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은 절기상 햇볕이 풍부하고 만물이 점차 생장해 가득 찬다는 의미의 '소만'이었다. 이때는 저녁 바람이 꽤 차갑고 일교차가 심해 감기를 조심해야 된다는 뜻의 '소만 바람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는 옛 속담도 전해 내려온다. 하지만 올해는 예년과 달리 이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해서, 통상 이달 중하순쯤 꺼내던 선풍기와 에어컨을 벌써부터 가동하는 가정이나 직장이 꽤 늘었다.

무더위를 잡기 위해 켜놓았던 냉방시설의 찬공기를 오랫동안 쐰 후 감기와 비슷한 증상을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봤을 것이다. 냉방병이라 불리는 이 증상은 냉방기의 청결상태 외에도 실내외의 심한 온도 차이로 인해 인체가 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일종의 적응 장애로 볼 수 있다. 즉, 실외의 높은 온도와 실내의 낮은 온도의 차이가 클수록 몸이 바깥의 변화된 온도에 적응할 시간을 갖지 못해 인체 내 자율신경계와 체온유지 시스템이 교란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냉방병의 구체적인 증상으로는 두통, 재채기, 코막힘, 콧물 등의 일반적인 감기증상과 더불어 기력이 떨어져 몸이 무거워지는 신중감(身重感), 체한 것처럼 속이 더부룩해지는 복만(腹滿), 설사 등의 위장장애 증상도 관찰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냉방병은 현대에 들어 새로 생겨난 질병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한의학의 고전인 동의보감에서는 '중서(中暑)'라고 하여 여름병에 대해 언급된 부분이 있다. 특히 중서의 한 종류인 '음서(陰暑)'에 대한 서술 부분에서는 '서늘한 정자나 차가운 물 속에 오래 있는 등의 과도한 피서로 생긴다'해서 현대의 냉방병에 해당하는 원인 및 증상에 대해 상세히 표현하고 있다.

동의보감의 음서 치료법에는 '땀으로 냉기를 몰아내고 기능이 떨어진 중초(中焦)의 기운을 따뜻하게 해 보강하는 이향산이나 곽향정기산을 쓴다'고 적혀 있다. 따뜻한 성질의 음식을 섭취해 발한(發汗)을 촉진시켜 몸 속에 과하게 들어온 냉기를 땀을 통해 배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더운 여름, 땀을 뻘뻘 흘리며 삼계탕을 먹는 풍습이 여름을 건강하게 이겨내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던 것이다.

냉방병을 예방하기 위한 생활 수칙으로는 실내외 온도 차이를 줄이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개인이 냉방시설을 임의로 조절하기도 힘든 환경이 많고 작업상 쾌적함이 떨어지므로 현실적인 방안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대신, 에어컨 필터를 자주 청소해주고 에어컨이 계속 가동되고 있더라도 매시간 5분 정도는 환기를 해 실내외의 차이를 줄여주는 것이 좋다.

여름은 건강관리가 까다로운 계절인 만큼 여름의 문턱에 와 있는 지금부터 건강관리에 유의하는 것이 좋다.

이동희 서울수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