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질이 있은 지 오래고 한번 씩 붓고 아플 때는 빨리 병원을 가야지 했지만 좌욕하고 좀 통증이 가라앉으면 그냥 참고 넘어가고 하길 근 30년이 되었어요. 치질 수술이 워낙 아프다는 얘길 많이 들었고, 또 부위가 부위인지라 '엉덩이 깔 생각'을 하면 차마 병원 갈 용기가 나질 않아 망설이길 여러 차례 했죠."
지난 겨울 김장을 한 후에 치질이 밤톨처럼 여러 개가 생겼고, 아픈 것도 아픈 것이지만 옷에 피가 묻어나고 소변을 볼 때도 피가 나 겁나서 검진 받으러 왔다는 한 중년 부인.
검진을 하니 항문 전체가 혈전이 생겨서 꽃 피듯이 부어 있었다. 검진 후 촬영된 항문 모습을 보며 "아이구, 꽃이 피었구먼" 한다. 치질이 너무 심해 한꺼번에 제거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말에 스스로를 미련했다고 후회를 하신다.
항문은 변이 지나가는 출구이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말하는 '바나나변'이 마음대로 지나갈 만큼 넓이가 유지되지 않으면 배변 시 통증이 있게 된다. 그래서 수술 후에도 항문 넓이가 중요하다. 따라서 항문을 둘러싼 모든 방향에 생기는 이러한 환형 치핵의 경우 한꺼번에 모두를 제거 못하고 두 번에 나누어 단계적 수술을 하게 된다.
수술 후 회진 시 무통(진통제 투여) 때문인지 이 정도면 전혀 겁낼 필요가 없었겠다며 웃으시는 분께 아직은 모르고, 일단 변을 봐야 통증 정도를 알 수 있다고 답했더니 금세 표정이 어두워진다. 금식을 하면 안 될까 묻길래 "항문 상처는 아무는데 한 달 정도가 걸리는데 한 달간 금식을 하실 순 없잖아요. 그러니 많이 드시고 첫 변을 잘 보는 것이 잘 낫는 길이예요. 그래서 저희 병원에서는 수술 후 첫 변보는 것을 첫 산을 넘는다고 표현해요. 절대 참지 마세요. 변이 대장에 오래 머무르면 수분을 빼앗겨 더 딱딱하게 되니 배변 시 더 힘들고 아플 겁니다" 라고 말씀드렸다.
다음날 아침에 첫 변을 봤는데 전혀 아프지 않았다며 "이 정도라면 백번이라도 수술하겠다"라고 하신다. 3일 뒤 첫 외래진료 날, 진료실에 들어서는 폼이 어정쩡하고 앉으시질 못한다. "아침에 변보고 죽는 줄 알았어요. 갑자기 왜 이렇게 아프죠? 어제까진 괜찮았는데…." "변이 좀 딱딱했나요"라고 물으니 그것도 아니란다. "혹시 무통이 다된 것 아닌가요?"하니 어제 밤에 무통이 다되어 뺐다고 하신다.
수술하고 난 뒤 변이 지나오는 과정에서 상처가 자극을 받아 가며 아물기 때문에 첫 주는 통증이 조금 심해지다가 괜찮아진다는 것, 그리고 본인의 경우는 치질이 좀 심해 수술상처가 워낙 커 통증이 좀 더 심할 것 같으니 무통을 한 번 더 리필해서 다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씀드리고 조치를 취해 드렸다.
약 한 달간의 치료를 끝내며 "주변에 누가 치질이 있다고 하면 수술이 크게 아픈 것도 아니고 하니 참느라 고생하면서 오히려 병을 키우지 말고 빨리 수술하라고 권하게 되었노라고, 이렇게 편안하고 깔끔해지는 걸 왜 그렇게 미뤘나 모르겠다"고 안타까워하셨다.
요즘은 나와 같은 여자 의사도 많이 있으니, 그리고 병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니 미루시지 말기를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다.
강경숙 대한웰니스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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