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에서 질병을 치료하는 의학의 신은 아스클레피오스. 그가 가진 지팡이에 감겨있는 뱀 세 마리는 인간을 구성하는 세 요소인 육체·정신·영혼을 상징, 오늘날에도 의학과 관계되는 기관의 로고에 많이 사용되고 있다. 한의학의 대표적 로고는 인체에 침을 시술하는 부위인 경혈과 이를 연결하는 선인 12경락이 표시된 경혈도이다.

현대인에게 한의학이란 어떤 치료로 이해돼야 할까. 20세기 중반 항생제가 발명돼 세균에 기인하는 어떤 전염병도 물리쳤으며, 오늘날 천연두 같은 균은 지구상에서 사라졌다고 들린다.

한의학에서는 감기 같은 열성병을 치료하는 의서 '상한론'(傷寒論)도 있지만 서양의학에서 병으로 생각하지 않는 미병의 상태를 중요하게 여긴다. 예를 들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찌뿌듯해 병원을 찾아 여러 이학적 검사(혈액, 소변, 내분비검사 및 영상의학적 촬영)를 받았지만 아무 이상이 없었다. 서양의학에서 병으로 인식하지 않는 어떤 불분명한 이런 미병 상태를 한의학에선 침구치료, 한약치료 등을 이용한 치료를 적절히 하여 병으로 진행되지 않게 정기를 강하게 한다.

정기란 우리 몸의 정상적-현대적 의미의 면역기능도 될 수 있다- 생리활동의 기능을 포괄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정기가 약할 때 우리 몸은 나쁜 기운의 침범을 받아 병이 발생하므로 치료적 관점에서 정기를 도와준다는 것은 질병에 대한 내적 저항력을 강화시켜 주는 것이다.

한의학에선 병의 원인인 바이러스나 균을 외사라고 하며, 바깥의 어떤 원인으로 생기는 것을 외감, 몸 안에서 생기는 것을 내상이라 한다. 내상은 음식과 관계되는 음식상, 몸의 피로 증후인 노권상(지나친 성관계의 과색상, 맘고생의 칠정상)으로 세분된다. 특히 맘고생으로 생기는 병은 인체의 기(정상적 생리기능을 포괄한 의미)와 밀접한 관계가 있어 흔히 한의학에선 별도로 기의학이라고도 칭한다.

한의학은 현대적 의미에서 과학적이지 못하지만 2000년 전에도 정신적 관점에서 질병을 설명했다. 이를 이해한 현대의학자도 있었다. 1936년 캐나다 생리학자 한스 셀리에가 처음으로 정신적 자극이 우리 몸에 병을 일으킨다고 언급했다. 한의학의 또 다른 특징인 인간의 감정과 자기조절이라는 수양적인 면이 많이 포함된 이 주장은 1946년 심신의학회지에 논문으로 등재됐다.

서양 의학은 치료의학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의 관점이며, 한의학은 그의 딸로서 건강을 지켜주는 치유의 여신인 하이지아의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서양의학의 비조인 히포크라테스는 무엇보다 '해를 주지 말아라' '자연 치유력을 존중하라'고 강조했다. 이 점은 한의학적 관점과 유사해 서로 접근할 수 있는 방법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의학과 서양의학의 궁극적 목표는 같다. 노한의학자인 필자는 현대의학과 인간의 맘과 관련있는 양생법, 인체의 정기보강, 외감 치료법 같은 한의학적 치유법이 서로 응용되는 통합의 의학이 실현되길 이 자리를 빌어 기대해본다. 비록 많은 난관이 있겠지만.

삼세한방병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