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공예 작가들의 보금자리로 탈바꿈한 부산 해운대구 우동 솔밭마을에서 체험학습 어린이들이 손으로 만든 작품을 들어 보이고 있다.

# 예전엔

- 일제강점기 철도 노동자 집터
- 한국전쟁 후엔 피란민 천막촌
- 탈선청소년 범죄 온상 되기도

# 지금은

- 구청, 세금 투입 마을 정비사업
- 비누·가죽·섬유·한지·도자기 등
- 작가 10명 작업실·전시관 변신
- 누구든 구경하고 체험할 수 있어

부산 해운대구 우동에는 수공예 작가들의 모임 공간 '솔밭마을'이 있다. 10명의 수공예 작가들이 모여 수경 재배, 친환경 비누, 가죽, 섬유, 한지, 도자기 공예 등 10개 분야의 예술작품을 만들고 있다. 이들의 활동은 예술에만 그치지 않는다. 과거 한때 청소년 탈선지역이었던 이 동네를 밝게 바꾸려는 노력도 함께 기울이고 있다.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가진 솔밭마을을 돌아봤다.

■솔밭마을은

솔밭마을은 동해남부선이 지나가던 자리에 있다. 일제강점기 철도 관사가 있었던 곳이다. 당시 철도 노동자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셈이다.

이곳에서 활동 중인 안상규 작가는 "한국전쟁 직후에는 동네 주변에 보이는 소나무를 기둥 삼아 사람들이 천막을 치고 살았던 곳이다. 그 이후 슬레이트 지붕의 집이 만들어졌지만 열악한 환경은 마찬가지였다"고 전했다.

마을을 둘러보니 소나무가 가옥의 대청마루 중간을 뚫고 나온 집이 눈길을 끌었다. 또 인적이 드문 어두침침한 골목이 보였다. 이곳에서 청소년의 범죄나 탈선이 많았고 흡연과 불장난, 접착제 흡입까지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에 해운대구청은 도시재생사업 지원금과 구 자체 예산을 들여 동네를 정비했다. 마을을 대표하는 수령 200~300년의 소나무들도 고스란히 남았다.

해운대 달맞이언덕의 아트 프리마켓 소속 예술가들이 모인 솔밭마을은 지난 11월 문을 열었다. 허름한 집 대신에 통유리로 장식한 아기자기한 건물들이 들어섰다. 통유리 넘어 수공예 작품과 작가들의 작업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주목할 점은 이곳을 활기찬 마을로 만들기 위한 작가들의 노력이다. 골목에 모여 일탈하는 비행 청소년에게 다가서기 시작한 것이다. 솔밭마을에서 활동하는 한 사진작가는 이런 학생들에게 일회용 카메라를 한 개씩 나눠줬고, 학생들이 찍어온 사진을 현상해 갤러리를 만들었다. 학생들의 갤러리는 동네의 버려진 공중전화 부스였다.

안상규 작가는 "학생들에게 우리 갤러리에 언제든지 들어와 놀아도 된다고 했지만, 거부감을 느끼는 듯했다. 사진 갤러리를 마련해 주자는 생각은 학생들에게 개인 공간을 만들어주기 위한 것에서 시작됐다"라고 말했다. 솔밭마을 작가들은 앞으로도 이 같은 '공중전화 부스'를 계속 늘려나갈 계획이다. 아울러 벽화 그리기 등 마을 꾸미기 행사에도 학생들을 동참시키기로 했다.

■구경에 체험까지

평일 오후 2시께 솔밭마을에 사람들이 모였다. 8세 어린이부터 40대 주부까지 다양한 작업장에서 체험 활동을 했다. 이들이 체험한 것은 인형 볼펜, 자수, 수제 비누 만들기 등이다. 그뿐 아니라 마을 입구 전시장에도 사람들이 모여 솔밭마을에서 만들어진 다양한 전시품을 구경했다.

한지 가방이나 각양각색의 색동 실로 만든 공 등은 관람객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특히 각 분야 작가가 아이디어를 모아 협업으로 작품을 만들어 전시하기도 했다. 안 작가는 "작품 자체의 예술성에다 친환경적인 요소와 몸에 좋은 재료를 쓰고 있어 수공예품에 대한 인기가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많은 편이다. 과거에는 부산 수공예 작품이 대구, 울산보다 인기가 낮았지만 최근 들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라고 소개했다.

솔밭마을은 전시장부터 개인 작업장까지 모두 개방돼 있다. 길을 걷다가 마음에 드는 작품을 보게 되면 언제든지 들어가서 구경할 수 있다. 안 작가는 "운이 좋다면 즉석에서 해당 작가와 상의 후 체험까지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이곳에 상주하고 있어 관광객들의 만족도가 높다는 것이 안 작가의 설명이다.

하지만 솔밭마을은 작가들의 작업 전시공간으로 지정돼 있어 작품 판매는 할 수 없다. 작가들의 작품은 매주 주말 해운대구 달맞이공원에서 열리는 달맞이 아트 프리마켓에서 살 수 있다.


◇ 수제비누 만드는 박오복 작가

- '터줏대감' 탈선청소년들과도 친구 돼야죠

이곳에서 유기농 수제 비누를 만드는 박오복(사진) 작가는 솔밭마을의 특징을 '웰빙과 소통' 두 단어로 표현했다. 박 작가뿐 아니라 솔밭마을에 상주하는 모든 작가는 환경을 생각하고 몸에 좋은 제품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박 작가의 경우 거품이 발생하지 않고 피부에 해로운 화학물질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비누를 만들고 있다.

박 작가가 수공예 활동에 뛰어든 것은 1997년. 당시 서울에서 활동하는 교수를 초빙해 개인 교습을 받으면서 이 분야에 발을 내디뎠다. 그 이후 해운대구 일대에서 커뮤니티 사업으로 동네 주민들과 교류하다 3년 전에 개인 작품을 내는 등 본격적인 사업에 나섰다. 박 작가가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수공예 작품 활동으로 지역 주민들과 소통하는 것이다.

그는 "솔밭마을의 가장 큰 관심사는 이곳에서 탈선행위를 하는 청소년들이다. 흡연이나 음주를 하지 말라고 무조건 꾸짖는 것보다 우리와 어울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탈선 예방에) 더 효과적이다. 만약 그들이 내 작업장에 문을 열고 들어올 경우를 대비해 항상 빵이나 과자 등의 간식거리를 준비하고 있다"며 "우리의 가장 큰 숙제는 그들과 함께 다닐 수 있고 어울릴 수 있는 거리를 만드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박 작가는 청소년들에게 조금씩이나마 그들만의 공간을 제공하거나, 작품으로 거리를 장식한다면 공동체 의식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이처럼 솔밭마을의 작가들은 작품 활동뿐 아니라 지역 문제의 해법을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

박 작가의 자랑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 마을의 건물 자체도 하나의 디자인입니다. 세밀하게 바라볼수록 마치 숨겨진 보물찾기와 같은 매력을 이곳에서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