 우리 선조들의 창조적인 과학기술 전통을 되살려 국가의 자긍심을 세워 새로운 창의력으로 희망찬 미래를 이뤄가기를 소망한다. -끝-
이용삼·충북대 천문우주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