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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래 장영실과학동산에 설치한 수표(왼쪽)와 풍기대 복원품. |
세종시대 측우기를 발명한 조선은 강우량뿐만 아니라 하천의 수심을 측정하는 수표(水標)와 풍향과 풍속을 관측하는 풍기대(風旗臺)를 사용해 세계 기상관측의 자랑스러운 큰 업적을 남겼다. 집중 호우의 시기나 하천의 수심과 같은 자연조건을 통계적으로 파악해 홍수 조절에 대한 적절한 대비책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은 조선 초기부터 있었다. 세종 23년(1441)에는 청계천의 수위를 재기 위해서 마전교(소와 말을 매매하는 곳이 있었음) 다리 서쪽 물속에 수표를 세계 최초로 설치했다. 처음에는 목재로 세워 사용했으나 그 후 성종 때 돌로 만들었다.
영조 36년(1760)에 대대적인 청계천 준설 후 수표교 옆에 수표를 다시 세웠다. 오늘날에는 수표동이란 지명이 붙었다. 이 수표가 오늘까지 남아 보물 제838호로 지정됐다. 그러나 1959년 청계천 복개공사 때 수표교와 수표는 장충단공원으로 이전됐고, 다시 1973년에 수표만 세종대왕기념관 뜰에 옮겨졌다. 2005년 청계천이 복원되면서 수표교를 청계천으로 옮기려다 폭이 맞지 않아 원형과 비슷하게 복제해 설치했다. 필자는 이곳에서 초등학교 시절에 썰매를 타고 놀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직도 서울의 물 맑던 옛 시절을 회상하며 마음의 고향인 서울의 청계천 수표 다리를 찾는 이들이 있다.
수표의 높이는 약 3m이고 폭은 약 20㎝의 화강석으로 5각형의 방추형으로 돼있다. 수표의 눈금은 10자(尺)까지 만들어져 있고 3자 높이에 갈수(渴水), 6자에는 평수(平水), 9자 되는 눈금에는 대수(大水)를 분간할 수 있도록 ○자형 구멍의 홈이 파여 있는데 멀리서 봐도 쉽게 분간할 수 있다. 현재 장영실과학동산에 설치한 수표는 바로 이 수표를 본떠 만든 것이다. 수표를 사용했던 기록은 청계천 외에도 한강의 수심을 측정했다는 내용을 '선조실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한 기상예측을 위해 세종 때부터 농작물과 기상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바람의 세기와 방향을 측정하는 풍기대를 사용했다. 풍기대는 받침돌 위 8각의 돌기둥에 풍기죽(風旗竹)을 꽂고 깃발의 펄럭임을 보아 대체적인 풍속과 8방향의 풍향을 측정할 수 있다. 고대 중국에서는 동짓날이나 정월 초하루에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에 따라 한 해의 좋고 나쁨을 예측하는 풍점(風占)을 보는 전통이 있었다. 그러나 세종 때 우리는 기상기구를 이용해 통계적인 경험과 관찰에 의한 과학적인 예보 값을 얻을 수 있었다. 세종 때의 전통을 이어 영조46년(1770)에 창경궁과 경희궁에 설치한 풍기대는 현재 보물 제846호와 847호로 지정돼 있다. 장영실과학동산에 만들어 놓은 풍기대는 보물 제 846호를 본떠 만든 것이다.
조선의 우리 선조들은 농업을 주업으로 하였기에 기상예보가 중요했고 따라서 각종 기상기구를 사용해 과학적인 예보를 수행하는 기상관측의 전통을 이어왔다. 기상관측 기록 중에 '풍운기(風雲記)'는 관상감의 관측자가 24시간 3교대 하며 관측한 모든 현상을 규정에 따라 기록한 관측일지 원부이다. 이처럼 기상기구뿐만 아니라 각종 기상자료는 우리의 전통 과학문화의 자랑스러운 업적이다.
이용삼·충북대 천문우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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