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뜩 들어오이소." 70대 정도로 보이는 자그마한 체구의 할머님이 언짢은 표정으로 할아버지를 이끌고 진료실 안으로 들어오셨다. 무슨 일이신지 조심스럽게 여쭤보니 할머님이 "우리 할아버지가 아직도 자꾸 하자는데 나는 아파서 도저히 못해"라고 말씀하셨다. 건강하신 할아버님께서 여전히 부부관계를 원하시지만 할머님께서는 성고통이 너무 심하여 거부한다고 하셨다.

할아버님께서는 "며칠 전에 병원에서 건강검진까지 받았고 의사가 몸에 병도 없고 건강하다 했는데 왜 아프다고 해. 하기 싫어서 거짓말하는 거지. 다시 자세히 검사 좀 해줘 봐"라고 하시며 금방이라도 부부싸움을 하실 기색이었다. 할머님께서는 초음파를 포함하여 몇 개의 검사를 받으셨고 다른 병원 검사 결과와 마찬가지로 별다른 이상 소견은 없었다. 하지만 질 점막이 메마르고 건조하고 가벼운 자극에 금방이라도 출혈이 될 것 같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질 건조증'과 '위축성 질염'이었다.

여성은 50세 전후가 되면 가장 중요한 기능을 하던 난소의 활동이 사라진다. 그리고 난소에서 분비되던 여러 가지의 호르몬도 같이 그 기능이 떨어지면서 폐경의 증상이 시작된다. 폐경기가 와서 갱년기를 맞게 되면 신체적으로 큰 변화를 겪게 되는데 그 중 대표적인 증상이 바로 질 건조증과 위축성 질염으로, 폐경기 여성의 80%까지 발생할 수 있다. 여성호르몬의 부족으로 질 점막이 쪼그라들고 정상적으로 분비되던 점액이 줄어들면서 질이 메마르고 건조해지는 변화를 겪게 된다.

부부관계 때에도 불편함을 느끼게 되고 가벼운 자극에도 쉽게 출혈이 일어나기도 하며 세균의 감염을 막아주던 질 점액의 방어 작용이 사라지면서 세균에 의한 감염이 쉽게 발생할 수도 있다. 근본적으로 여성호르몬이 부족해서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여성호르몬 연고나 여성호르몬 질정을 사용하면 증세가 좋아진다. 응급수단으로 윤활제를 사용해 극복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근본적인 치료가 아닌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또한 바셀린이나 일반 화장품 로션을 윤활제로 사용하면 질 안의 산도에 문제를 일으켜 질 내부에 염증을 유발할 수도 있다.

할아버님께 이러한 할머님의 변화를 설명해 드렸더니 그 동안 무턱대고 강요하기만 하신 것이 미안하셨는지 아무 말도 못하시고 가만히 계셨다. "약만 바르면 괜찮은 거지. 암은 아니라는 거지"라고 재차 확인하시고는 할머님의 손을 꼭 붙잡고 진료실을 나가셨다.

세월이 많이 변했다. 부부 사이에서 부부관계가 중요시되고 있으며 원만하지 못한 것이 이혼사유가 돼 이혼하는 부부가 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은 남성 위주의 성생활에 익숙해져 있는 실정이다. 남성들은 상대방의 몸이 어떻게 변화하고 성적인 기능이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대해서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 남성들은 힘(?)이 약해지면 발기부전치료제를 복용하는 노력을 하면서도 배우자가 왜 부부관계를 기피하는지,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 있는 건지 등에 대해서는 살펴보는 이가 많지 않다. 곁을 함께하는 이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은 '부부관계' 뿐만 아니라 '부부사이'를 보다 따듯하게 해 줄 것이다.

한지연 양산부산대병원 비뇨기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