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와 행복은 서로 모순된다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 필자는 주로 노인분들의 관절염 치료를 하고 있어 나이가 지긋한 환자들을 자주 뵙는다. 그런데 대부분 중증 이상의 퇴행성 환자들을 보면서 깨닫는 것은 그분들이 자신의 삶과 환경에 대해 스스로 행복감을 느끼며 산다는 것이다. 사지 관절을 모두 수술받은 고령의 할머니도 수술 후 환하게 웃으며 퇴원을 하는 것을 수차례 목격했다.
건강한 노인에 대한 최근 연구에 따르면 정상적인 뇌세포 감소량은 보통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적다. 나이가 들수록 암기력이 떨어지고 젊은이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리지만 건강한 80세 노인의 뇌는 젊은이의 뇌가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일은 통계학적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영국의 워릭 대학에서 영국인과 미국인 1만 명을 대상으로 나이에 따른 행복지수를 조사한 결과 이들의 행복지수는 U자 모양을 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 증가에 따라 행복지수가 점점 낮아지다가 45세를 기점으로 다시 상승한다. 이는 사람이 나이를 먹을수록 고난이나 역경에 대한 적응력은 높아지는 반면 인생에 대한 기대 수준은 낮아지고 스스로를 압박하는 일도 줄어들어 행복지수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행복한 노후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최근 한 연구에서 관절염 4기로 무릎 인공관절수술을 받은 환자와 시술한 의사들에게 만족도를 물어보니, 흥미롭게도 수술 만족도가 서로 다른 경우가 많았다. 수술이 잘 되어 의사가 만족하더라도 환자는 미래에 일어날 일들에 대한 걱정 등으로 불만족하는 경우가 있으며, 그와 반대인 사례들도 있다. 필자는 얼마 전 관절 변형이 심해 도저히 걸을 수 없는 할머니를 수술한 적이 있다. 수술 후 4주가 지나고 지팡이 없이도 걸을 수 있게 된 할머니를 보고 필자는 상당히 만족스러웠으나 할머니는 수심이 가득해 보였다. 붓기는 다 빠질 것인지, 나중에 다시 아프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힘들어 하셨다.
흔히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노년이 즐겁다고 하지만, 꼭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회진을 할 때면 1인실에서 24시간 간병을 받는 환자보다 6인실에서 생활하는 분들이 더 행복해 보인다. 같은 병실 환자의 보호자가 급한 일로 자리를 비워야 할 경우 옆 환자의 보호자가 선뜻 나서 도와준다. 다같이 밥을 먹은 후 사과를 깎아서 나눠 먹고 생일케이크도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행복한 노년을 위해 알아야 할 사실은 심각한 질환 등 외적인 요인보다 자신의 환경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주관적 판단이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나이가 들어 기운이 떨어지고, 관절염이나 다른 질병 등으로 더 이상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해도 주변 사람들에게 환한 미소로 화답할 수 있다면, 아침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은 어제와 다른 또 다른 행복의 시작이 될 것이다.
은일수 부산의료원(정형외과 전문의) 기획조정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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