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학은 18세기 말경까지 자연치유력을 중시한 한의학과 유사한 개념인 생태의학적 관점이었으나 프랑스 혁명(1789년) 이후 태동한 파리임상학파, 1880년 파스테르·코흐를 필두로 한 세균학, 리스터의 무균법 외과수술 적용 등의 의료기술이 등장하여 일취월장, 근본원리가 생의학적 패러다임으로 확립됐다.

일본의 화한의학(和漢醫學)은 한반도와 중국의 한의학을 전수받아 메이지 유신(1867년) 초까지 명맥을 유지하다 1895년 의사면허규칙개정안(한의사 존속안)이 의회에서 부결되면서 제도권에서 사라졌다. 이후 몇몇 의사들에 의해 전승되다 1970년대 중국과의 교류로 국민적 관심사를 얻어 한방제제 산업과 연구의 활성화로 이어져 현재 80곳의 의과대학에서 기본적인 한방의학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특히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는 단계에서 노인질환에 대해 향후 한방의료의 역할이 클 것으로 기대하는 의료인이 전체의 64%라는 조사결과가 나와 이후 성장 가능성을 암시해준다.

중국은 법률적으로 중의(한의사), 중서결합의(한양방 이중 면허의사), 서의(양방의사)로 구별되지만 임상적으로 의료가 일원화돼 있어 환자에게 더 적합한 시술과 처방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국가중의약관리국은 중의학 정책을 총괄 지휘하며, 중의과학원은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로 중의약의 세계화를 위한 선도 역할을 하고 있다.

일본에 합병된 조선은 전통 한의학과 서양의학과의 공존을 위한 고민 단계도 없이 서양의학이 주류가 된 지 100여 년 동안 한의학은 거의 사라졌다가 1951년 국민의료법 속에 한의사가 제도적으로 부활됐다. 현재 12개 한의학 교육기관, 8개 과목의 한방전문의 제도(내과·침구과·부인과·소아과·재활의학과·사상체질의학과·피부과·신경정신과·안이비인후), 2만여 명의 한의사들이 있지만 국민의료보험 재정 전체의 5% 정도만 차지하고 있다.

이런 열악한 조건에서 적자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오랜 임상경험과 한방의료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는 민족 특유의 가치관 때문이다. 하지만 국민적 수요를 학문적 우월성으로 착각하고 과학적 안정성과 유효성이 미흡해 근거 중심의학이 구축되지 못한 점 등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한중일 동양 3국 한의학은 각국의 여건에 따라 고유의 제도로 이용되고 있지만 한국의 한의학 제도가 현대의학과의 자유경쟁체제에서 가장 시련을 잘 견뎌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은 의사들이 한의학을 임상에서 제한적으로 응용하고 있지만 학문적 연구가 세계 수준인 것은 우리가 배워야 할 타산지석이며, 중국은 국가 주도하에 중의약의 세계화를 위한 표준화·과학화·현대화 등을 치밀하게 실천하고 있다.

현대의학이 해결하지 못한 것을 보완대체의학 차원에서 그 방법을 찾고자 하는 가운데 현실적으로 중국이 선두를 점하고 있지만 한국의 한의학이 현대의학의 협조를 받아 최상의 연구를 통해 의술과 인술로서 세계를 널리 이롭게 하는 날이 올 것임을 꿈꿔본다.

삼세한방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