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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영실과학동산에 설치된 신법지평일구 복원품. |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적도면 해시계는 시반(時盤)의 눈금 간격이 일정한 각도로 등분돼 있지만 서양에서 오래전부터 사용해온 지평해시계의 시반은 지평면 상에 일정한 각도로 등분되지 않는다. 조선의 지평해시계들은 17세기 중국의 예수회 선교사들과 접촉을 통해 전래했고, 지평일구(地坪日晷)로 부르고 있다. 지평해시계 중에는 시간만 측정할 수 있는 것과 앙부일구처럼 춘추분, 하지, 동지 등의 24기(절기) 또는 절기에 해당하는 1년 동안의 양력 날짜를 표기한 시각선과 절후선을 표기한 것이 있다. 또한 설치 면이 지평의 바닥뿐만 아니라 동쪽과 서쪽 또는 남쪽 등 다양한 방향의 벽면에 설치한 벽면 해시계도 있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지평해시계 유물 중에 국립고궁박물관의 보물 839호는 소현세자가 1645년 청나라에서 돌아올 때 가져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유물을 원본으로 해 18세기 초에 관상감에서 검은 돌에 모사해 만든 신법지평일구는 보물 840호로 지정됐다. 현재 장영실과학동산의 신법지평일구는 이것을 원형으로 삼아 설치장소의 위도(북위 35도 12분)에 맞게 설계해 시각선과 절후선을 가지고 제작한 것이다. 그 외 전시물 중에는 고려대 박물관에 소장된 19세기 말의 평면해시계를 원형으로 삼아 제작한 것과 동쪽 벽면해시계와 서쪽 벽면해시계들이 있으며, 모두 충북대 천문기기연구실에서 장영실과학동산의 위도에 맞게 설계해 제작한 것이다.
지평해시계 영침은 막대의 수직봉으로 사용할 수도 있지만 직각삼각형 형태의 표(表)를 사용한다. 직각삼각형을 사용하면 빗변의 그림자 선이 시반을 등분한 시각선과 일치해 더 편리하게 시간을 측정할 수 있다. 직각삼각형 표의 밑변과 빗변의 사이각은 해시계를 설치한 장소의 위도와 일치해야 하며, 빗면이 향하고 있는 방향은 하늘의 북극을 향한다. 평면에 놓인 시반을 살펴보면 표(또는 막대 기둥)의 그림자 이동은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옮겨가는데 시간과 시간 사이의 간격은 위도에 따라 다르게 구분된다.
신법지평일구 표의 그림자가 지나가는 경로를 살펴보면 계절을 나타내는 선은 동서 방향의 곡선으로 계절마다 다르게 표시돼 있고 시각선은 남북 방향으로 비스듬한 직선으로 시간별로 나열돼 있다. 절후선(절기선)은 태양의 위치에 따라 하짓날은 시반의 남쪽에 위로 불룩한 형태로 있고, 동짓날의 경우는 북쪽에 아래로 불룩한 모양으로 있다. 춘분과 추분 날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시반의 중앙에 직선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계절에 따라 그림자의 위치가 이동하는 궤적이 모두 다르게 나타난다. 이 궤적의 형태는 태양의 적위 값(하지: +23,5도, 동지: -23.5도)에 따라 결정된다.
장영실 과학동산의 해시계 광장에는 지름 3m의 둥근 화강석 원반 위에 방문자가 막대형 영침이 되어 자신의 그림자를 보는 해시계(Analemmatic sun dial)가 있다. 이 시계의 특징은 해시계 중앙에 남북으로 길게 만든 발판에 24절기 또는 1년간의 절기의 날짜로 표기한 것을 보고 해당일(또는 절기)에 발을 딛고 서서 자신의 그림자를 보면 시간을 알 수 있게 된다. 이런 형태의 시계는 국내 최초로 설치한 것이며, 동래의 위도에 맞게 정밀하게 계산해 설치한 것이다.
이용삼·충북대 천문우주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