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아를 둔 가정의 비장애 형제자매 아동을 위한 학습·정서 지원 멘토링 프로그램에 참가한 멘토 전재영(오른쪽) 씨와 멘티 하지훈 군이 바깥놀이 활동으로 배드민턴을 하고 있다.

- 장애 자녀에게 부모 관심 쏠리고
- 부양 부담까지 짊어지는 등 고민
- 참다가 사춘기 때 폭발하기도

- 주1회 대학생 형과 학습·놀이
- 성격 활발해지는 등 성과 거둬

장애아가 있는 가정은 장애아이에게 부모의 관심이 쏠리게 마련이다. 장애의 정도가 심할 수록 당연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장애 아동의 형제자매가 있는 경우 이들에 대한 배려나 관심은 자연히 줄어들게 된다. 비장애인 아동은 자라면서 공부나 자신의 일을 스스로 챙길 수 있어 부모 입장에서는 대견하고 고맙다. 하지만 이 아이들도 부모의 관심을 듬뿍 받고 싶은 것은 마찬가지다. 장애 형제자매를 둔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필요한 이유다. 부산뇌병변복지관에서는 장애아동의 형제자매를 위한 멘토링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부모는 모르는 아이들의 고민

	전재영 씨와 하지훈 군이 영어 동화책을 함께 읽고 있다. 멘토링 프로그램은 매주 일요일에 진행된다.

아이들은 부모에게 내색하지 않지만 머리가 굵어지면서 장애 형제자매에 대한 책임감을 자연스럽게 갖게 된다. 하지훈(엄궁초 4) 군도 엄마나 아빠 앞에서는 한 번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지훈이보다 한 살 많은 형 현덕(12) 군은 지적장애를 앓고 있다. '엔젤만 증후군'이라는 병으로 간질, 수면장애 등을 겪게 된다. 그래서 7살 때까지 거의 걷지 못했고 기저귀도 사용해야 했다.

이런 형의 장애에 대해 지훈 군은 4살 때 "왜 형은 못 걷고 말을 못해? 어린이집 가니까 다른 친구들은 다 하던데"라며 의아해 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전혀 언급이 없었고 형과 잘 지냈다. 지훈 군의 어머니 김도희 씨는 "그런데 아이가 7살 때쯤 미술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치료 선생님의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고 귀띔했다.

치료 선생님이 김 씨에게 지훈이가 한 말을 전해주기를 "아빠가 없으면 내가 아빠에요. 우리 형은 장애가 있고 엄마랑 여동생은 여자니까 내가 아빠가 돼서 우리 가족을 지켜야 해요"라고 했단다. 그래서 치료 선생님이 김 씨에게 혹시 아이 앞에서 장애가 있는 형을 나중에는 니가 책임져야 한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냐고 묻더란다. 김 씨는 "그런 얘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고, 우리가 죽고 나면 현덕이는 시설에 보낼 것이다. 지훈이의 어깨를 무겁게 하고 싶지는 않다"고 대답했다. 지난 20일 취재 당일 만난 김수정 사회복지사는 "장애 형제자매를 가진 아이들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아도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 면이 아이들에게도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부모의 관심이 자신에게 덜 오는 것을 참아내고 형제자매의 부양에 대한 부담감까지 말없이 견뎌내다 보면 분명히 과부하가 걸리는 시기가 온다.

김 사회복지사는 "보통은 사춘기 때 아이들이 쌓아두었던 것을 폭발시킨다. 사춘기 자체가 아이들에게는 힘든 시기인데, 자신의 처지까지 합쳐지니까 아이들이 더 힘들어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김 씨는 "지훈이와 현덕이가 한 살밖에 차이나지 않기 때문에 지훈이가 내 손길을 못 받았다. 그런데도 지훈이가 어른스럽게 형의 장애를 잘 받아주는 것에 정말 감사하다"고 대견해 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장애아동의 형제자매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형이랑 같이 하는 시간이 즐거워요

지훈 군의 멘토는 전재영(동의대 중문과2) 씨다.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 지훈이 집에 와서 낮 12시까지 함께 시간을 보낸다. 1시간은 영어 동화책 읽기 등의 학습적인 면을 지도해준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지훈이가 원하는 바깥놀이 활동으로 채워진다. 지난 20일에는 배드민턴, 축구 등을 하면서 땀을 흘렸다.

지훈이는 일요일만 되면 재영이 형이 언제 오는지 시계만 보고 있다. 재영 씨가 도착하자마자 얼른 문을 열어주더니 둘이서 방으로 들어가 영어 동화책을 읽는다. 어머니 김 씨는 "평소에는 공부하라고 해도 말을 잘 듣지 않는다. 그런데 자원봉사 선생님이 오시면 순한 양 같이 잘 한다"며 웃었다. 재영 씨는 "지훈이는 성격이 활발하고 운동도 좋아한다. 함께하는 시간이 즐거워서 특별히 봉사를 한다는 생각이 안들 정도"라며 자랑했다. 몸이 불편한 형을 대신해 지훈이와 실컷 놀아주고, 오롯이 관심을 집중해주는 것이 재영 씨의 역할이다. 어머니 도희 씨는 "남편이 주말에 일하고 평일에 쉬는 터라 지훈이와 놀아줄 타이밍이 맞지 않다. 그래서 이런 멘토링 프로그램이 매우 만족스럽다"며 고마워 했다.

지훈이는 "매주 재영 형이 오니까 좋아요. 처음에는 선생님이라고 했지만 지금은 형이라고 불러요. 형이랑 밖에서 공도 차고 다양한 놀이를 실컷 할 수 있는게 제일 재미있어요"라고 했다. 도희 씨는 "사실 지적장애아처럼 부모가 전적으로 돌봐야 하는 아이가 첫째이면 보통 둘째를 낳는 것을 굉장히 조심스러워한다. 그래서 장애아들은 혼자인 경우가 많아서, 형제자매 프로그램을 찾기가 쉽지는 않다"며 "그런만큼 장애아의 형제자매를 위한 장기적인 프로그램들이 많이 진행됐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