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대학시절 재미있는 일화가 있어 소개하고 싶다. 친구들과 시험준비를 하던 중 소위 말하는 '써머리'를 준비한 한 친구가 낄낄 웃으면서 오류를 수정해 주었다. '주내백약지장(酒乃百藥之長)'을 '주내백병지장(酒乃百病之長)'으로 잘못 표기한 것이다. 앞 구절은 '술이 모든 약의 으뜸'이라는 뜻이고 뒤의 구절은 '술이 모든 병의 근원'이라는 말이어서 서로 정반대의 뜻이었다. 하지만 술을 달리 '백독지원(百毒之源)' 즉 모든 독의 근원이라고도 이르니 그 친구의 '써머리'가 아주 엉터리는 아니라는 점이 더 재밌어 함께 웃었던 기억이 있다. 

이제 곧 연말이 다가오니 술자리를 가질 기회가 많을 것이다. 필자는 술의 양면성이 참 재미있다. 술은 참 오랜 세월 사람들 곁에 있으면서 때로는 즐거움을 때로는 위로를 선사했다. 특히 한국사회에서 술은 사람 사이의 긴장을 해소시키고 분위기를 돋우는 역할을 한다. 또 우리나라 사람은 타문화권 사람들과 달리 아직까지는 술에 취한 상태로 저지르는 실수에 비교적 관대한 편이다. 하지만 도에 지나친 음주는 자신의 신체와 정신적인 건강에 해로운 영향을 줄뿐 아니라 주변 사람을 고통스럽게 한다. 한의학에서도 과도한 음주로 인한 신체적, 정신적 증상을 이르는 '주상증(酒傷證)'이라 하여 치료 대상으로 인식했다. 특히 아직 성장이 완성되지 않은 청소년기의 음주는 일생동안 고통스러운 신체적 정신적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어 조기 예방과 관리가 필요하다.

그러면 어디까지가 적정한 음주일까. 답은 맥 빠지게도 '상황에 따라서'이다. 소위 말하는 알코올 중독은 술을 마시는 양이나 술의 종류를 기준으로 진단내리지 않는다. 술에 대한 자제력, 음주로 인한 신체적인 문제 그리고 술로 인해 가족적, 사회적, 직업적인 활동에 문제가 없는가를 판단하여 진단한다. 

현실적으로 술을 전혀 마시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다. 분명 술이 가지는 장점도 많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소비되는 술의 양이 과한 것과 위험성에 대한 인식도 다소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해서, 필자는 중독이라는 다소 과격한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음주로 인해 내 체력과 건강이 감소하였는지, 내 음주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하지는 않는지, 내 스스로 음주에 대한 자제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술은 백약의 으뜸이 될 수도, 백독의 근원이 될 수도 있다. 독자들이 이 글을 읽으면서 조금 더 내 몸을 살피면서 건강하게 술을 즐기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덧붙여 '원샷'만 강요하지 말고 타인의 음주 페이스를 존중해서 배려 넘치는 술자리 문화를 이끌어 주셨으면 하는 욕심을 이 자리를 빌어 해본다.  

부산대한방병원 한방신경정신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