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로 인해 온 나라가 한 달째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여 있습니다. 이맘때 열리는 학회나 세미나도 잠정 연기됐고 제가 근무하는 병원도 한 개의 출입로만 개방한 채 체온을 재고 마스크를 착용토록 안내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우가 주장한 인간의 욕구 발전의 5단계 중 두 번째 단계의 욕구가 바로 안전의 욕구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안전하기를 바랍니다. 특히 생명이 위험하다고 생각되면 불안과 공포가 엄습합니다. 불안과 공포가 요즘 대한민국 국민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일 것입니다.

사실 불안과 공포는 인간에게 꼭 필요한 감정입니다. 적절한 수준의 불안과 공포를 느낀다는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위험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합니다. 마치 건물의 화재경보기가 울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너무 자주, 실제 화재 상황이 아닐 때도 화재경보기가 울려 매번 대피를 해야 한다면 그 건물에서 편안하게 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공포는 갑작스럽고 구체적 위협에 대한 반응으로, 불안은 미래에 위험이 닥칠 것처럼 느껴지는 불쾌한 정서적 상태로 정의합니다. 인간이 불안과 공포를 느낄 때 활성화되는 뇌의 구조물 중 하나가 편도체입니다. 이 편도체가 지나치게 활성화되면 사람은 늘 긴장하고 작은 일에도 예민해져 사소한 일에도 감정적으로 반응하기 쉽습니다. 이런 편도체의 활동을 전전두엽피질이라는 뇌 부위가 적절히 억제해줍니다. 이 전전두엽피질은 이성적인 사고와 판단력 다시 말해 목표 설정이나 문제 해결을 위한 전략수립, 행동계획, 의사결정에 관여합니다.

건강한 사람은 전전두엽피질이 적절히 기능합니다. 그러나 우울증 환자, 오랫동안 불안 상황과 스트레스에 노출된 사람은 편도체 활성이 과도하고 전전두엽피질의 활성이 과도하게 낮아지는 양상을 보입니다. 또한 편도체의 과다한 활성은 전전두엽피질의 지배능력을 감소시킵니다. 독자 여러분도 몹시 불안하거나 공포에 휩싸인 상황에서 이성적인 판단능력이 마비된 경험을 하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전전두엽피질의 기능이 강화되면 편도체 활성이 억제돼 비합리적인 감정이 적절히 제어됩니다. 우울과 불안의 치료에 활용되는 인지행동치료 혹은 명상이 전전두엽피질의 기능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이미 보고돼 있습니다. 한의학에서도 인지행동치료나 명상의 원리와 유사하게 두려움의 정서에 활용하는 정신요법 원리가 있는데 '思勝恐(사승공)'이라고 합니다. 두려움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고 상황을 보다 합리적으로 인식하도록 하여 환자로 하여금 두려움에 압도되지 않고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게 해주는 치료입니다.

갑작스럽고 위협적인 외부자극인 메르스로 인한 공포와 메르스에 감염될 위험에 처하지 않았나 하는 불안으로 지금 우리의 편도체에 빨간불이 들어왔습니다. 편도체의 경고등이 꺼지고 전전두엽피질의 기능이 강화될 수 있도록 메르스가 확산하지 않기를, 나아가 치료법이 하루 빨리 개발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부산대한방병원 한방신경정신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