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에는 약 5ℓ(체중의 8% 정도)의 혈액이 흐른다. 혈액은 혈장이라는 액체성분과 혈액세포로 이루어져 있고, 혈액세포는 적혈구, 백혈구, 혈소판으로 구성돼 있다. 전체 혈액의 40~50% 정도를 차지하는 혈액세포에는 대부분 적혈구가 차지하고 있다. 피가 붉은 이유도 적혈구가 붉기 때문이다. 이 적혈구는 산소를 운반하는 헤모글로빈이라는 물질을 함유하고 있는데, 헤모글로빈 또는 적혈구가 부족한 상태를 빈혈이라고 한다. 빈혈환자는 산소 운반 결핍으로 인해 어지럽거나 쉽게 피로하고 숨이 찬 증상을 호소한다. 심한 경우 심장이나 뇌와 같이 산소 공급에 민감한 장기에 심각한 손상을 유발할 수도 있다.

빈혈의 원인은 다양하다. ▷혈액의 기원이 되는 조혈 간세포가 감소하거나 ▷조혈 간세포에서 적혈구로의 분화과정에 필요한 비타민, 호르몬, 철분 등의 필수성분이 부족하거나 ▷임신과 같이 철분 요구량이 증가하는 경우 ▷적혈구 파괴가 과다하게 일어나는 경우 등이 주요 원인이다. 이 중 소화관 출혈에 의한 실혈과 생리혈로 인한 실혈이 가장 많은 이유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식사를 잘하는 사람이 빈혈이 있다면 소화관 출혈과 생리량이 많은지를 우선 확인해봐야 한다. 가능성은 낮지만 암, 백혈병, 재생불량성 빈혈 등과 같이 중대한 질환이 있을 수도 있으니 이에 대한 조사도 반드시 필요하다.

원인이 확인되면 적절한 치료가 필요하다. 철결핍의 경우 철분보충제를 복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철분은 육류에 풍부해 엄격한 채식주의자의 경우 철분 결핍이 유발될 수도 있으므로 식사는 육류를 포함해 항상 골고루 섭취해야 한다.

빈혈에 대한 현대적 이해가 있기 이전에도 빈혈 증상을 관찰하고 치료하는 방법이 있었다. 한의학에서 빈혈 약재들은 현재의 실험적 연구에 의해 조혈을 촉진하는 작용이 확인되기도 하고, 허혈에 의한 조직 손상을 완화시키는 작용이 밝혀지기도 했다. 철분보충제와 함께 복용할 경우 관련 증상을 보다 빠르게 개선시킬 수 있다.

혹여 철분보충제 자체가 소화기계 증상을 유발하는 경우가 많아 복용이 어려울 때 한약을 함께할 경우 이러한 증상을 완화시킨다는 것이 실험적으로 확인된 바 있다. 조혈을 촉진시키는 혈자리에 침을 맞는 것도 빈혈을 개선시키는 효과가 있음이 일부 임상연구에서 입증되기도 했다.

우선 실혈의 원인을 확인, 치료하고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하는 것이 빈혈 치료와 관리에 가장 중요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전통의학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부산대한방병원 한방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