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은 언제일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아마도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것은 새 생명을 확인하는 순간일 것이다. 그래서 산부인과 진료실은 매일 환희의 순간을 맛보는 장이 된다.

영상기술의 발달로 크기와 심장 박동수만 확인하던 시대를 지나 몸 안에 있는 아기의 표정과 움직임을 보면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와의 교감은 예비 부모만이 느낄 수 있는 원초적인 즐거움이다. 하지만 늘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태아의 상태가 좋지 않을 때면 현재의 상황과 앞으로의 대처방안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 어려움이 따른다.

초음파를 보기 전까지 예상치 못한 불행 중 가장 흔한 일이 바로 '유산'이다. 임신 10주 이전의 유산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흔하다. 20대 젊은 부부라 하더라도 열에 두세 명은 유산을 경험한다. 이유는 무수히 많으나 가장 흔한 원인은 인간이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불완전성 때문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일정 부분 유전자 변이가 생긴다. 바꿔 말하면 피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유산으로 진단된 산모에게 아무리 부주의 때문이 아니라고 설명해도 대부분의 부부는 뭔가를 조심하지 않은 결과라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생각은 몸가짐을 더욱 조심하게 만드는 좋은 점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증폭시켜 다음 임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임신 시도와 유지에 아주 중요한 '심리적 안정' 자체를 방해하는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유산을 경험한 여성에게 남편이나 주위 사람들의 격려가 필요한 이유이다.

유산을 피할 수 있는 방법으로 무엇이 있을까. 가장 확률이 높은 방법은 일찍 임신을 시도하는 것이다. 유산율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요인은 산모의 나이다. 노산의 경우 유산 등 여러 합병증이 흔하게 나타나는 주된 이유는 난자의 염색체 이상이 많이 발생하고 호르몬 분비기능이 20대 때보다는 훨씬 저하돼 있기 때문이다.

의학이 발달하고 약이 좋아지더라도 태아 건강의 근본 배경이 되는 자궁과 난소의 상태는 거의 절대적으로 나이에 의해 결정된다. 노화는 아직 극복되고 있지 않고 앞으로 추세를 봐도 우리 세대에는 극복되기 힘들 듯싶다. 인공수정이나 시험관아기 등 임신율을 높이는 방법은 선진국이라 해도 거의 30년 동안 근본적인 기술발전이 없는 상태다. 보조생식술로 늦은 나이에도 출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고 시험관 아기 역시 결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산모 나이이다.

임신 계획이 있거나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꼭 낳기를 바라는 부부는 여러 고민과 가능성을 제쳐두고 일단 임신 자체부터 시도하는 것을 권한다.

정의중 에델산부인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